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울 정도로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도 변치 않은 미덕이 있다면 명곡들을 다시 듣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도전자라 할지라도 보통은 원곡의 감동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디션이라는 긴장감과 낯선 무대에의 공포 등등을 모두 이겨내면서 불러야 하는 아마추어가 원곡의 능수능란함을 보여주기란 좀처럼 힘들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원곡의 감동의 근처만 가도 참 잘했다 해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끔은 미친 도전자들도 나타난다. 생방송 진출자를 고르는 보이스 코리아 배틀라운드 첫 번째 무대에 선 장재호와 황예린이 그런 경우였다. 이들은 별과 나윤권이 부른 ‘안부’를 불렀다. 결과는 경악할 정도로 원곡을 넘어선 감동이었다.

제2의 김태우라 해도 좋을 거구의 장재호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미성을 뽐냈으며, 스무 살의 황예린도 노래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으로 나이 많은 장재호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감히 원곡 대비 200% 이상의 곡 해석과 감동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 무대였다.

방송이 끝나고 다시 보기를 무한대로 할 정도로 이들의 노래는 배틀 라운드의 기대감을 한껏 키워주었다.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위대한 탄생 톱5의 무대가 초라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외형적으로 야수와 미녀 아니 김형석의 표현대로 킹콩과 미녀라고 할 정도였지만 이들이 부른 안부는 강타에게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게끔 감성을 자극했다. 한마디로 장재호와 황예린은 가장 러블리한 ‘안부’를 불렀다고 할 수 있다.

노래를 부르던 중 장재호가 두 번씩이나 음이탈을 보였지만 그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심사위원들 누구도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그 실수를 지워버려도 좋을 만큼 장재호, 황예린 두 사람의 하모니는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미션들 중에서 으뜸이라고 할 정도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듀엣곡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슈퍼스타K 장재인과 김지수가 불렀던 신데렐라일 것이다. 화려한 가창력의 서인영의 신데렐라와는 다른 파격의 편곡으로 충격을 주었다며, 장재호와 황예린의 안부는 사랑스럽다, 사랑하고 싶다의 감성을 충만케 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그러나 배틀라운드는 잔인했다. 아무리 좋았더라도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보컬 트레이너 박선주와 상의 끝에 신승훈은 장재호를 뽑았다. 아마도 대부분 신승훈의 선택에 어렵지만 손을 들어줄 수 있는 결정이었지만 워낙 좋은 무대를 보여준 황예린이 너무도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후죽순 생겨난 오디션 프로그램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가수 과잉 시대를 맞고 있다. 댄스 아이돌을 중심으로 이미 그룹 역시 포화상태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여전히 혼성 듀엣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멀리 라나에로스포를 시작으로 한 드문 혼성듀엣이 가요사에 남겨둔 명곡들은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감성에 물을 적셔주고 있다.

배틀 오디션의 즐거움은 흔치 않게 혼성듀엣을 만날 수 있다는데 있었다. 물론 이후로 장재호, 황예린 만큼의 감동을 줄 듀엣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등장으로 기대감은 높아질 수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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