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한반도를 많이 닮았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나라처럼 KBS도 이른바 구노조와 새노조로 구성원들이 쪼개져 있다. 사장은 정권의 꼭두각시고 간부들은 사장의 꼭두각시니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외세에 휘둘려 국민의 이익을 포기하는 한국 정부의 행태와 비슷하다. 게다가 구성원들은 수구꼴통에서 합리적 보수와 리버럴까지 다양하지만 수구꼴통(나는 한국의 수구꼴통을 ‘국가주의, 전체주의, 가부장적 유교주의자들’이라고 정의한다)이 고위 간부들의 대부분을 구성한 오늘의 현실도 흡사하다. 게다가 이런 고루하고 극단적 사고방식을 가진 소수의 인간들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자는 대다수의 상식적 문제 제기를 권력으로 억누르고 탄압하는 양태도 똑같다. KBS는 내우외환에 직면해 다중적 과제를 동시에 풀어가야하는 우리 한국사회의 모습과 애처로울 만큼 닮아있다.

▲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신관 앞 광장에서 개최된 KBS 새 노조 총파업 출정식 모습.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의 개혁은 그래서 예상대로 쉽지 않다. 불과 4년동안 한무리의 쥐떼들이 방대한 국토와 수많은 영혼들을 황폐화시켜버려, 앞으로 그 복구에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 KBS의 개혁도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문제가 너무나 많다보니 문제가 아닌 걸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다. 막막하다. 이럴 때 사회과학을 배운 사람들은 일단 분류한다. 현상을 직시한 뒤 일단 적절히 층위별로 문제를 잘라놓고 나눠보면 더 잘 보인다. 원인이 규명되면 방안도 나올 수 있다.

KBS가 이른바 “김비서”라 비아냥을 받으며 시민들의 지탄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인가? 제도인가? 문화인가? 생각해 보자. 이명박이 집권한 뒤 헌법 또는 법이 바뀌어 공영방송의 언론자유를 옥죄었는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 KBS 이사회 선임 제도가 확 바뀌었는가? 이명박이 집권하기 전에는 야당이 강력한 견제를 할 수 있어서 정연주 시절 KBS의 젊은 기자와 프로듀서들이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법이나 제도가 KBS의 중립성을 해친 결정적 주범인가? 정연주의 KBS와 김인규의 KBS는 다른 법과 제도 때문에 확연히 달랐던 것인가? 공산주의,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자유언론이 생길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법적 제도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북한은 모든 신문과 방송사가 정부의 허가와 통제를 받게끔 법과 제도가 완비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그렇게 허무맹랑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그걸 운영한 사람들, 그들의 뇌구조, 행태, 문화가 비상식적이었을 뿐이다. 중국, 북한과 법, 제도는 달랐지만 사회 지도부의 행동양태는 흡사했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KBS도 ‘사람’, ‘문화’라는 영역에서 특히 문제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도 이외에 ‘사람’과 ‘문화’에 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많은 이유가 있다. ‘사람’과 ‘문화’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을 건드려야 하는 민감한 사안인데다 외국 선진사례와 직접적 비교가 되지 않는 문제,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돈’과 ‘이권’이 따르지 않는 분야들이기 때문이다. 학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제도를, 그것도 전혀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 형성된 남의 제도를 마구잡이로 베껴와 이식수술하고 이게 우리의 정답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자 있으면 내 앞에 나서라.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래서 난 KBS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할 때 그 순서를 사람, 문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도를 잡았다. 작금의 시대상황에서는 제도가 가장 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핍박받고 한국 최대 공영방송의 사장이 불법으로 해임되는 상황에서도 항의하는 척, 투쟁하는 척 했던 인간들, 또는 지난 4년동안 숨죽이고 살면서 권력의 향배만 주시하던 인간들이 ‘제도개선’을 주창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앞서 한마디 하지 않을 없었다. 이들의 행동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매우 비겁한 짓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불리한 정국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온전히 하고자 급조한 ‘제도 개선’이다 보니 그들의 ‘제도개선’에 ‘사회적, 역사적 맥락’도 빠져있다. 뜬금없다는 이야기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공영 언론 5사가 집단 파업에 나선 상황에서 한가하게 ‘오로지 지배구조 개선’ 타령이나 하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악해서일까?

