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는 인구가 11만에 불과한 중소도시입니다. 2009년에서야 비로소 인구가 소폭 증가세를 보였지만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주로 좋아하는 프로스포츠가 열리기에는 열악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상주시가 국군체육부대 축구팀의 연고를 유치하면서 프로스포츠라는 새 영역에 대한 '큰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인근 지역인 경북 문경에 국군체육부대가 들어서는 것을 활용해 연고 유치에 성공한 상주는 기왕 시작한 김에 제대로 하겠다며 대대적인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우리 팀'을 알리는 데 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공식 개막전이자 상주 첫 출범 경기에 관중석 수용 능력(1만 5000명)을 넘어선 무려 1만 6400명이라는 기록적인 관중이 들어찼습니다. '신(新) 축구 도시'의 가능성을 보인 것입니다.

이후에도 상주에는 경기가 열릴 때마다 관중석 절반 이상이 찼고, 평균 관중 8천명 이상의 준수한 흥행 기록을 남겼습니다. 승부조작 악재, 감독 중도 사퇴 및 불미스러운 사고, 곤두박질친 하반기 성적 등에도 상주시민들은 끝까지 상무 축구단을 응원했고, 더 나은 내일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즌이 찾아왔습니다. 늘 그래왔던 대로 이번에도 선수단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었고, '월드컵 4강 주역'인 박항서 감독을 정식 감독으로 '모셔오다시피' 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움에 대한 지역민들의 기대감은 높았고, 개막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또다시 상주의 축구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고, 그런 분위기를 한 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주의 첫 홈 개막전이 열린 4일 오후, 상주시민운동장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 상주 상무 선수들. 꽃다발을 들고 있는 선수는 올해 입대한 포항 스틸러스 출신 수비수 김형일이다(좌),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우산을 들고, 우의를 입고 경기를 관전하는 상주시민들(우) (사진: 김지한)
오전부터 내린 비, 그래도 관중은 계속 들어왔다

하지만 사실 개막전이 있는 이날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습니다. 오전부터 날이 흐려지더니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을지 염려스러웠습니다. 실제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경기장 주변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상주 축구의 열기를 느껴보고 싶었던 발걸음이 헛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섰습니다.

그러나 1시간 전부터 조금씩 경기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장 주변에 마련된 농산물 시식, 소개 부스 등에도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티켓 박스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풍경도 나타났습니다. "이제야 조금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졌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본부석을 제외하고 관람석 모두 지붕이 없어 비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관중들은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들고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된 후에도 꾸준하게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았고, 이날 5천710명의 유료 관중이 입장했습니다. 지난해 평균치에 미치지 못했지만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치고는 결코 나쁘지 않은 수치였습니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온 관중들이었고, 학교나 동네 친구끼리 또는 마을, 단체 단위로 경기장을 찾은 경우도 제법 있었습니다.

▲ 잘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성화대 쪽에 서서 관전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좌) 상주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펼치는 초,중등 어린 팬들. 모두 상주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다.(우)
"이곳에서는 상주가 K리그 최고 팀"

응원이 일사불란하게 벌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서포터들이 응원 리딩을 했지만 다른 한쪽에서 사물놀이로 흥을 돋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박수와 함성으로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주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염원, 기대만큼은 모두 하나였습니다. 좋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중들은 '골!골!'을 외쳤고, 기회를 날렸을 때는 크게 아쉬워했습니다.

특히 팬들은 박항서 새 감독에 대한 남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박항서 감독 이야기가 들렸고, 2002년 월드컵 추억담을 나누는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모두 '축구 전문가'들이었고, 경기장을 찾은 이들 모두 자기 팀에 대한 애착이 정말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상주 선수들의 면면을 대부분 꿰고 있었고, '모두 최고의 선수들'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상주 상무가 K리그 최고의 팀이었습니다.

지고 있지만, 그래도 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상주팬, 관중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경기는 원정팀 광주 FC의 1-0 승리로 끝났습니다. 공격 기회는 상주가 더 많았지만 결정력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던 것이 뼈아프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고 있기에 답답할 법도 하겠지만 사람들은 끝까지 상주의 선전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을 위한, 또 자신의 팀을 위한 응원, 격려를 끝까지 펼쳤습니다. 그런 모습 때문이었는지 상주 선수들은 팀 개막전 패배에 어느 때보다 더 아쉬워했습니다.

▲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좋아하는 광주 이승기, 반면 패배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상주 공격수 유창현(좌), 1년 반 만에 현장으로 복귀한 상주 박항서 새 감독. 하지만 복귀전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봐 굳은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우)
축구로 대동단결한 상주, K리그의 모범될 자격 충분하다

프로축구단 운영을 통해 상주는 새로운 계기를 하나 얻었다고 합니다. 바로 시민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상주에서 시 전체가 한데 어울려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축구팀을 통해 경기가 열릴 때마다 축구도 즐기고, 시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면서 이에 따른 유무형적인 효과를 얻는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단순한 행사 뿐 아니라 상주 농산물을 알리는 자리를 마련해서 지역민 뿐 아니라 타지에서 온 팬들에게 상주를 제대로 소개하는 계기를 만든 것은, 상주의 이미지를 높이고 특산품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축구를 통해 문화를 만들고, 경제를 일으키는 '축구 효과'가 상주시에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K리그, 한국 축구에서 바라던 모습입니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게 아쉽지만 그런 만큼 상주는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충분히 이 부분만큼은 K리그의 본보기가 될 자격을 갖고 있다고 볼 정도입니다.

내년 상주 상무의 강등이 유력하다고 하지만 팬들은 상주의 강등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꼭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상무 팀 자체가 줄곧 하위권을 맴돌아 올해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팬들의 열정, 팀에 대한 애착, 연고 의식만큼은 상주가 K리그 톱 수준에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경기장을 찾은 5천710명의 관중에게서 얻은 희망이 상주 상무 축구팀의 미래를 더욱 밝힐 것입니다. 그리고 K리그에도 '작지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