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일요일마다 혼란의 도가니다. 이번에는 윤석열 후보가 단일화 결렬을 사실상 선언했다. 안철수 후보가 마음을 바꾸면 언제든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간 협상 경과까지 낱낱이 밝힌 걸 보면 또다른 형태의 협상은 어려워 보인다.

언론 보도를 보면 양측은 상당히 세부적인 부분까지 포괄하는 가합의안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인수위 공동운영과 국민의당 인사의 내각 참여, 대선 이후 합당 추진과 내년 당대표 선거에 대한 배려 등이 합의안 초안에 담겼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공동정부’의 상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약속을 안철수 후보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공동정부’의 사례로 회자되는 건 1997년 대선의 DJP연합이다. 집권할 때는 좋았지만 끝은 좋지 않았다. DJP연합의 비유에서 안철수 후보의 자리는 JP가 될텐데, 당시 내각제 개헌이 무산된데다 대북정책에 대한 이견이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자민련의 정치적 공간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게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에 어떤 교훈을 줬을지 따져봐야 한다. 더군다나 공동정부의 핵심이라고 할만한 ‘책임총리’와 같은 자리는 임명동의안 처리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의석분포상 국민의힘이 보장해주기 어렵다.

게다가 합당은 아무리 당무우선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윤석열 후보와만 합의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대선 이후에는 이준석 대표에 권한이 있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후보 측이 제대로 된 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오히려 두 사람은 당권과 대권을 놓고 잠재적 경쟁자가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지금까지 안철수 후보는 ‘새정치’를 내세우며 어찌됐든 제3당 노선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앞서의 사례로 보면 보수정당의 품에 안기더라도 ‘꽃길’을 보장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쪽에 있으나 저쪽에 있으나 ‘가시밭길’이라면, 이번 대선에서 굳이 5년 후 미래까지 확정할 필요는 없다.

국민의힘은 단일화의 사실상 결렬 이유로 안철수 후보의 리더십을 언급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후보는 단일화 협상의 결렬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측은 안철수 후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서 다양한 채널로 협상을 진행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 측 ‘핵심관계자’들은 언론을 통해 배우자인 김미경 교수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전적으로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다 맞는 얘기도 아닐 거다.

안철수 후보와의 협상은 원래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당신들도 당해보라’는 식으로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단일화가 그렇게 절실했다면 안철수 후보의 여론조사 경선 제안을 수용했으면 되는 일이다. 윤석열 후보 측은 역선택 등의 효과를 거론하며 두 후보 지지율 격차가 큰 상황에서 여론조사 경선 수용은 어렵다고 주장했는데, 이유가 뭐든 서로 기대와 요구가 안 맞으면 단일화 논의는 그만두는 게 맞는 거다. 상대의 요구는 수용하지 않으면서 여론조사 결과가 안심할 수 없는 국면이 되자 다시 압박을 가한 것은 애초에 단일화에 대한 절실함이 없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윤석열 후보의 기자회견은 단일화 무산 책임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어떻게 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제 단일화 얘기는 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남은 기간 동안 비전과 정책, 철학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요 몇 주간 윤석열 후보발 뉴스를 보면 단일화 얘길 걷어내면 남는 것은 철 지난 이념 타령이나 음모론에 가까운 무리한 발언에 대한 인상만 남는다는 거다. 유세장에서의 발언임을 감안해도 후보의 현실 인식이 진실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중도층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하다. 지금이라도 메시지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지난주 초까지 상황이 좋지 않았던 이재명 후보는 정치개혁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은 상태다. 다당제로의 변화를 위한 제도 개선은 그 자체로 명분이 있는 일이다. 다만 지난 총선에서의 위성정당 사건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게 문제다. 이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주말에 의원총회까지 열어 일련의 제도개혁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정치개혁 논의에 소극적이란 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 정치분야에 관한 TV토론은 이런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는 정치개혁 의제에 대한 어떤 적극적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안에 반대한다면 자체적인 대안이라도 제시해야 할 판인데, 토론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발언만 계속하고 있다.

어차피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무엇을 약속하더라도 반신반의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확정했다 하더라도 그게 실제로 현실이 될 것이냐에 대해선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여전히 회의적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다른 무엇을 주제로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는’, 더 나아가서는 ‘척이라도 하는’ 태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잣대로 보면 적어도 이번 주는 노력하는 척이라도 하려는 이재명 후보와 책임을 떠넘기는 윤석열 후보라는 인상의 차이가 뚜렷한 상태로 시작된 셈이다. 대선 기간에는 막바지로 갈수록 바로 다음날을 예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선의 승부를 위해 이재명 후보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라는 지금의 주장에 책임지는 모습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고 윤석열 후보는 이에 맞설 수 있는 전망과 비전을 새롭게 내놓아야 한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은 여전히 높지만 이제 오로지 그것만으로는 결말을 판단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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