김선우(이현우, 엄태웅)가 안고가야 할 운명의 굴레는 두 가지이다. 출생의 비밀과 길러준 아버지 김경필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다. 불행은 항상 그렇듯이 또 다른 불행을 낳는 법이다. 김선우에게 아주 소중한 친구가 생겨날 때쯤 벌어진 아버지의 죽음은 막 싹트기 시작한 우정마저도 빼앗아간다. 그리고 시력마저도.
그러나 김선우의 인생을 이토록 처절하게 망가뜨린 원흉이 친아버지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진짜 남겨진 불행의 결정타이다. 그렇기에 후일 김선우를 도와 시력을 되찾게 해주고, 복수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문태주라는 존재는 표면적으로는 대단히 선한 사람이지만, 그 역시도 사적인 복수를 위해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도덕적 결함이 있다.
진노식은 자신이 죽인 것으로 알고 장일의 장래를 책임지겠다는 말로 살인사건의 목격자를 공범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정작 김경필을 실제로 죽인 것은 진노식이 아니라 장일의 아버지 이용배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목격자 또한 공교롭게도 최수미(경수진, 임정은)의 아버지 박수무당 최광춘(이재용)이다.
결국 장일의 아버지 이용배도 그렇듯이 적도의 남자 속 살인사건 목격자들은 모두 진실을 덮어버린다. 누구는 아들을 위해서, 또 누구는 다른 이유에서 침묵하고 혹은 공범이 되어버렸다. 이용배, 최광춘 모두가 이유가 어디에 있건 간에 적어도 정의로운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만 그럴 것인가에 대한 의문부호 하나쯤은 남겨둘 일이다. 그것은 작가에서 설명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판단할 문제이다.
프롤로그에서 장일이 진노식에게 총을 겨누자 선우가 등장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아직 그 장면을 완벽하게 해석해내기란 무리가 따르겠지만 이 복잡한 사건의 결말에 해당하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현직 검사가 자신의 은인(?)에게 총을 겨눠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역과 성인역의 나이차가 15년이라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으로 15년이 지나기 전이라면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수가 있다. 장일이 검사인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선우만이 아니라 장일에게도 치명적인 것이다. 진짜 범인이 자기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겪어야만 할 딜레마가 있다.
적도의 남자는 자칫 식상하고, 신파조에 빠지기 십상인 소재들을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매우 탁월해 작가와 시청자 간에 치열한 추리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게다가 틈틈이 삽입되는 아름다운 영상들은 영화를 보는 듯한 만족감을 주고 있다. 동시간대 꼴찌라는 아쉬운 시청률로 시작됐지만, 적도의 남자는 폼 나는 드라마다. 속재미가 쏠쏠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