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이 한국기자협회보를 상대로 기사 삭제와 정정을 요구하고,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기자협회보는 서울신문이 '대주주 비판기사 삭제 사태'에 대한 내부비판 성명의 배후자를 색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정정해야 할 언론사는 서울신문이라며 "호반건설 기사부터 복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신문 (사진=미디어스)

지난 20일 기자협회보 <서울신문, ‘기사 삭제 비판 성명’ 배후자 색출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신문 간부들은 성명 작성에 참여한 기자들에게 “주동자가 누구냐”, “배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서울신문 한 기자는 “(데스크들이) 순수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주니어 기자들을 누군가 부추겨 현 경영진을 흔들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은 21일 기자협회보에 공문을 보내 “확인 결과 본사뿐만 아니라 데스크 혹은 간부사원 어느 누구도 배후자 색출 등을 지시하거나 시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기사 삭제·정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곽 사장은 기자협회보 보도를 “허위사실에 기반한 기사”로 규정하고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24일 서울신문 사옥 앞에서 열린 <대주주 김상열의 서울신문 편집권 유린을 강력 규탄한다> 기자회견에서 “황당무계한 요구”라며 “서울신문의 젊은 기자들이 기수별로 성명을 내고 있는데 어떤 작태인가. 정정의 대상은 기자협회보가 아니라 서울신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호반건설 비판기사부터 온전히 복구시켜라”며 “서울신문이 자본에 무릎 꿇는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 봤다. 언론이 스스로 편집권을 자본가에게 바친 사례는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서울신문이 건설자본에 장악당하고, 비판기사를 하루아침에 무더기로 지우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현대판 분서갱유다. 스스로를 황제라고 착각하는 김상열 회장은 언론인의 자존심을 파묻어버렸다”고 했다. 분서갱유는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묻는다’는 뜻으로, 진시황이 사상서를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윤창현 위원장은 “대한민국 언론은 자본에 의해 생사여탈권을 빼앗기고,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이번 기자회견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신문은 지금이라도 삭제된 기사를 복구시키고, 언론노동자와 시민 앞에 자신의 만행을 공개적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이 24일 서울신문 사옥 앞에서 열린 <대주주 김상열의 서울신문 편집권 유린을 강력 규탄한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는 이번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서울신문지부는 기사 삭제 파문에 대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위원장은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언론노조는 강령에서 편집권 독립을 명시하고 있다”며 “강령을 준수할 생각이 없으면 모종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지부 스스로든, 언론노조 차원이든”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한 구성원은 미디어스에 “서울신문지부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며 “지부가 나섰다면 회사가 뭐라도 했을 건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26일 기자총회를 할 예정이어서 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독립추진위원회 위원이었던 이용성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은 “서울신문 독립성과 편집권이 위기에 직면해 참담하다”며 “대주주 관련 기사 삭제는 편집권 침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서울신문 회사 소개 페이지에 자사를 ‘공영언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며 “공영언론은 외적 독립성도 중요하지만, 내적 자유도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사장은 구성원을 협박하고, 회사는 배후자 색출에 나섰다”며 “언론사주의 전횡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론을 소유물로 치부한 적도 없었다. 언론계 전체와 독자를 향한 모욕”이라고 규탄했다. 김 위원장은 “이미 발행된 기사는 독자의 것”이라면서 “언론사 마음대로 기사를 지울 순 없다”고 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이번 일을 일개 신문사에서 벌어진 분쟁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며 “이번 사태는 서울신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호반건설의 전횡을 멈추지 못하면 건설자본이 소유한 다른 언론사로 문제가 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