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 한미FTA가 15일 발효됐으나, 매체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진 방송사는 '심층 보도'를 완전히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발효를 하루 앞둔 14일, 미국산 체리, 포도주스, 건포도, 와인 값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등 '긍정적 전망'을 주요하게 전달한 방송3사는 FTA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이나 농민의 '절규'에 대해서는 보도 말미에 잠깐 곁들이는 수준으로 처리했다.

▲ 한미FTA 발효를 하루 앞둔 14일, MBC <뉴스데스크> 첫 번째~두 번째 리포트.

특히, MBC의 보도가 매우 심각하다. 한미FTA 찬반집회를 동시에 다루는 등 최소한 '기계적 중립'에라도 충실하려 했던 KBS, SBS와 달리 부정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것이다.

한미FTA에 대한 한국시민의 반응에는 철저히 귀를 닫은 MBC. 오히려, 한미FTA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친히 '리포트'로 전달하는 '황당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14일, 두 번째 톱인 <자동차ㆍ서비스 시장 기대>라는 리포트 제목 자체가 미국의 '기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MBC는 "미국의 정재계는 자동차, 서비스 분야에서 수출이 늘고,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으로기대하고 있다"며 "화학과 의료장비, 제약산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소고기와 과일을 포함한 농산물의 한국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미국 업계의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리포트는 "미국 언론들이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규모도 점차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FTA로 인해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 규모가 점차 감소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국 이익을 위한 한미FTA'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공영방송인 MBC는 이에 주목하기 보다는 횡재를 맞은 미국의 '상기된' 표정을 단순 전달하기 바쁜 것이다.

발효 당일인 15일도 다르지 않다. "상당수 미국산 농축산물과 와인의 가격이 눈에 띄게 떨어져, 미국산에 소비자의 눈길이 가고 있고" (KBS), "수입업체들이 벌써 손님끌기에 나섰으며"(SBS) "한미 양국 정상이 FTA 발효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했다"(MBC)는 게 방송3사의 톱이다.

▲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연합뉴스

2006년 6월 FTA가 몰고올 파장을 심층적으로 다뤄 큰 화제를 낳았던 KBS 스페셜 <나프타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의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KBS PD)은 이를 '한국 저널리즘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안'이라고 표현했다.

"방송사들이 (한미FTA의) 전체적인 맥락, 구조, 의미 보다는 (와인 가격 하락 등) 매우 표피적이고 단편적인 것에만 집중함으로써 마치 그것이 주요한 측면인 양 보도하고 있다. 현 정치, 자본권력에 유리한 접근"이라며 "우리가 당면한 절박한 위기에는 눈을 감음으로써 사회의 위기 불감증을 확산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강택 위원장은 15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 금융위기로 기존 자본주의적 질서의 재편이 예고되고 있는데 정작 국내 언론계는 현상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라는 낡은 프레임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의식이 없다"며 "한국 언론의 전반적 문제이지만, 특히 방송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한미FTA 발효'라는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낙하산'이 점령한 방송사들은 뉴스를 비롯한 시사프로그램에서도 이를 심층조명하지 않는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ISD)가 자영업자를 비롯한 국내 사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한 캐나다ㆍ멕시코 사례에 기반해 다룬 MBC <PD수첩> '한미FTA'편 조차 '너무 민감한 이슈'라며 가로막는다.

이러한 '탄압' 때문이었을까. 2006년 6월 <나프타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 이후 한미FTA를 심층 조명한 방송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은 까닭에 해당 프로그램은 아직도 트위터 등지에서 회자되고 있다.

"제가 6년 전에 만들었던 프로그램이 아직까지 회자되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너무나 참담합니다. 언론을 비롯한 이 사회 전체의 비극이에요."

이강택 위원장은 MBC 사측이 <PD수첩> '한미FTA'편 제작을 중단시킨 것에 대해서는 "중세적 언론탄압"이라고 매섭게 비판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소박한 사명에 충실하는 프로그램조차 막아선 행태가 군사독재시절의 보도지침과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6년 전에 저에게도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저는 기계적 중립이 아닌 진실을 보도하는 게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는 제가 취재했던 2006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황이 악화됐어요. FTA가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것은 멕시코의 현실이 입증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15일 언론노조는 '낙하산 사장 퇴진'에서 'MB 심판'으로 투쟁의 방향을 대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강택 위원장은 "MB정부가 낙하산을 내려보내 언론사를 대리통치한 것이기 때문에, 아바타들의 배후에 있는 실체를 겨냥하겠다는 것"이라며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문제가 풀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3일 오전 9시 서울광장에서는 열리는 'MB심판 1차 총궐기대회'가 'MB 심판 투쟁'의 첫 번째 행동이다.

"예전 같았으면 총파업을 선언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총궐기대회를 개최한 것은 상향식으로 내려보내는, 일종의 '뻥 파업'을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아래의 자발성에 기초한 동력을 확장시켜서, 실행력을 담보하는 실질적 총파업으로 나아가겠다는 전략이죠. 총궐기대회 이후에는 실질적 총파업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수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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