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인공지능·알고리즘 규제’를 골자로 하는 법률안에 대해 ‘속도조절론’이 제기됐다. EU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인공지능 규제 정책안이 시행되려면 수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한국이 규제 도입을 우선시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업계 관계자, 전문가들은 법안의 초점이 규제가 아니라 진흥에 맞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알고리즘 및 인공지능에 관한 법률안’은 고위험 인공지능·알고리즘 규제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윤 의원은 사회기반시설·생명·인사평가·응급서비스·개인정보 관련 인공지능을 ‘고위험 인공지능’으로 규정하고, ‘고위험 인공지능 심의위원회’를 신설해 규제 정책을 수립하도록 했다. 고위험 인공지능을 이용하다가 피해를 입은 이용자는 사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은 ‘민간자율인공지능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인공지능·알고리즘 기본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25일 열린 ‘인공지능·알고리즘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에서 이현규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단장은 “법이 압력으로 작용하면, 인공지능·알고리즘 기술 개발이 더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능력을 과대 표현했고, 사람들에게 상상을 퍼뜨리다 보니 기우가 발생했다”며 “해외의 한 전문가는 현재의 인공지능을 ‘유아’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제정안이 통과되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장은 “규제보단 진흥에 무게를 뒀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재형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기반정책과장은 규제 적용 시점을 연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과장은 “인공지능 산업을 고려하면서 국민 안전과 인권 침해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면서 “다만 산업 진흥 관련 부분에선 해외보다 앞서야 하지만, 규제 부분은 해외와 궤를 같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형 과장은 “EU가 알고리즘 관련 법을 시행하기 위해선 몇 년 더 걸린다”며 “진흥법안은 바로 도입해도 되지만, ‘고위험 인공지능’ 관련 책무는 시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정안이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제정안에 따르면 인공지능·알고리즘 기업은 매년 이용자 보호 관련 보고서를 작성·공개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는 사내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강용성 와이즈넛 대표는 “법이 마련되면 지원책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만들어질 수 있어 기대를 갖고 있다”며 “다만 스타트업은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이 앞선다. 법의 관점이 스타트업보단 이미 단계에 올라간 기업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제정안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생각을 담아줬으면 한다”며 “이러한 점이 보완된다면 인공지능·알고리즘 관련 중소기업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스타트업, 부담 앞선다"…"고위험 인공지능 구체적 기준 필요"

이준열 엔키스 대표는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국민의 이동 정보를 얻어 여러 서비스를 제공해왔다”며 “이로 인해 한국이 코로나19 감염예방 우수국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제정안에는 응급서비스를 고위험 인공지능으로 분류하고 있다. 모든 것을 ‘고위험’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열 대표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면 좋은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며 “이는 다른 국가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해외 의존성이 심화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박민철 김앤장 변호사는 사전규제가 아닌 사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변호사는 “인공지능·알고리즘과 같은 혁신적 서비스는 결과물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예측만으로 규제를 하는 건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법도 사후 규제로 가야 한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은 보편적 기술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며 “적용 분야에 따라 위험성은 천차만별이다.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규율을 강하게 설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인공지능이 생명과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면 법적 규제가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최경진 교수는 '고위험 인공지능'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는 자율규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민간의 자정능력을 바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AI 규제는 절차적 타당성이 중요한데, 법이 뭐가 옳은지 그른지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도 사회화가 되려면 십수년 교육을 해야 하는데, AI도 학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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