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국 콘텐츠 제작 핵심 인프라인 지상파의 산업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탈지상파' 전략이 제시됐다. 실시간 방송을 기반으로 광고수익을 올리는 기존 수익모델에서 벗어나 콘텐츠 제작과 판매·유통, IP 활용, 부가사업 등에 집중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 20년 넘게 미디어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법과 규제체계를 시급히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뒷따랐다.

공공미디어연구소는 2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차기 정부의 미디어 정책과제 : 방송의 공적가치 제고와 산업기반 확대를 위한 정책방안' 2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지상파 방송의 산업적 가치와 콘텐츠 중심 차별화 전략'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지상파의 미래전략으로 '탈지상파' 전략 확대를 제안했다.

공공미디어연구소는 2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차기 정부의 미디어 정책과제 : 방송의 공적가치 제고와 산업기반 확대를 위한 정책방안' 2차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공공미디어연구소)

이 위원은 "지상파가 가지고 있는 플랫폼으로 돈을 버는 시대는 갔다. 콘텐츠로 돈을 버는데, 콘텐츠 자체가 돈이 된다기 보다 모객 기능으로 어떻게 추가 창출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탈지상파 전략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지상파 모델이 아니라 플랫폼이자 부가통신사업자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위원은 콘텐츠 제작부문에서 지상파가 '제작'과 '채널'을 수직계열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지상파에서 '스튜디오' 방식으로 제작부문을 독립시켜 콘텐츠 기획단계부터 제작·판매 전략을 수립하는 등 수요시장 확보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이 위원은 수요시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지상파 3사가 각자 스튜디오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조인트벤처'(합작투자) 형식으로 대형 스튜디오를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위원은 "대형 스튜디오로 구성해야 투자도 원할하고 리스크도 낮아진다. 규모의 경제 효과도 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이 '탈지상파' 전략을 제안한 배경에 지상파의 산업적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과 함께 시장 변화와 규제체계가 일치하지 않다는 점이 있다. 이 위원은 "국내 미디어산업이 한 순간에 뚝 떨어진 건 아니다. 10년 전에 이미 거론됐던 전략적·제도적 변화 요구가 이뤄지지 않고 응축되다보니 현 상황에서 불가역적 변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지상파의 미래전략으로 '탈지상파' 전략 확대를 제안했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과거 방송시장은 전파 등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국가가 사업자의 시장 진입과 경쟁을 정책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OTT와 같이 방송·통신융합환경에서 등장한 뉴미디어는 국가 통제에서 벗어난 자연발생적 미디어라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글로벌 OTT에 대한 규제나 국내 OTT 육성 등의 정책목표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상파 등 레거시 미디어는 정치적 후견주의와 맞물려 자기혁신을 게을리해 왔다고 이 위원은 분석했다.

하지만 이 위원은 지상파의 산업적 위상과 가치가 우리 경제와 미디어 시장에서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여전히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이 위원은 "지상파의 산업적 가치는 우리나라 방송미디어 산업의 인프라적 특성에 있다"며 콘텐츠 제작·판매, 광고 시장 등에서 지상파의 위치를 설명했다.

이 위원에 따르면 '공급지장효과', 즉 지상파가 사라졌을 때 여타 산업분야에서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작지 않다. 지상파 광고가 없을 때 광고주는 약 2조원 정도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또 외주제작시장에서 지상파가 지출하는 비용은 2020년 기준 4800억 원 규모로 시장의 45%를 차지한다. PP, VOD 프로그램 73%가 지상파 콘텐츠다. 유료방송 플랫폼에서 지상파3사 콘텐츠 제공이 중단됐을 때 서비스 가입자 이탈율은 83%에 달한다. 2019년 기준 지상파 투자에 따른 추가적인 생산유발액은 1조 460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8267억 원, 취업자는 3011명 수준이다.

