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괴상한 대선이 계속되고 있지만, 승부는 결국 진영 간 대결구도로 갈릴 것 같다. 대선 한 달을 남겨 놓고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윤석열 후보의 상승세, 이재명 후보의 하락세가 경향적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양 진영이 최대결집에 나서고 있는 듯 보인다. 따라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직전까지 두 후보 지지율 모두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겠지만, 절대적인 수치 자체는 소폭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어쨌든 두 후보 중 한 명은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동안 이 지면에서 양 후보 모두에 대한 나름의 조언과 평가를 해왔다. 이쯤에서는 냉정한 중간점검이 필요하다. 어느 세력이 집권할 것이냐의 문제를 떠나, 이번 대선 이후 우리 정치는 어디로 갈 것이냐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선 이후 ‘진보’는 어떻게 될까? 과거에도 그랬지만 촛불시위 이후 특히 이 정부를 많은 사람들은 ‘진보정권’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부른다. 정권 핵심부 인사들도 그런 분류법을 인정한다. 그러나 ‘진보정권’이 한 일이 모두 진보적인 것인지는 의문이다. 다들 동의할 것이다.

‘진보’를 내세운 정권이 진보적이지 않았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이 정권과 한국 리버럴 정치 일반을 악마화 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의지가 없었던 사람들이 ‘진보’를 내세워 사람들을 속여 정권을 잡고,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자기들끼리 이익분배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주장하는 ‘정권교체론’은 정확히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세상만사를 이렇게 쉬운 방식으로, 특정집단을 악마화 하는 걸로 다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민주당 정권과 한국 리버럴 정치의 진보를 향한 의지가 좀 더 분명했다면, 특정인들이 권력을 사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쓰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을까? 성인군자들이 집권했다면, 뭐가 좀 달랐을까? 아니라고 본다. 양상은 달랐어도 평가는 비슷했을 거다. 역대급 대선이라는 지금 이 상황은 악당들의 흉계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리버럴 정치는 지금 윤석열 후보가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보수정권을 악마화한 덕분에 집권에 성공했다. ‘1987’을 끝없이 재소환하며 ‘민주 대 독재’ 구도에 안주한 것도 본질적으로는 이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윤석열 후보의 집권은 세력의 교체가 될 수는 있어도 한국 정치가 제자리걸음 해온 관성적 방식에서 크게 달라질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게 진보적일 수 없는 세력과 집단이 ‘진보’의 포장지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다. 따라서 윤석열 후보가 집권할 경우 진보는 지금처럼 빈 껍데기 같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연합뉴스)

이재명 후보가 집권할 경우는 어떨까?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을 주장한 이래 ‘급진적인 진보 인사’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그 기본소득이 진짜 기본소득 맞느냐는 의문과 함께 전형적인 포퓰리스트 아니냐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실제 이재명 후보가 과거에 했던 주장들은 찬찬히 뜯어보면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추동하는 진지함이 아닌, 약자들에게 ‘현금성 복지’라는 시혜를 조금 더 베푸는 눈 가리고 아웅식 정치관으로 비춰진다.

황당한 점은 대선 캠페인을 거치면서 이재명 후보의 그러한 ‘급진적’이라는 느낌적 느낌마저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이재명 후보 측은 상대 후보에 대한 거부감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재집권 바람 외의 어떤 당위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진정성 없는 악당’의 이미지만 남았다. 이대로 투표일까지 간다면, 집권을 하더라도 그나마의 진보적 정치를 해볼 동력은 이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권’이 하는 여러 일들은 ‘진보’의 한 갈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애초 사회 구조의 거대한 변화를 추동하는 수단으로 모색됐던 ‘기본소득’ 등의 구상은 소액의 ‘지원금’ 수준으로 격하된 상태로도 찬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정책’은 실행돼도 문제, 안 되어도 문제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파장의 책임은 ‘진보’로 상징되는 일련의 철학 체계가 모두 뒤집어 쓸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났던 비극이 소극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것이다.

어느 후보가 집권하든 ‘진보’가 불행을 피할 수 없다면, 그럼에도 장기적 미래를 준비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저런 평가가 갈리지만 적어도 원내에선 정의당이, 이번 대선에선 심상정 후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선거법 개정이라는 ‘이익’을 위해 ‘진보’라는 명분을 포기한 거 아니냐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당의 ‘비호감 후보’에도 불구 심상정 후보의 성과가 저조한 것은 안철수 후보라는 양당 후보에 대한 반감을 흡수할 대체재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앞서의 함정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지지율이 저조하더라도 명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진보의 미래는 그나마 기대해볼만 할 것이다. 과거엔 ‘맞는 얘기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시기상조론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없고 오히려 ‘진정한 진보’의 정치는 위선과 불공정의 이념적 원조인 것처럼 비난받고 있다. 심상정 후보가 최근 ‘칩거’를 선택한 것도 이걸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칩거 이후의 심상정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지워진 사람들을 대변하겠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본다. 그러나 이게 예를 들면 저쪽은 이대남을 잡았으니 나는 이대녀를 잡겠다는 식의 ‘선거 전략’으로만 받아들여져서는 분명한 성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행보를 통해 일부의 유권자들, 하다못해 심상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여론조사에서 응답하는 사람들에게라도 진보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다. 현재의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가 아니라, 진보정치의 앞날을 위해 표를 달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사망선고를 받은 듯한 가치지향으로서의 진보와 달리 보수는 당분간 별 걱정이 없어 보인다. 이준석 대표로 상징되는 젊은 보수의 흐름이 미래를 예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인, 지식인, 정치인들은 평가절하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우습게 봐선 곤란하다.

물론 문재인 정권이 젊은 여성표의 쏠림이라는 호재를 겪었음에도 지금은 외면당하는 것처럼, ‘이대남’의 바람을 탄 국민의힘도 몇 년 만에 버림받는 사태를 목전에 둘 수 있다. 젠더적 백래쉬와 반중정서를 활용하는 이준석 대표식의, 포장지만 바뀐 구태정치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진보가 타산지석 삼아야 할 것은 어쨌든 오늘의 보수정치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늉이라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늉이 정당화되는 것에는 제대로 된 대안이 못 돼온 진보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걸 깨닫는 대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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