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대장동 녹취록'이 여야의 입맛에 따라 공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언론 비판이 제기된다. '윤석열은 죽어', '이재명 게이트' '그분' 등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은 별다른 검증없이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1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대장동'으로 격돌했다. 이 후보는 '화천대유 관계자 녹취록'이라며 '윤석열은 영장 들어오면 죽어', '윤석열이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라고 해' 등의 발언을 거론했다. 이에 윤 후보는 "제가 듣기로 그 녹취록 끝에 가면 '이재명 게이트'라는 말을 김만배가 한다고 하는데 그 부분도 말하라"고 했다. 이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윤석열 게이트' '이재명 게이트'라며 논평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왼쪽)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1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두 후보의 주장 모두 신빙성이 떨어진다. 22일 국민의힘은 '윤석열은 죽어'라는 문구가 포함된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만배 씨는 '윤석열은 영장 들어오면 죽어'라고 말하기 전에 '양승태 대법원장님은 되게 좋은 분이야' '윤석열은 대법원장님, 저거(명예)회복하지 않는 한 법조에서'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특검 시절 사법농단 수사로 양승태 사법부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에 영장이 청구되면 판사들에 의해 죽는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의 '이재명 게이트' 발언은 2020년 10월 26일 김만배 씨-정영학 회계사 녹취록에 담겼다. 김만배 씨가 갑자기 '이재명 게이트'를 언급해 앞뒤 맥락을 살펴봐도 무슨 의미인지 유추하기 어렵다. 이 내용을 보도한 월간조선도 "해당 대화의 앞뒤를 보면 ‘이재명 게이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당시는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기 약 10개월 전이다. 민주당은 이 녹취록 당시 이 후보가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 무죄를 받았고, 대장동 개발업자들이 이를 '게이트'라고 불렀다며 윤 후보가 허위사실을 억지로 꿰맞췄다는 입장이다.

24일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대장동 녹취록을 둘러싼 이 후보 측 주장이 상당히 왜곡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윤 후보 측도 녹취록 일부 발언을 근거 없이 침소봉대했다"면서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일단 지르고 보자'식 공격이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드려 합리적 판단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썼다.

서울신문은 이 후보 주장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참하게 해 판사들이 윤석열을 싫어하니 윤석열 검찰의 영장이 들어오면 기각될 것이란 의미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윤 후보 주장에 대해 서울신문은 "적절치 않다. 해당 언급은 2020년 10월의 대화가 기록된 것이라고 모 월간지가 캡처본을 공개했다"며 "당시는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기 훨씬 전으로 김만배씨의 이재명 게이트 발언을 대장동 의혹과 관련짓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고 했다.

같은 날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녹취록에 등장하는 단어나 표현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며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녹취록 내용은 수사를 통해 확인된 게 하나도 없는 데다 대화의 맥락 자체가 불분명해서 진위를 분간하기가 어렵다"고 썼다.

이어 한국일보는 "그런데도 양측은 수사 단서에 불과한 녹취록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표현만 발췌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녹취록 공방은 대선 국면에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려 유권자 선택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두 후보는 억측과 궤변으로 포장된 허위사실에 속아 넘어갈 유권자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2월 24일 서울신문, 한국일보 사설 갈무리

녹취록 속 '대장동 그분'을 둘러싼 논란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동아일보의 '그분' 전언 보도 이후 윤 후보는 이 후보를 '그분'으로 특정해 공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18일 한국일보 보도로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이 '현직 대법관'으로 특정됐다.

동아일보 보도는 전언 형식을 취한 보도였지만 윤 후보와 국민의힘은 국정감사, 논평, SNS 등을 통해 공세에 나섰다. 지난해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그분은 정치인이 아니다"라며 이 후보를 향한 의혹을 부인했지만 소용 없었다.

한국일보 보도 이후에 이 후보와 민주당이 녹취록 속 대법관의 실명을 밝히고 공세에 나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분' 의혹을 받는 조재연 대법관은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조 대법관은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방송 토론에서 한 후보자가 현직 대법관 성명을 직접 거론했다"며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저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김만배 씨와 단 한 번도 만난 일이 없고, 통화한 적도 없다"고 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만배 씨는 조 대법관 자녀에게 거주지를 마련해줬다며 구체적인 주소를 언급하기도 했다.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관련 녹취록 속에 등장하는 '그분'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분'을 보도한 한국일보는 "조 대법관이 연관성을 부인함으로써 그분의 정체는 더욱 혼미해졌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현직 대법관이 정쟁에 휘말린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더 이상 혼란이 없도록 검찰수사를 통해 대장동 그분의 실체와 조 대법관의 연루의혹을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그분을 둘러싼 논란은 애초 검찰의 어정쩡한 태도가 문제"라며 "김만배 씨가 언급한 대장동 비리의 몸통에 대해서는 추가로 규명하지 않았다. 또 조 대법관이 녹취록에 등장하는 사실을 당시에 파악하고도 참고인 조사 등을 벌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은 "대장동 녹취록은 김만배씨 측도 시인했듯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부풀려졌다. (중략)이들이 나눈 대화 자체의 신빙성이 의심받는 마당에 앞뒤 맥락 무시하고 일부 문장만 뽑아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비열한 행위"라며 "'대장동 그분' 공방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대장동 녹취록' 공방의 책임을 민주당과 이 후보에게 물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녹취록 대놓고 왜곡, 대장동 덮어씌우기도 '게이트 史' 기록>에서 "대장동 사건은 이 후보와 김만배 씨 일당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이 후보는 녹취록을 왜곡까지 해 대장동 사건이 '윤석열 게이트'라고 한다"며 "일반 유권자들 중에 녹취록 전체를 읽어 볼 사람이 극소수라는 사실을 이용해 대놓고 조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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