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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사랑꽃을 만나다[종이에 그린 들꽃 향기] 안산 지역 문화답사
조현옥 수필가 | 승인 2022.01.19 09:44

[미디어스=조현옥] 누구나 상황은 마찬가지겠지만 2년이 넘게 동창 모임을 하지 못했다. 모두 아쉬움을 갖고 두서너 명 친구들이 소모임으로 등산이나 식사를 하는 것 같다.  나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다가 재작년 안산에 근무하며 그곳에 사는 친구와 최용신 문학관에 갔던 것이 간신히 참여했던 모임이었다. 그때 문학관 안내를 해주던 친구가 다음에 친구들과 안산 지역 문화답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모임이 언제쯤 가능할까, 점점 거세지는 코로나19의 전파 상황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송년회도 못하여 안부를 물었더니 바로 안산 문화탐방을 하자고 했다. 많이 모이기는 어려우니 서너 명이 운동 겸 지역 답사를 하며 걷자는 것이다. 몇 개월간 공원 산책도 거의 하지 않고 지낸 터라 기꺼이 길을 나섰다. 

꽃기린 (사진=조현옥)

출근하거나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딸아이를 태우고 바쁘게 다니던 길을 한가한 시간에 가려니 안산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먼저 도착하여 미술관 내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한쪽에 제법 크게 자란 꽃기린과 제라늄이 제철인 듯 활짝 웃고 있었다. 늦가을까지 피었던 국화나 금잔화도 마르고 시든 때에 붉은색 꽃기린과 제라늄을 보니 마음이 환해졌다.

친구들이 모두 도착했다. 이삼 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에 따뜻한 차의 온기를 담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마침 미술관이 소장한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의 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표암과 단원 선생의 작품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스승과 제자로 만나 제자에게 지기(知己)라는 표현을 쓸 만큼 예술적 동반자가 된 두 사람의 관계가 감동을 주었다. 

문인화나 산수화 어느 작품이나 능하며 다양한 필법과 구도로 화폭에 맑은 선비 정신을 담았던 표암 강세황.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독특한 그림 구도와 풍속화의 세계를 열어간 단원 김홍도. 이들은 훌륭한 왕이자 후원자였던 정조를 만나 조선 미술사를 활짝 핀 모란보다 더 화려하게 꽃 피웠다.

안산문화재단 안산시 소장 진본전 '표암과 단원' 전시회 (사진=조현옥)

미술관을 나서며 조선 미술계의 거봉을 이루는 두 분이 깃들어 살던 안산이 새삼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원기념관을 지나 실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성호 이익 선생의 기념관으로 갔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단원의 풍속화가 조형물로 남겨진 단원 조각 공원을 지났다. ‘유토피아, 꿈결 같은 세상’ 등의 조각을 보며 좋은 친구들과 함께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움이란 지식을 통해 지혜를 배우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글자 그대로의 지식만을 상황에 맞지 않게 적용하거나 숫자에 매달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이 길을 함께 걷는 친구들은 배움을 나누고 배려하려 노력하는 친구들이다. 특히 오늘 이 길의 안내를 도맡고 친구들을 초대한 안산 친구는 더욱 그러했다.

성호 선생은 어려서부터 영민함을 보였지만, 그것이 기억이나 배움의 양에 그치지 않고 사회구조의 모순을 인간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그래서 사농공상의 구분이 명확하던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들에게 한정된 관직만 바라보며 무위도식하지 말고 농토로 돌아가 생산에 종사하라는 주장을 할 수 있었다. 

안산에는 단원구와 상록구가 있는데 단원구는 김홍도의 호를 딴 것이고, 상록구는 일제시대 때 농촌계몽 운동가로 헌신한 최용신 선생을 기념한 소설 <상록수>에서 가져온 이름이라 한다. 성호 박물관을 관람하고 최용신 기념관에 들렀다. 

지난번 왔을 때는 여름이라 해당화가 피어있었는데 한겨울에 오니 기념관 주변의 소나무가 선생의 마음처럼 푸른 빛을 더욱 발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코로나로 닫혀 둘러보지 못했던 기념관 내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단원조각공원의 조각상 (사진=조현옥)

겨우 26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배움에 목마르고 가난에 고통받던 사람들에게 많은 현실적 도움과 깊은 깨달음의 뿌리를 심어 준 최용신 선생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학생들을 인솔해서 이곳에 가끔 온다는 친구는 여기 올 때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다음은 갈대습지공원으로 향했다. 겨울이지만 한낮의 햇살은 포근하고 입구는 고즈넉했다.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가니 저녁 햇살은 낮은 곳에서 갈대를 굽어보고, 갈대와 자작나무는 햇살에게 응석을 부리듯 다정한 모습이었다. 겨울 하늘은 지그시 미소 지으며 이들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맛있는 한정식까지 사 주고 이렇게 멋진 풍경을 소개한 친구의 마음을 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안산에서 20여 년을 살며 교육과 문화, 환경 모임에도 참여하였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모습이 자식을 키운 부모의 눈길처럼 흐뭇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황혼이 물드는 대부도로 향했다. 네 시 반이 지나 시화호를 지나는 도로 정면에 둥근 해가 주황빛 노을을 펼치고 있었다. 하늘은 유채 물감을 짙게 바른 듯 흰구름이 펼쳐져 있어서 노을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모래 위에는 바닷물이 얼어 눈처럼 쌓여 있었다. 노을을 향해 바닷가를 걷는 친구들의 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대부도의 노을 (사진=조현옥)

그렇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만드는 영화이고 주인공은 그들 자신이다. 그런데 우리가 찍은 오늘 영화는 서로를 해치고 슬프게 하는 영화가 아니라, 동행하며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는 해피엔딩 영화였다.

마침 노을 위로 비행기가 지나갔다. 비행기는 분명 빨리 지나가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여유롭게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 지금까지 걸어 온 시간이 비행기처럼 빨랐다면 지금부터는 느리게 가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우리는 행복했고, 마음속에는 한겨울에 꽃이 피었다.

겨울에 피는 꽃이 있기는 하지만 흔치는 않다. 나는 오늘 몇백 년이 지나서도 변함없이 피어있는 표암 강세황의 난초와 매화의 향기를 맡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향기로운 사람이 피운 사랑꽃 향기, 친구들에 대한 사랑의 향기도 맡았다. 좋은 그림, 좋은 풍경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운전하고, 맛있는 음식까지 사 주는 친구의 마음 앞에 하늘도 바다도 멋진 자연의 화원을 펼쳐주었다.

시간이 지나도 선인들의 유물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그들의 마음이 거기에 있어서라면, 오늘 친구가 피운 배려의 꽃 또한 함께한 친구들의 마음속에 지지 않는 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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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옥 수필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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