이 위원은 "지상파가 단순 지상파 매출이나 시청점유율만 놓고 보면 많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방송생태계 전체에서 콘텐츠의 주요 공급자이자 플랫폼 가입자를 유지시키는 하나의 서비스라는 것"이라며 "지상파는 그 자체의 산업규모보다 타 산업에 기여하는 효과가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지상파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상파가 한 축으로서 지탱해줘야 방송미디어산업이 전체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중간투입제로서 지상파의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이 위원은 ▲재정적 지원확대 ▲제작·투자 리스크 완화와 금융지원 ▲대규모 투자재원 펀드조성 ▲제작·유통확대를 위한 지원 ▲지적재산권 활용·보호 ▲방송제작 인력 양성사업 등을 지상파에 대한 정책적 지원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노창희 카이스트 겸직교수는 "우리나라 지상파가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은 40여년 콘텐츠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콘텐츠 경쟁력을 지상파가 제공한 부분을 인정한다"면서 "지상파가 정책의존적으로 생존했다는 데 동의하지만 사업자 잘못은 아니다. 매체 간 융합에 대응이 늦어지면서 지상파, 공영방송, 공·민영 분리 등의 정의에 있어 정책적으로 실패한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다만 지상파 역시 콘텐츠 제작 관행에서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 교수는 "왜 우리나라 제작사들이 넷플릭스를 선호할까. 돈의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지상파와 제작사 간 거래관행 문제가 있다"며 "우리나라가 미국과 달리 왜 적은 돈으로 '오징어 게임'을 만들 수 있는지 보면, 제작인력의 '열정페이' 같은 부분들이 있다. 돈의 문제로 해결이 어렵다면, 제작자들이 일하고 싶은 제작관행에 대한 모범적 사례를 발굴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홍식 중앙대 교수는 "지상파가 향후 사업할 수 있는 부분은 콘텐츠 사업자로서 실시간 방송을 현재 수준에 묶어놓고, 다른 부분을 크게 봐야한다"며 "콘텐츠 자회사든 스듀디오든 외부펀딩을 기획·설계해서 다른 곳에 파는 것까지 포함한 콘텐츠 전략이 필요하다"고 이 위원 발제에 공감을 나타냈다.

이어 유 교수는 미디어 규제체계에 대해 "십수년 간 변한 게 없다. 정부나 규제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미디어시장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규제받지 않는 영역이 성공하고 있다면 규제 받는 영역의 사업자는 상당부분 고초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 공공성은 강화하면서, 다른 면은 최소규제를 적용해 산업적 성과를 내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왼쪽부터)노창희 카이스트 겸직교수, 유홍식 중앙대 교수, 이시훈 계명대 교수,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 (공공미디어연구소 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광고 전문가인 이시훈 계명대 교수는 "공적가치를 구현해야 하는 지상파를 산업적으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재원구조는 변화해야 한다"며 "과거부터 광고 점유율이 떨어지는 영국 BBC 모델을 근거로 광고 의존도를 줄이고 콘텐츠 판매 등의 재원개발을 말씀드렸다. 새로운 재원 개발 아이템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디어커스 협업과 같은 한계가 있는 재원보다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재원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결국 지상파라는 흔들리는 개념에 대한 생존전략을 논의하는 것이다. 지상파의 기술적 플랫폼 특성은 이제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책적으로 지상파는 기술적 플랫폼으로 규정되고 책무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사업자로서의 지향을 보이는 지상파가 정부의 정책적 기대와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지상파의 스튜디오 체제 전환에 대해 "현재 흔들리는 OTT의 수익구조를 볼 때 우리나라 전체 콘텐츠 제작이 글로벌 OTT에 의존하는 경우 위험이 크고, 외주제작 비율 문제도 발생할 것"이라며 "기술적 플랫폼 특성에 기반한 사업자가 지위를 온전히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인지 정교한 고민이 필요하다. 조그만 시장기반에서 글로벌 OTT와 경쟁하는 게 과연 적합한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 교수는 "결국 좋은 방송을 해야한다"며 무분별한 PPL 문제를 거론했다. 홍 교수는 "지상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심정으로 콘텐츠 질이 낮아지는데도 PPL을 높이고 있다"며 "시청자들은 이미 OTT로 유통되는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보고 있다. PPL 섞인 콘텐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편, 박성제 한국방송협회장은 축사를 통해 "이제는 방송의 산업적 가치를 바로 규정하고 글로벌 미디어사업자와의 경쟁, 또 비실시간 영상 영역에서 말초적인 콘텐츠와의 경쟁을 방송부분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이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대에 맞는 방송제도의 전환을 이끌어 내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전면 도입하고, 글로벌 진출 위한 진흥시스템 구축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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