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K리그를 당황하게 했던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K리그 챔피언이자 지난해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팀이었던 전북 현대가 중국 챔피언 광저우 에버그랑데에게 1-5로 대패한 것이 그것입니다. 한중일 챔피언끼리 대결을 펼친다 해서 이른바 '죽음의 조'라고 애초부터 인식되기는 했지만, 중국 클럽 팀에 K리그 챔피언이 이토록 비참하게 깨질 줄은 몰랐기에 충격 여파는 컸습니다. 전북이 일부 포지션에 정예 멤버로 나서지 않아 패했다고 애써 둘러댈 수 있기는 했어도 광저우의 경기력은 많은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고, 적어도 그 경기에서만큼은 이길 자격이 있었습니다.

광저우 에버그랑데라는 팀이 놀라운 발전을 하고,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할 실력을 보여준 데에 막강한 자금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물론 그럴 만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팀은 2부 리그에서 맴돌던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부동산 재벌인 헝다 그룹이 이 팀을 운영하면서부터 제대로 리빌딩됐습니다. 팀 수준이 올라갔습니다. 다리오 콘카라는 브라질리그 MVP 선수를 세계 최고 연봉 3위의 가치로 인정하며 데려왔는가 하면 지명도 있는 세계적인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광저우의 과감한 투자에 중국 축구판 전체가 뒤흔들렸을 정도로, 불과 몇 년 만에 천지개벽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광저우는 2부 리그에서 1부로 올라온 지 단 1년 만에 중국 슈퍼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광저우에 관심 갖는 현지 팬들도 당연히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만큼이나 주목할 것이 바로 이 팀의 사령탑인 이장수 감독입니다. 우리에게는 10여 년 전부터 '충칭의 별' '축구 한류 1세대'로 익숙해 있던 이장수 감독이 광저우에서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참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북을 상대로 놀랄만한 결과를 낸 데에는 최고의 선수들을 최고의 기량으로 조련해 낸 이장수 감독의 지도 덕이 분명 컸습니다.

▲ 7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전북 현대-광저우 에버그란데 경기에서 대승을 거둔 광저우 이장수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부 팀을 우승시킨 '마이다스의 손'

중국 축구계에서 이장수 감독은 그야말로 전설로 통합니다. 1998년 충칭 리판을 시작으로 칭다오, 베이징 궈안, 광저우 에버그랑데까지 10년 넘게 중국 프로축구 감독을 해 온 이 감독은 베이징을 제외하고는 맡은 팀마다 우승컵을 챙기며 '우승 청부사'로도 불립니다. 약체 팀을 강팀으로 만들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면모를 보이며 '마이다스의 손'이기도 했습니다. 하부 리그를 전전하던 충칭을 FA컵 우승(2000년)으로 주목시켰고, 역시 만년 하위팀이었던 칭다오를 또다시 FA컵 우승(2002년)으로 올려놓으며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감독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2010년부터 맡은 광저우 팀에서 이 감독은 2부 리그 우승, 1부 리그 우승이라는 위업까지 달성하며 중국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뤘습니다. 이미 이 감독은 2000년 충칭을 FA컵 우승으로 이끈 공로로 중국축구협회로부터 올해의 감독상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이장수가 '장수 감독'이 될 수 있었던 비결

하지만 이런 결과만큼 내용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명 이장수 감독은 내용 있는 성과를 냈기에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이라 할 수 있는 중국 축구판에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온갖 어려움에서도 이 감독이 이름처럼 '장수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장수 감독에게는 결코 '선수빨'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맡은 팀들이 대부분 약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팀의 약점을 이 감독은 선수들의 강한 조직력으로 커버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나태한 중국 선수들에 한국식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고, 강한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하며 팀 자체에 동기부여를 넣고 힘을 불어넣는 데 힘썼습니다. 그것이 충칭, 칭다오, 광저우에서 잇따라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었고, 이는 중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그나마 현재 맡고 있는 광저우 팀 스쿼드가 이장수 감독 입장에서는 역대 중국 팀을 맡아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스쿼드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개인플레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북 현대 전에도 이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막강한 스쿼드를 보유하고도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하는 중동 축구와는 달랐습니다. 오로지 팀이었고, 팀에 녹아든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가 중용됐습니다. 선수의 개인 기량과 함께 조직력이 잘 갖춰진 광저우는 그렇게 강한 팀이 됐고, 전북을 완파시키는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원리 원칙을 굳건히 지키는 것도 이장수 감독을 돋보이는 요소가 됐습니다. 중국 축구의 부조리에 이장수 감독은 수차례 흔들릴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1년 충칭을 떠난 데에는 심판의 노골적인 편파판정이 있었으며, 2009년 베이징 궈안을 떠났을 때는 구단 경영진의 선수 기용 간섭으로 인한 마찰 때문에 갑작스레 물러났습니다. 승부조작 제의, 선수들의 항명, 월권 등 온갖 부조리한 일들이 판쳤던 상황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감독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쪽 같았습니다. 단호하게 아닌 것은 아니라며 거절했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했습니다. 중국 축구계 입장에서는 다소 딱딱하게 여길 수 있지만 이런 이장수 감독의 '단호함'에 오히려 팬들은 매료됐습니다. 이것이 그가 중국 축구판에서 성공한 외국인 감독이 되고, 자연스레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인 힘이 됐습니다.

광저우, 이장수의 도전을 지켜본다

광저우 에버그랑데의 목표는 이미 두 번 다 이뤘습니다. 2010년 2부 리그 우승,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티켓 획득이 그것이었습니다. 희한하게 이 목표는 모두 정확하게 이뤄냈습니다. 이제 그들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입니다. 설레발일 수는 있어도 분명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보여준 광저우 전력은 우승을 할 만한 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광저우 팀의 성장이 돈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한국 축구의 힘을 알리는 감독, 이장수 감독이 있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장수 매직'이 아시아 축구를 뒤흔드는 힘을 보여준다면 이 감독을 바라보는 한국 팬들 입장에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일본, 중동 뿐 아니라 중국의 성장은 분명 우리 K리그에도 자극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장수 감독의 도전을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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