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애는 행복한 드라마다. 연애 드라마에서 연애가 되지 않았는데도 해피엔딩이었다. 보통의 연애는 달콤하고 화사한 치장으로 시청자를 유혹하지 않았다. 그런 드라마의 너무 분명한 해피엔딩은 분명 느닷없을 것이기도 하다. 또한 안개처럼 시야를 흐린 열린 결말은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단편의 특권이기도 하다. 연애는 되지 않았지만 윤혜도, 재광도 웃었다.

그러나 딱히 연애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들 스스로도 그랬다. 우린 연애했다고, 그리고 재광이 윤혜에게 차인 결말이라고. 윤혜치고는 다소 과감한 대사였는데, 재광과 만난 첫날에 같이 자자고 할 정도로 돌발적인 면을 가진 것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 재치 있는 해석이었다. 그래서 차였지만 헤어짐은 없는 이별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둘 사이의 짧고도 아주 긴 7년의 인연은 알쏭달쏭한 연애의 추억으로 남겨졌다. 그리고 연애의 끝은 두 사람 모두 외면했던 것들과의 당당히 대면할 수 있는 용기였다. 이 정도면 연애와 상관없이도 충분히 해피엔딩이고도 남는다.

그 전에 윤혜는 절망하고 또 절망해야 했다. 믿었고, 믿고 싶었던 아빠가 살인을 한 것이었다. 술김이었고, 음주운전에 적발될 것에 두렵고 당황한 나머지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살인이었다. 재광에게도 그랬다. 남일 같았던 형의 죽음이 현장검증을 보면서 갑자기 눈이 뒤집힐 정도로 분노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런 감정으로 곧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윤혜에게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서울로 올라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의 일상. 할머니까지 돌아가신 윤혜는 덩그마니 집안에 혼자 지낸다. 전보다 말수가 더 적어졌지만, 지난 며칠의 흔적들을 덤덤히 대하는 모습이 달라졌다. 재광도 그랬다. 술만 마셔댔다. 우연히 윤혜의 사진을 보고는 냉장고에 툭 던져놓는다. 보기 싫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다 출판사 친구가 전화했을 때 재광은 비로소 윤혜와 아무것도 안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리고는 전시회 사진을 정리하던 중 왜 뒷모습만 찍느냐는 윤혜의 말이 떠오르자, 집을 나선다.

그리고 재광이 발견된 곳은 윤혜 동네 골목길. 그곳에 재광은 처음으로 아이들의 개구진 모습을 정면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윤혜도 재광이 건네줬던 백 원짜리 동전 99개를 마침내 일상에 쓰게 됐다. 재광이 윤혜를 만나러 온 것일지도 모르고, 윤혜도 재광을 찾아나선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골목어귀에서 서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친다. 그렇게 보통의 연애는 끝났다.

보통의 연애는 끝났지만 남겨둔 여운이 참 많다. 특히 젊은 두 배우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무엇보다 크다. 유다인, 연우진 이 두 배우는 아직 젊은데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우울함의 정서를 넘치지 않게 잘 소화해주었다. 고마울 정도다. 넘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배우는 열연이 아닌 호연을 보인 것이다. 이 드라마의 호흡상 절제가 되지 않았다면 분위기가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리 지르고, 수돗물처럼 눈물이 쏟아지는 그래서 누가 봐도 자기 살을 태워서 하는 열연도 좋지만, 이들처럼 조용히 다소 심심하게 자기 감정을 다 쓰지 않는 은은하고 담백한 연기 또한 좋았다. 그래서 보통의 연애는 마치 깔끔하게 끓인 콩나물국을 한 그릇 비운 것처럼 개운하다.

피사체의 뒷모습만 찍던 우진이 아이들을 정면으로 대하게 됐고, 웃지 못하던 윤혜 역시 짧은 스커트를 입고 찰랑거리며 웃으며 지나치는 엔딩은 구체적이진 않지만 나름 해피엔딩이었다. 사실 새드엔딩을 원하기도 했다. 그래야 더 오래 가슴에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극 속의 두 젊은이에게 인정을 베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도 좋은 일이다. 그 흔한 키스신 한 번 없고, 같이 잤어도 결코 베드신이 아닌 이 보통의 연애에는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은 어쩌면 해보고도 싶은 가슴 먹먹한 사랑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들의 사랑은 조심스럽고 또 두렵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그저 즐기자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누구나 이들 같을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연애이다.

보통의 연애는 아주 질 높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을 높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해품달보더 더 좋고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우리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순수에 대한 기억을 들춰 주었기 때문이다. 그 순수는 짧은 2주간의 만남이었지만 많은 설렘과 공감을 선사했다. 낮은 시청률은 이들의 연애처럼 실패가 아니라 소중함을 의미한다고 믿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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