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이제훈 두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여성들의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 했다. 또한 신세경, 유리 역시 뭇 남성들의 드라마 시청 욕구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나 흔한 꽃미남 배우들과는 뭔가 다른 유아인에 대한 기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관심을 갖게 했던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유아인이야말로 외모와 연기력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 갖춘 배우이다.

그런 기대 속에 뚜껑을 연 패션왕 첫 회의 일단 빠른 전개는 요즘 시청자의 빠른 호흡에 만족을 줄 수 있었다. 시놉시스를 읽어가듯이 간략하게 인물들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빠르게 이동시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닐지 모를 일이었다. 매 상황 실종된 개연성은 드라마 몰입에 큰 방해가 되었다. 특히 유아인의 동선 그리기는 거의 작가의 전지적 입장에서 밀어붙인 기색이 역력했다.

1회는 유아인과 신세경의 행적에 지중했다. 신세경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장미희 밑에서 자랐다. 콩쥐팥쥐 플롯을 그대로 계승한 신세경은 일단 가련의 아이콘이다. 장미희 딸의 잘못으로 화재가 났지만 그 잘못을 뒤집어쓰고 쫓겨나 동대문에서 짝퉁의류를 만들어 파는 유아인의 공장에 취직하게 되면서 단절됐던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

뛰어난 실력으로 미국 디자인 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던 신세경은 유아인의 지시대로 명품 카피 대신 내놓은 디자인이 대박을 쳐 유아인을 단숨에 빚더미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 덕에 미국 디자인스쿨로 떠날 비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아인은 어릴 적부터 신세경을 알고 있었다. 구체적인 관계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남녀 주인공들이 길고 긴 인연을 갖고 있다는 한국 드라마의 고루한 특징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 젊은 배우들과는 별로 어울리는 설정은 아니었다. 새삼스럽게 트집 잡을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낡은 플롯은 이 드라마의 구태의연함에 대한 복선이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린 법이 없다고 패션왕 첫 회는 주인공의 핵심 동선에 개연성이 사라져 배우들의 매력을 갉아먹었다. 특히 유아인의 행적은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억지로 짜깁기를 해서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신세경이 미국으로 떠난 후, 갑자기 유아인은 조폭 두목의 애인과 하룻밤을 보낸 일로 인해 사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도망 다니다가 결국 대게잡이 배에 올라탔다. 그러다 미국으로 가게 된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데, 주인공답게 혹독한 시련을 겪게 하려는 의욕까지 더해져 무리수가 만발하였다.

그 장면을 보고 허술한 CG를 흠잡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보다는 억지가 아니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유아인을 미국으로 보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신세경이 디자인스쿨에 합격하고, 이제훈이 디자인실장과의 마찰로 미국지사로 발령 나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은 설정이었지만 정작 중요했던 유아인의 미국행 설정에 힘을 싣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유아인이 집 떠나 개고생을 하게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첫 단추는 일단 잘못 꿰졌다. 그래서 패션왕을 계속 보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무리수를 꾹 참을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묘하게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유아인이 조폭 두목의 애인과 사고를 쳤다가 모텔방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터무니없기는 했지만 흥미로웠고, 몽둥이를 품에 안고 잠을 자는 신세경의 모습도 전작인 뿌리 깊은 나무의 무거운 모습과 달리 귀여운 변신이었다. 몇몇 장면들마다 개연성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지만 배우들의 매력으로 많이 커버되면서 조금씩 흥미가 보태졌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1회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유리에 대한 기대와 불안도 2회를 기다리는 요소 중 하나이다. 아이돌의 연기도전에는 항상 발연기의 함정이 도사리기 마련이라 미리부터 유리의 연기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아 결과가 궁금하다. 첫 연기 도전부터 주연급 캐스팅이라는 파격에 걸맞은 연기력을 갖췄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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