정연주 사장이 불법 해임당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방송 언론장악에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른바 KBS 구노조는 KBS의 이사들을 선임할 때 BBC처럼 지역대표를 넣자고 주장하고 있다. 도지사들도 몇 명 만났던 모양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BBC 12명의 이사 가운데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의미의 4명의 이사가 있기는 하다. 이들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를 대표한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고대부터 아주 최근까지 손도끼부터 시작해 기관총을 들고 수 천년 동안 나라의 독립을 부르짖으며 싸우던 자치정부들을 하나의 BBC에 우겨넣자니 어쩔 수 없이 지역 대표성을 부여한 것이 BBC의 4인 지역대표다. 역사적 산물,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의 지역갈등이 아무리 심하다고 한들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전쟁과 비교할 바인가? 영국이 축구 종주국이면서도 무려 52년만에, 이번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경기에서야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상황을 보라. 오죽했으면 국제축구연맹(FIFA)도 ‘1개국 1개 축구협회’의 원칙에서 예외를 인정해 영국에 대해서만 4개의 축구협회를 두도록 허용해 4개 자치정부가 자신들의 협회별로 월드컵 출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겠는가? KBS구노조는 이제 거의 아물어가는 영호남 갈등을 다시 부추겨 이를 KBS 이사회에 제도화시키자는 것인가?

▲ KBS노동조합(위원장 최재훈)은 13일 국회 앞에서 'KBS 지배구조 개선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KBS노조는 "2012년 KBS 정치독립 원년 쟁취, KBS 사장선임구조 개선 투쟁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KBS노동조합

큰 틀에서 보자면 한국의 공영방송 제도는 형식상 큰 문제가 없다. 사실 우리 공영방송제도는 공영방송이 존재하는 서구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다. 역으로 이렇게 질문하면 이해하기 쉽다. 공영방송이 있는 서구선진국(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 포함) 가운데 단 한 곳이라도 선출받은 권력(대통령, 국회)이 공영방송의 이사 선임에 개입하지 않는 국가가 있는가?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대표성’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대표성을 가진 주체는 선출된 권력이고 이 대표성을 가진 집단이 공영방송의 선임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극우, 보수, 리버럴,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적 지형이 정당정치와 투표행태에 구조화되고 있는 한국의 경우도 국회가 가장 큰 대표성을 갖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일이다. 다만 이들이 그 대표성을 바탕으로 공영방송에 들어와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관계만 대변하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럼 대체 비슷한 제도를 가진 서구 선진국의 공영방송들은 불공정 편파방송이라는 정치적 잡음이 없을까? 그들도 많았고 아직도 있다. 영국의 BBC마저도 21세기 들어서까지 집권당 각료가 BBC를 정치적 좌파집단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만 우리와 큰 차이라면 그런 정치인들의 주장을 대다수의 영국인들이 믿지않고 오히려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그런 정치인보다 BBC를 수만배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왜?

그만큼 영국 BBC의 언론인들이 언론자유와 공영방송의 독립을 위해 오랫동안 열심히 싸워왔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BBC 언론인들의 진심을 영국인 대부분이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BBC의 역대 이사들 가운데 가장 많은 직업군이 놀랍게도 ‘퇴역장교’이면서도, 이사들은 BBC의 이사로 선임되는 순간 자신의 가장 큰 사명을 ‘BBC의 독립수호’라고 선언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언론학회장까지 지낸 한국의 대표적 언론학자 유재천씨가 KBS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경찰력을 사내로 투입해 이를 막는 KBS 언론인들을 폭압적으로 탄압하고 불법으로 정연주 사장을 해임한 한국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문화지체 현상이다. 법과 제도는 서구 민주주의와 비슷하게 해놨지만 ‘사람’과 ‘문화’가 아직 이를 따라가지 못해 일어나는 전형적 문화지체 현상…. 그래, 그럼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사람’과 ‘문화’의 문제이니 ‘사람’과 ‘문화’를 풀어야 한다. 어떻게? 두 문제에 관한 구체적 해법을 사회, 역사적 맥락에 맞는 제도적 개선책과 함께 제시하는 최경영의 서동요는 다음편으로 이어진다.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발했던 <9시 거짓말>의 저자로서, 현재 KBS 새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보도부문 간사를 맡고 있다. 트위터 계정은 @kyun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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