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어느 날 오후 눈이 하얗게 쌓인 창경궁을 걸었다. 약속도 없이 한겨울 해 질 무렵에 고궁을 찾은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다. 친구로부터 들은 그녀 소식은 즉시 내 발걸음을 창경궁으로 향하게 했다. 궁궐 주인의 영욕을 지켜보던 오래된 나뭇가지들도 화려한 계절 옷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눈 자락을 덮고 있는 춘당지를 지나 하얀 테두리의 유리 벽 안에서 그녀는 아련한 향기를 담고 피어있었다. 충직한 신하인 듯 벗인 듯, 백매화와 홍매화, 붉은 명자꽃도 그 곁에 있었다.

외세에 의해 강제로 궁의 모양이 바뀌며 세워진 근대식 정원, 창경궁 대온실. 건축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 역사의 일면이요, 근대 건축물로 가치를 담고 있기에 최초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큰 키에 너른 가지를 펼치고 있는 탐스러운 꽃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선홍색, 분홍색의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 동백이다.

창경궁의 동백 (사진=조현옥)

그녀가 처음 온실에 왔을 때는 분명 손님이었을 것이나, 내가 갔던 그 시간만큼은 꽁꽁 얼어붙은 궁의 보물이고 주인 같았다. 다정큼나무와 호랑가시나무는 적당한 거리에서 온실의 푸르름을 지키고 있고, 알알이 붉은 백량금 열매는 생동감을 주었다. 그 밖에도 여러 식물이 있었지만 두텁고 윤기나는 짙은 녹색의 잎과 꽃을 가진 동백의 당당한 모습이 돋보였다.

붉은 꽃잎을 살짝 오므리고 그 안에 노란 꽃술을 품은 단아한 모습의 동백과 막 치장을 끝낸 신부처럼 화사한 분홍치마를 나풀거리는 듯한 동백의 미소는 눈부셨다. 큰 동백나무 곁에 옹기종기 서 있는 몇 그루의 애기동백은 엄마 옆에서 방긋 웃는 아이처럼 행복해 보였고, 아직 연분홍색의 꽃봉오리로 있는 동백도 때가 되면 이야기꽃을 피울 것만 같았다.

창경궁의 동백 (사진=조현옥)

하얀 눈 자락을 덮고 있는 고요한 궁 안에서 그렇게 화사한 동백 꽃송이를 보니 마음속에 봄이 들어오는 듯하다. 동백(冬柏)은 나에게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그런 꽃이었을 것이다.

제주지역에서 12월에 개화하기 시작하여 오동도, 지심도, 동백섬에서 다른 꽃이 많이 피지 않는 겨울을 지키는 꽃이니 사람들 마음에 희망을 주는 꽃이요,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꽃이다. 그래서 동백의 다른 이름이 겨울을 견딘다는 뜻의 耐冬(내동)이었으리라. 동백은 지역에 따라 3~­4월에 피기도 하니 춘백(春栢)이라고도 부른다. 하나의 꽃이 겨울과 봄이라는 전혀 다른 뜻의 이름을 갖고 있으니, 겨울에서 봄을 잇는 꽃, 고통에서 희망을 잇는 꽃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동백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서 주로 자생하며 각 나라에서 특징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있다. 일본에서는 주로 부르는 이름은 椿(춘), つばき(츠바키)라고 한다. 여주인공이 동백꽃을 좋아해 머리에 꽂고 다닌다는 데서 이름 붙여진 베르디의 오페라 ‘Camellia’(카멜리아)’를 ‘춘희(椿姬)’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식 이름이다.

신라 시대 때 중국에 동백을 전하여 중국에는 바다 건너온 붉은 꽃이라는 뜻으로 ‘해홍화(海紅花)’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의 홍도와 거문도에 피는 하얀 동백은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이라 여겨 특별히 ‘서상(瑞祥)’이라고도 한다. 프랑스 명품 ‘샤넬’ 포장지의 꽃이 바로 흰 동백이라 하니 유럽에서도 동백 사랑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벌과 나비가 없는 겨울에 피니 동백의 수정은 주로 동박새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찬 겨울날 동백의 꿀을 먹는 동박새를 본다면 꽃만큼 기쁘게 보아야 할 것이다.

고창 선운사의 동백 (사진=조현옥)

유명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필 무렵’의 배경은 춘천인데, 그곳에도 동백꽃이 피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강원도 사투리로 봄에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를 동박이라고 한단다. 또 동백기름은 값이 비싸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했다. 그래서 저렴한 생강나무 씨앗의 기름을 동백기름 대신 사용했다고 하니 김유정의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붉은 동백꽃을 보면 무채색으로 잠잠한 세상에 신이 강렬한 입김을 불어 넣어 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잎이 한 장 한 장 떨어지지 않고 꽃송이가 뚝 떨어진 모습은 절정의 아름다움과 소멸이 맞닿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시들지 않고 자신을 던져버리는 절개로 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의 뜨거운 심장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이 꽃을 찬미하고 사랑하며 애도하기까지 했던 시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문정희 시인은 동백의 전설을 떠올리며 동백의 생명력과 소멸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동백을 보며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장미처럼 눈부신 열정과 사랑인가 보다. 그래서인지 꽃말에 ‘애타는 사랑’,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 등이 있다.

칠레의 국화로도 사랑받는 이 꽃은 우리나라에서 한약재 이름으로 산다화(山茶花)라 불리며 잎, 꽃, 열매의 다양한 효능을 인정받고 있으며 새로운 효과도 밝혀지고 있다. 동백의 여러 이름과 종류는 같은 이름이라도 경우에 따라 상이한 쓰임이 있기도 하다.

동백섬을 여행하는 딸이 붉은 동백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좋은 친구와 여행하며 그 꽃을 만난 딸에게는 피어있는 꽃송이만큼 행복한 추억의 꽃도 피었을 것이다.

동백섬의 동백 (사진=김규영)

제주의 동백 군락지 중에는 역사적 항쟁의 의미를 담아 조성된 곳도 있고, 붉은 동백뱃지를 만들어 그 의미를 기념하기도 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분명 생명의 작용이요, 삶을 위한 인고의 시간과 소멸까지도 담겨 있으니 사람의 역사 또한 꽃으로 상징할 수 있는 것이다. 한송이 꽃의 의미가 그저 단순한 아름다움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집 근처 꽃집 안에 붉게 핀 동백꽃이 보인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동백꽃이 피었으니 겨울이 시작된 것일까, 봄이 다가온 것일까. 나는 화분 위에 떨어진 꽃송이마저도 소멸이 아닌 생명의 기약으로 보고 싶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동백 군락지인 서천 마량리에 그 꽃이 피려면 3, 4월이 되어야 한다. 그곳에서는 완연한 봄이어야 하는 것이다. 문득 봄을 당기고 싶어진다. 꽃집에서 붉은 꽃송이가 핀 동백 화분을 사 집으로 가져왔다. 일 미터 남짓한 화분을 집 안으로 들이느라 끙끙대면서도 힘들기보다는 봄을 당겨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지금 생각하니 꽃은 마음으로 맞는 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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