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미디어스>는 창간 특집으로 '방송통신 융합 시대를 이끌어갈 영향력 인물 30인'을 조사했다. 인물을 중심으로 방송통신 융합 시대의 지형도를 그려보기 위함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이 지형도는 수차례 지각변동을 거쳤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영향력 14위에 올랐던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국내에는 경쟁자가 없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고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방송위·정통부 '역사속으로'…최시중 '복병' 출현

▲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유영환 전 정보통신부 장관, 조창현 전 방송위원회 위원장.
가장 큰 변화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이다. 2007년 10월만 해도 방송통신 융합기구 개편 논의가 한창이었으나 12월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를 밀어붙였다.

이에 따라 당시 각각 영향력 3, 5, 6위에 올랐던 최민희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유영환 정보통신부 장관, 조창현 방송위원장은 지난 2월말~3월초 모두 물러났다.

최민희 전 부위원장은 현재 자연건강법을 함께 나누는 어머니들의 모임인 '수수팥떡 아이사랑모임'을 운영하며 자신의 역할을 모색 중이다. 유영환 전 장관은 지난 3월초부터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일하고 있으며 조창현 전 위원장은 퇴임 후 해외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최시중'이라는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새로 부상했다. 정치적 독립성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 인사에 언론계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고 초대 방송통신위원회는 점차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방통융합 정책 논의에서 실무 핵심을 담당할 인물로 꼽혔던 방송위원회 정순경 기획관리실장(공동 27위)과 오용수 정책1부장(공동 29위)도 자리가 바뀌었다. 오용수 부장은 지난 8일 방통위 과장급 인사에서 방송위성기술과장으로 발령 났고 정순경 실장은 아직 인사가 확정되지 않았다.

최문순 뜨고(!) 김덕규·정청래·이재웅 지고(?)

▲ 통합민주당 김덕규, 정청래 의원과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
지난 9일 제18대 총선 결과 정치인들의 운명도 엇갈렸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영향력 11위였던 김덕규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서울 중랑을에서 조선일보 출신 한나라당 진성호 후보와 붙어 패했다.

통합민주당 정청래 의원(영향력 14위)은 서울 마포을에서 한나라당 강용석 후보와 겨뤘으나 고배를 마셨다. 투표일 직전 '폭언' 논란을 겪었던 정 의원은 8%(6383표) 차이로 떨어진 뒤 "문화일보와 조선일보의 무책임한 정치 보복에 금배지를 강탈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영향력 19위에 올랐던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아예 공천에서 탈락했다. '친이(친이명박)' 의원으로 무난한 공천을 예상했던 이 의원이 탈락한 것도 의외였지만 공천에 탈락하고도 끝까지 '충성'한 것 또한 의외였다.

이 의원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청문회에서 방패막이로 적극 나서는가 하면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동래구를 찾아 지원 유세를 하기도 했다. 이 의원이 18대 국회에서 금배지는 달지 못했지만 향후 이명박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억울한' 정청래…심재철·정병국은 생존, 진성호도 변수

▲ 최문순 전 MBC 사장 ⓒMBC

영향력 30위 안에 이름을 올렸던 국회의원 3명이 모두 낙마한 가운데 18대에 새로 이름을 올린 사람도 있다.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최문순 전 MBC 사장.

최 당선자는 지상파 방송사 사장 중에서는 KBS 정연주 사장(1위)에 이어 8위에 올랐었다.

지난 2월말 사장직에서 물러난 지 겨우 보름이 지난 시점에 정치권으로 직행하면서 비판 여론도 있었지만 18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있는 지금 최 전 사장에 대한 기대와 주문은 어느 때보다 높다.

17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약했던 민주당 정청래(서울 마포을) 우상호(서울 서대문갑) 손봉숙(서울 성북갑) 의원 등이 대거 낙선하고 한나라당 심재철(경기 안양 동안을), 정병국(경기 양평·가평) 의원 등 저격수는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새로 입성하는 진성호(서울 중랑을), 홍정욱(서울 노원병), 김효재(서울 성북을) 의원이 방송통신 관련 상임위에 배정될 경우 이들과의 '일전'도 벌여야 한다.

'꿋꿋한' 정연주…지상파의 힘 유지될까

▲ 정연주 KBS 사장 ⓒKBS
어깨가 무거운 사람이 여기 또 있다. 바로 KBS 정연주 사장.

정 사장은 지난해 <미디어스> 영향력 조사에서 통신 사업자와 재계 쪽 인물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방통융합 시대에도 공영방송의 영향력이 막강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KBS가 방송의 공공성 수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문이 함께 담긴 결과였다.

그러나 2008년 4월 현재 정 사장은 지상파의 위상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사내 입지마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는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사장 퇴진 운동에 나설 태세고 밖에서는 과반 의석을 확보한 한나라당이 18대 국회 개원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 사장은 법 제도의 변화로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꿋꿋이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KBS 사장'으로 상징되는 공영방송의 위상과 기능이 지켜질지도 미지수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에 따라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반면 무료보편서비스 영역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간방송법 등으로 KBS에 대한 국회의 직간접적인 영향력이 커질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박승규)가 향후 정국에서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할지도 주목된다.

'더 바빠진' 최상재·양문석…민언련 대표는 교체될 듯

▲ 전국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총장, 한국PD연합회 양승동 회장.

KBS 노조가 '변수'라면 언론노조와 언론연대는 '상수'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7위)과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19위)은 이명박 정부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한나라당 과반의 국회 개원과 함께 할 일이 더 많아졌다.

벌써부터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이들을 바쁘게 만들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서중(24위)·신태섭(29위) 공동대표 또한 지난 임기 동안 활약해 왔으나 오는 23일 민언련 정기총회를 기점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방송인총연합회장을 겸임하며 방송 공공성 수호 투쟁을 함께 해 온 양승동 한국PD연합회장(27위)은 임기인 오는 9월까지는 활동할 계획이다.

변함없는 '힘' 포털·통신·재계…삼성 이건희 회장 거취 주목

이 같은 지각변동 속에서도 포털과 통신, 그리고 재계 CEO들은 변함없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남중수 KT 사장(2위) 최휘영 NHN 대표(9위) 김신배 SKT 사장(10위) 이재현 CJ 회장(13위) 최태원 SK 회장(19위) 이재웅 라이코스 대표(23위)가 그들이다.

KT 남중수 사장과 SKT 김신배 사장은 지난 2월말~3월초 재선임 됐고 하나로텔레콤은 3월말 임기를 마친 박병무 사장(18위) 후임에 조신 전 SKT 인터넷사업부문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다만 삼성 특검으로 불구속 기소가 결정된 이건희 회장(12위)은 앞으로의 거취가 불투명하다. 본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렇다 해도 그 영향력이 쉽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문석·김국진·최성진 '싱크탱크' 계속…오지철은 새 정부에서도 신임

그밖에 방송통신 융합기구의 그림을 그린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안문석 위원장(16위)은 한때 방송통신위원장으로도 거론되기도 했으나 고려대 행정학과로 돌아갔다. 지난 1월말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초대 이사장에 선임됐고 지난 3월말부터는 한국전자정부포럼 공동대표도 맡는 등 외부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위원을 맡았던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장(17위)과 최성진 서울산업대 매체공학과 교수(25위)는 정책전문가로서 여전히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케이블업계의 수장으로 영향력 3위에 올랐던 오지철 한국방송케이블TV협회장은 조사 다음 달인 지난해 11월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 사장은 이명박 정부의 '참여정부 코드 청산' 방침에 따라 사표를 냈으나 전문성 등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반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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