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조편성이 지난 9일 결정됐습니다. A조는 대한민국을 비롯해 이란,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레바논 등이 속했으며, B조에는 지난 월드컵 때 나란히 출전한 호주, 일본과 이라크, 요르단, 오만 등이 한 조에 편성됐습니다. 오는 6월 2일부터 최종예선이 시작돼 1년간 대장정에 돌입하게 될 텐데요. 기존 강호들의 꾸준한 선전이냐, 아니면 신흥 다크호스들의 성장이냐를 놓고 치열한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최종예선 조편성, 매치업을 살펴보면 흥미진진한 매치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북한, 바레인 등 기존에 최종예선에 올랐던 팀들의 조기 탈락으로 다소 밋밋한 최종예선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목할 만한 경기들이 꽤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기 뿐 아니라 다른 나라 경기들 가운데서도 주목할 만한 경기, 순위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경기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2009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만났던 한국과 이란 ⓒ연합뉴스
전통의 강호 맞대결: 한국vs 이란(A조), 일본vs호주(B조)

각 조에서 가장 유력한 본선 진출국으로 A조의 한국과 이란, B조의 일본과 호주를 꼽고 있습니다. 모두 월드컵 출전 경험이 많은 팀들이며, 한국, 일본, 호주는 연속 월드컵 출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월한 전력으로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 팀들 간의 대결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빅매치로 주목받게 됩니다. 공교롭게 한국-이란, 일본-호주는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때도 맞붙은 경험이 있는 조합입니다. 각 조 선두 뿐 아니라 양 국의 자존심 대결로 치열한 싸움이 점쳐집니다.

한국과 이란의 역대 전적은 9승 7무 9패로 호각세입니다.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때도 한국은 이란에만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2무승부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특히 이란 원정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은 한국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원정팀에게 힘들었던 이란 테헤란 원정에서 한국이 이기는 경기를 펼치지 못한다면 최종예선 레이스가 힘겨워질 수 있습니다. 아시안컵 뿐 아니라 월드컵 예선에서도 단골로 만나게 된 이란과의 격돌은 흥미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일본과 호주는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 2011년 아시안컵 결승전 등 최근 들어 굵직한 대회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호주가 '히딩크 매직'을 앞세워 이겼지만 아시안컵 결승에서는 이충성의 결승골로 일본이 이겼습니다. 지난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1승 1무로 호주가 일본에 앞섰으며, 역대 전적에서도 이 영향을 등에 업고 7승 6무 6패로 호주가 근소하게 우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두 팀이 만날 때는 늘 한 골 차 승부가 날 정도로 경기 자체가 치열해 어느 팀이 앞설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복수 매치: 한국vs레바논(A조), 호주vs오만(B조), 일본vs요르단(B조)

'복수혈전' 이른바 리벤지(revenge) 매치도 주목할 만합니다. 3차예선에서 의외의 팀에 덜미가 잡혔던 강호들은 이번 최종예선에서 그 팀들을 다시 만나 복수를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반대로 대어를 낚았던 다크호스 팀들은 최종예선에서도 또 한 번의 승리를 통해 월드컵을 향한 꿈을 키우려 할 것입니다. 그 대상 매치가 바로 한국-레바논, 일본-요르단, 호주-오만입니다.

한국과 레바논의 경기는 한국 축구팬들 입장에서 보고 싶었던 매치업이었을 겁니다. 3차 예선에서 홈에서는 대승을 거뒀지만 원정에서 무기력한 경기로 1-2로 패해 자존심을 구겼기 때문입니다. 레바논은 한국전 승리로 사기충천해 이번 최종예선에서도 한국을 만나 승리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번 기회에 홈, 어웨이 모두 승리를 거두고 레바논의 기를 꺾을 필요가 있습니다.

