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상상만 했던 미래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미래였다. 인공지능 로봇이 노인의 말벗이 되고, 학교 수업이 비대면 화상 수업으로 대체되고, 아이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며, 민간인도 우주로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내 세대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상상할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을 SF라고 생각했다. 공상과학소설이나 공상과학영화나 공상과학 만화에서만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공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릿속에만 있는 것, 꿈꿔왔던 미래가 실현되고 있다. 현재는 미래고 미래는 현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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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하철도 999’를 보며 자란 세대이다. ‘은하철도 999’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에만 누릴 수 있는 늦잠을 포기했다. 그 시절 토요일에도 학교 가야 했고, 등교 시간도 빨라 아침에 늦게까지 이불 속에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날은 일요일뿐이었다. 이불 속에서 기계 인간에게 어머니를 잃은 철이가 완벽한 인간인 기계 인간이 되기 위해 메탈과 함께하는 우주여행에 나도 기꺼이 동행했다.

기계로 폐허가 된 행성도 있었고, 편리한 기계 때문에 더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행성도 있었고, 기계에 모든 것을 뺏긴 행성도 있었다. 어떤 행성이 나오든 모든 결론은 기계문명의 폐해로 귀결되었다. 기계문명이 미래를 어떻게 병들게 하며 나락으로 떨어뜨리는가를 온 힘을 다해 성실하게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은하철도 999’에서 나오는 기계문명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였다.

당시 나에게 '은하철도 999'는 흥미롭기도 했지만,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세계에 대한 충격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은하철도 999'에서 기계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던 모습과,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 하던 사람들이 결국 집보다 커지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SF영화와 SF소설이 소재도 주제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때는 외국인을 보는 것도 신기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기계 인간, 우주여행은 말 그대로 공상이었다.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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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위 SF라고 말하는 공상과학소설이 정말 공상일 뿐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공상과학이라고 말하는 SF는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의 약칭으로 공상과학을 주제로 하며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학 장르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F소설은 장르문학으로, B급 문학으로, 하위문학으로 구분 짓고 마니아만 즐겨 읽는 문학이라고 여겼다. SF소설은 문학적 가치 면에서 평가절하되어 항상 수면 아래 있었다.

문학에서 SF소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서점에서 전면에 배치되고 인기 소설이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SF소설 문학상도 많이 생기고, SF 작가도 많아지고, SF소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SF 작가가 많아지고, SF소설이 인기 소설이 되었다는 것은 독자가 SF소설을 원하고, 많이 찾고, 읽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을 다시 생각해보면 SF가 더는 먼 미래이며, 공상이 아닌 현재이며 사실이며 미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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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로봇이 우리의 일을 대신하고, 우주정거장이 우주에 설치되고, 기계가 약을 조제하고, 음식점에선 직원 없이 주문이 가능하며, 건강 체크는 스마트 시계 하나로 충분하다. 우리가 SF라고 말했던 공상과학이 현실이며 SF소설은 미래도 공상도 아닌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SF적 현실에 발은 딛고 자라고 생각하고 느끼며 살지만, 부모는 아직 20세기 언저리에 머물며 21세기, 22세기를 바라본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우리 조상들의 농담 섞인 속담이 맞다. 십 년 사이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사회는 그에 발맞추기 위해 허덕거리고 있다. 변화는 가속될 것이고 우리는 기계문명 세계 문을 열었으므로 기계 인간의 출현은 필연적이다. 기계 인간과 인간의 공존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렇다면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미래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계 인간의 출현이 디스토피아와 연결되기보다는 유토피아와 연결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현실이며, 현재며, 미래이기 때문에 작가로서 생각해본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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