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tvN 금토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가 1월 28일 12부를 끝으로 종영했다. 마지막 회 2.841%(닐슨코리아 케이블 기준), 시청률 면에서 흡족한 성과는 아닐 수 있다. 거기에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이로운 소문>의 유선동 피디와 김새봄 작가의 후속작이었으니 더더욱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웹툰 원작으로 화제였던 <경이로운 소문>이 드라마로 방영되며 작가 교체 등 잡음에 이어 결국은 용두사미란 평가를 받은 데 비하면 <배드 앤 크레이지>는 나름의 성과를 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비록 많은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신선한 구성으로 범죄 수사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배드 앤 크레이지>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경이로운 소문>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경이로운 소문>이 드라마 초반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나쁜 놈들을 통쾌하게 단죄한다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드라마 후반 시청자들 비판의 핵심은 주인공들이 악의 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상에 나쁜 놈들은 많지만, 그들은 늘 법의 그물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데, <경이로운 소문>의 주인공들은 생사의 경계에서 저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능력으로 그들을 처절하게 단죄해냈다.

미친 놈이 정의의 사도?

tvN 금토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

<경이로운 소문>의 바로 이 '시청 포인트'를 <배드 앤 크레이지>가 살려낸다. 나쁜 놈들을 일단 쳐부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미친 놈'이 말이다.

시작은 '배드'한 놈이다. 문양경찰청 반부패수사계 2팀 팀장인 경감 류수열. 그는 반부패수사계 팀장이지만 그 자신이 부패한 경찰이다. 출세지향주의 형사, 그래서 그는 윗분이 시키는 대로 사건을 만진다. 웬만하면 잡음 없이 해결하는 게 그의 방식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눈앞에 미친 놈이 한 명 등장한다. 그를 ‘개 패듯'하며 나타난 자칭 K. 가죽잠바에 헬멧을 쓰고 나타난 K는 출세에 눈이 멀어 사건을 대충 덮으려는 류수열을 응징하는 데서 모자라 그를 범죄의 현장으로 내몬다. 당연히 류수열은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심지어 범죄와 연루된, 아니 그 자신이 살인사건과 약물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을 향해 발차기를 날린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바뀐 화면에서 도유곤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고 있는 당사자는 K가 아니라 류수열이었다. 이 헷갈리는 반전, 알고 보니 류수열은 출세를 지향하지만 그의 '내면'에 있던 또 다른 자아는 그런 양심에 반한 상황을 못 견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자아가 K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류수열을 진실을 향해 이끈다.

tvN 금토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

하지만 K의 등장은 그저 내면의 소리만은 아니다. 문양시의 복마전과도 같았던 도유곤에 대한 수사 과정은 <경이로운 소문>의 익숙한 수사 방식이다. 한 도시를 장악한 악의 축, 그 비리의 단초는 살인사건 수사에서 시작되고, 그 끝에서 만난 파렴치한 범죄자에 대한 단죄이다.

K와 류수열의 ‘합동작전’ 식으로 물불 안 가리고 범죄 현장으로 돌진한 수사 덕분에, 결국 도유곤은 법의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그 도유곤이 호송 과정에서 죽고 만다. 알고 보니 도유곤 뒤에, 러시아에서 들여온 강력한 마약을 유통하는 조직이 있었던 것.

드라마는 총 3부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K의 등장과 함께 K와 갈등하며 국회의원 비리와 살인을 수사하는 도입부,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자아인 K와 손발을 맞춰 마약조직 수사에 나선 류수열이다. 거기엔 이 드라마 초입, 류수열이 대충 말을 맞추려 했던 선배 형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수사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마약수사 팀장 김계식은 동료 형사의 죽음으로 감봉 처분을 받았지만, 수사를 거듭하다 보니 거기에는 그의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도유곤의 수사 과정이 또 다른 자아 K의 등장이었다면, 이제 마약 조직 수사와 김계식 계장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은 류수열과 K와 합동 작전이자 동료들과의 협업 과정이자, 수열이 동료애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껄렁껄렁한 출세주의자인 줄 알았던 류수열은 알고 보니 어린 소녀의 엄마를 찾아주려다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파출소 순경 오경태(차학연 분)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며, 후배 이희겸(한지은 분)을 감싸려 애쓰는 선배였다.

왜 K가 나타났을까?

tvN 금토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

그런데 마약 수사인가 싶었던 드라마는 후반부 들어 또 다른 길을 간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청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결국 목숨을 끊어버린 사건이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하던 류수열은 범죄를 저지른 소녀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감지한다.

이 '수상한' 사건은 이제 제법 호흡을 맞추고 있던 류수열과 K, 이 분열된 자아의 실마리를 찾는 이야기가 된다. 엄마와 형과 함께 지내던 류수열의 본명은 재희였다. 그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녀처럼,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수시로 구타당하던 피해자였다. 아버지가 죽고 지금의 어머니가 그를 입양했는데,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그 당시 한 시점이 '블러' 처리된 듯 사라져 있다.

그리고 한 사람, 경찰청 의뢰로 류수열을 상담한 의사로 등장한 신주혁(정성일 분). 그런데 그가 폭력 피해 청소년들의 담당 상담사였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조금씩 베일이 벗겨져 가는 류수열의 과거에 정윤호라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tvN 금토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

드라마는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가스라이팅 범죄를 류수열의 과거를 푸는 열쇠로 그려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출세지향주의자 류수열 내면의 양심의 소리인 줄 알았던 K가, 바로 그의 봉인된 '내면 아이'였음을 드러낸다. 너무도 아픈 기억이라서 스스로 묻어버린 류수열의 과거가 이제 K의 모습으로 그를 찾아왔던 것이다.

<배드 앤 크레이지>는 양심을 숨길 수 없는 인물의 분열된 자아로 시작해서 그 속에 숨겨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비리 국회의원의 살인 사건과 마약조직 수사, 그리고 상담사의 청소년 가스라이팅을 엮어내며 ‘입체적인 사건 수사극’으로 만들어 낸다.

다짜고짜 주인공을 패면서 등장한 자칭 히어로 K가 주인공 류수열의 또 다른 자아라 할 때만 해도 '뭥미?'했지만, 드라마는 주인공 내면의 갈등을 잘 버무려내며 꽤나 밀도 있는 수사물이자 심리극으로서 제 몫을 다한다. 이는 '배드'와 유약한 내면 아이를 가진 주인공 류수열이 자칭 히어로 K라는, 얼토당토않은 설정을 설득해낸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