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LG에 신임 김기태 감독이 취임하자 초보 감독이라는 점에서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LG의 스토브리그를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을 얻었습니다.

팀의 주축인 세 명의 FA 선수가 이적했을 때 보상 선수로 즉시 전력감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윤지웅, 나성용, 임정우 등 젊은 유망주들을 선택하면서 ‘내가 없어도 LG는 영원하다’며 당장의 성적보다는 팀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박현준과 김성현의 승부조작으로 인해 LG는 여론의 지탄을 샀지만 김기태 감독은 뒤숭숭한 팀 분위기 속에서도 선수들을 다독이며 전지훈련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순철, 김재박, 박종훈 등 LG의 전임 감독들이 조급증으로 인해 팀 성적은 떨어지고 혹사로 인해 부상 선수들이 속출했던 전철을 밟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12일 LG의 올 시즌 마무리 투수로 리즈를 낙점했다고 김기태 감독이 밝히면서 임기 첫해 시즌 초부터 성적에 대한 중압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리즈에게 마무리 투수를 맡기게 된 이유는 우규민과 한희 등 전지훈련에서 마무리 후보로 꼽히던 투수들의 부진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용수와 이상훈 이후 변변한 마무리가 없어 매년 반복되었던 뒷문 불안이라는 악몽을 올해만큼은 피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하지만 박현준이 퇴출되고 리즈가 마무리 투수로 옮기면서 제대로 된 선발 투수는 주키치 하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제2선발부터 제5선발까지 검증되지 않은 투수들로 채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임찬규, 임정우 등 1군 선발 등판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이 당장 제2선발 등으로 채워질 전망입니다.

▲ LG 김기태 감독으로부터 올 시즌 마무리 투수로 낙점된 리즈. 선발 투수였던 리즈의 보직 변경으로 인해 LG는 제2선발부터 제5선발까지 모두 검증되지 않은 선수들로 채워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습니다.
경험이 적은 신인급 투수가 선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제3선발까지 검증된 투수들이 로테이션을 지키는 가운데 ‘우산 효과’를 받으며 제4선발이나 제5선발로 승패에 대한 부담 없이 등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당장 제2선발이나 제3선발로 등판하게 되면 승패에 대한 부담이 커지며 상대 에이스급과 맞대결할 가능성이 높아져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투수는 맞으며 성장한다’고 하지만 패전만을 거듭하며 선발 투수로 성장하기는 어렵습니다. LG의 무수한 투수 유망주들이 많은 선발 등판 기회를 얻고도 왜 이제껏 선발 투수로 성장하지 못했는지 돌이켜보면 이유는 자명합니다.

함께 선발 투수로 거론되는 이대진, 정재복, 김광삼 등 비교적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은 반대로 구위에 약점을 지니고 있어 제2선발이나 제3선발을 맡기기에는 불안이 상존합니다.

지난 시즌 164.2이닝(리그 8위)을 소화한 검증된 이닝 이터 리즈의 보직을 굳이 변경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경기마다 기복이 있으며 제구가 불안정한 약점을 지니고 있는 리즈가 과연 매 경기 꾸준한 제구력을 과시해야 하는 마무리 투수로 연착륙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성공적인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는다 해도 리즈에게 마무리 기회가 얼마나 올 것인지 궁금합니다. 리즈, 우규민, 한희 등이 모두 불펜에 투입되어 필승계투조를 이룬다 해도 등판할 기회가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발 투수가 경기 초반에 무너지면 투입 기회가 일찌감치 사라져 벤치만 덥힐 뿐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연습 경기에 등판하며 복귀를 서두르고 있는 봉중근까지 불펜에 합류하면 선발진은 휑하니 비워둔 채 불펜에 전력을 쏟아 붓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불펜 몰빵 야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기태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과 김경문 감독의 대조적인 투수진 운영과 결과를 참고해야 할 듯합니다. 로이스터 감독은 2008 시즌 롯데 감독을 맡은 이래 뒷문이 취약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선발진 육성에 힘써왔습니다. 반면 김경문 감독은 두산에서 좋은 투수들은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먼저 배치해 불펜을 강화했습니다. 두 감독은 나란히 팀을 떠났는데 현재 롯데는 두터운 선발진이 강점인 팀으로 남았으나 두산은 선발진 구성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며 선발투수가 가장 강력한 상수(常數)라 할 때 김기태 감독의 ‘불펜 몰빵 야구’에서 장기적인 비전보다 당장의 성적에 대한 부담이 읽혀져 우려스럽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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