호주도 한국과 비슷한 맥락에서 오만전 복수를 다짐할 것입니다. 호주는 3차 예선 오만 원정에서 전반에 내준 골을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패해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홈에서는 3-0 완승을 거두고도 원정에서 자존심을 구길 만 한 완패를 당한 호주로서는 역시 이번 최종예선에서 오만전 전승을 기대할 것입니다.

한국, 호주와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상대를 여태껏 한 번도 이기지 못해 꼭 승리를 거둬야 하는 팀도 있습니다. 바로 일본과 요르단의 대결이 그렇습니다. 일본은 요르단과 만나 역대전적 2무에 그치며 단 1승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초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도 일본은 요르단에 끌려다니다 후반에 힘겹게 동점골을 뽑아내며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바 있습니다. 하마터면 요르단 때문에 아시안컵 우승 기회조차 얻지 못할 뻔 했던 일본으로서는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 요르단전 승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 월드컵축구대표팀 ⓒ연합뉴스
껄끄러운 상대: 일본vs이라크(B조), 우즈베키스탄vs카타르(A조)

공통점이 없거나 언뜻 봤을 때 평범한 매치업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악연, 질긴 인연 때문에 껄끄러운 상대가 된 두 팀 간의 대결도 흥미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일본-이라크, 우즈베키스탄-카타르가 그 경기들입니다.

일본과 이라크는 한국 축구에게는 '도하의 기적'으로 기억되는 경기를 선보였던 매치업이었습니다. 19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두 팀은 최종전에 만나 운명의 한판승부를 펼쳤습니다. 이라크는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일본은 이기기만 하면 본선 진출을 처음 확정지을 수 있었습니다. 경기가 펼쳐졌고, 예상대로 일본의 파상공세 속에 후반 45분까지 2-1로 일본이 앞서며 본선 진출을 눈앞에 뒀습니다. 하지만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이라크 자파르의 동점골로 순식간에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고, 같은 시각 열린 한국-북한 경기에서 3-0 승리를 거둔 한국은 골득실차로 일본을 밀어내며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에게는 이라크가 은인이었고, 일본에게는 이라크가 발목을 잡은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19년 뒤에 이 둘은 다시 만났습니다. 악연도 있지만 둘 사이에 또 하나 독특한 인연이 있으니 바로 이라크 감독을 맡고 있는 지쿠 감독입니다. 지쿠 감독은 2002년부터 일본 대표팀을 맡아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까지 이끈 경험이 있으며, 이때까지 J리그, 일본 국가대표 등에 헌신하며 일본 축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축구인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부진으로 지쿠 감독은 바로 일본을 떠났고, 4개 클럽 팀을 거쳐 지난해부터 이라크 국가대표팀을 맡아 최종예선을 이끌며 또 한 번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일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쿠가 또 한 번 일본 축구의 발목을 잡는 이라크 대표팀의 선봉 역할을 톡톡히 해낼지, 여러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일본 입장에서는 아주 껄끄러운 경기를 펼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굵직한 대회에서 틈날 때마다 만난 우즈베키스탄과 카타르 간의 경기도 숨은 빅매치입니다. 둘은 2001년, 2009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2차례, 지난해 열린 아시안컵에서도 한 조에서 만나 주요 대회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월드컵 본선 진출을 놓고 한 조에서 만나게 됐으니 이만하면 질긴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선 진출까지 이루지 못해 묻혀있기는 했지만 둘 역시 만날 때마다 치고받는 수준이 대단해 어떤 경기를 펼칠지 기대가 큽니다. 특히 유력한 본선 진출 후보인 한국과 이란에 대항할 팀이라는 점에서 만약 이 팀들의 발목을 잡고 비교적 유리한 레이스를 펼쳐나간다면 두 팀 간 매치업은 상당한 주목을 끌 것으로 전망됩니다.

3차예선을 통해 확인했듯이 최종예선에 진출한 팀들의 전력이 워낙 평준화 추세를 보여서 모든 경기들이 팽팽한 접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유독 눈에 띄고, 두드러져 보이는 이 팀들간의 맞대결은 최종예선 내내 많은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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