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지난해 아시안컵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면, 일간스포츠 3월 2일자)

지난 2월 29일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쿠웨이트를 맞아 2대0으로 승리하여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 진출했다. 이겼지만 힘든 게임이었고, 전반전엔 상대에게 압도당한단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경기 직후 축구팬들의 반응은 대표팀에 대한 실망 그 자체였다. 인용된 기사의 문장은 그 실망이 던져준 위기감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반응이 적절할까? 여기엔 ‘국가대표팀’을 언제나 존재하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판타지와 아시아 사정에 관심을 갖지 않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한국 축구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결국엔 저변의 문제를 생략한다는 점에서 불성실하다.

▲ 2일자 중앙일보 32면

사실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이란 건 언제나 일정수준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나라 대표팀이 가장 높게 올라갈 수 있는 시점에 맞춰 조직된다. 세계정상권의 팀들이 월드컵 조별리그 단계에선 아직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쿠웨이트와 한국이 싸울 때, 월드컵 최종예선전 정도가 현실적인 기대치인 쿠웨이트는 최고의 상태로 나타나지만 월드컵 본선진출 내지는 16강이 목적인 한국은 아직 덜 조직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쿠웨이트는 경기를 대비해 중국에서 3주간 전지훈련을 펼쳤고 한국에도 6일 전에 입국해 적응했다. 경기 열흘 전부터 손발을 맞췄고 해외파를 모두 불러오지 않은 한국과는 딴판이었다. 따라서 “한국 축구가 지난해 아시안컵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란 지적은 옳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한국팬들은 한국팀이 월드컵에 단골 출전하고 홈4강·원정 16강의 성적을 거뒀기에, 아시아지역에선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광경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정을 따져보면 우리는 아시안컵에서도 60년 간이나 우승을 못한 처지다. 그간 시기가 겹쳤던 올림픽경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단 핑계는 가능하나, 2011년 아시안컵에서 보았듯 이제는 전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만만한 과업이 아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란 말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나온 정치적 표어인데 최근엔 오히려 스포츠 영역에서 자주 사용한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을 지향해야 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문구는 스스로 아시아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잘 드러내는 말로 알려져 있으나 가끔 보면 한국인들도 만만치 않다. 아시아에 경쟁자가 많아야 한국 축구의 실력도 더 쉽게 올라갈 텐데도 우리는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신경쓰기를 원치 않았고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는 위대한 선수들이 많아지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해왔다.

대표팀이 졸전을 펼친다고 선수들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닐 수 있다. 선수들은 각 클럽팀에서 경기를 하다가 대표팀에 모여들고, 대표팀은 그들의 손발을 맞춰가며 특정 시기의 대회에 맞춰 팀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유럽의 빅리그에서 뛴 선수가 많아야 한국 축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고 2010년 월드컵의 성과는 ‘양박쌍용’으로 표현되는 유럽리그 선수들의 공로가 크다.

그러나 최근 한국 축구가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은 유럽파들 때문만은 아니고 K리그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간 탓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 ‘K리그 챔피언’ 전북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광저우에게 1대5로 대패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저변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없다면 아시아 축구도 더 이상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국가대표팀이 쿠웨이트에게 (진 것도 아니고) 고전했다 분개하는 우리의 ‘건방’이 국가대표팀을 클럽축구와 별도로 존재하는 무언가로 여기는 편견의 발현은 아닌지 염려된다. 걱정해야 할 것은 아직 제대로 준비를 시작하지도 않은 대표팀의 경기력이 아니라 그것을 떠받치는 저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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