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언론이 수사·정보기관의 통신조회 논란을 다룰 때 제도개선 문제는 뒷전이다. 정치권 공방에 편승할 게 아니라 법 개정을 외면한 정치권을 비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은 통신조회 사실을 당사자에게 통지하는 수준에 그쳐 근본적인 개선을 이뤄낼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11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공수처 사찰 논란으로 본 통신자료수집 문제' 좌담회에서 최정기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국장은 "언론인들이 이 정도면 국민 다수는 어떻겠나. 반기에만 수백만 건이 조회된다"며 "이 사실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국민들의 정보인권에 대해 언론이 사명감을 가지고 이 쟁점을 보도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이슈좌담회 '공수처 사찰 논란으로 본 통신자료수집 문제와 해결방안'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장여경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홍석 변호사, 최정기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국장 (사진=연합뉴스)

최 국장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이 문제에 대해 내로남불식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언론은 법 개정과 제도개선을 미루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를 꼬집어야 한다"며 "범위의 제한, 법원의 허가, 당사자 통보 의무화 등 구체적인 쟁점을 드러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통신조회는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로 구분된다. '통신자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수사기관이 수사 대상자의 인적사항을 이동통신사에게 요청해 제공받은 자료를 말한다. 이용자 이름, 주민번호, 주소, 가입 및 해지 일자, 전화번호, ID 등 이통사 가입정보로 법원의 허가(영장) 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 정보를 말한다. 상대방 전화번호, 통화 일시와 시간, 인터넷 로그기록, IP 주소, 발신기지국 위치추적 자료 등이 해당된다.

특히 최 국장은 "정치권에서 보이는 내로남불식 태도가 언론보도에서 나타날 때가 있다"며 "예전에는 통신사찰이 아니라고 해놓고, 이제와서 통신사찰이라고 하는 프레임 형성은 곤란하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제대로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 주요 보수언론은 2017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현 국민의힘 의원)가 검·경·군의 통신자료 조회를 두고 사찰 의혹을 제기했을 때 '팩트체크'성 기사를 내어 반박한 바 있다.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의 한 수단으로 번호확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당시 이들 언론이 낸 결론이다. (관련기사▶2017년 홍준표 "통신 사찰" 주장에 보수언론 팩트체크 "무리")

조선일보 2017년 10월 11일 <홍준표가 말한 '통신조회'는 번호 주인 확인>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공수처 통신조회 논란을 언론은 '불법 사찰'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언론과 국민의힘은 제도개선보다 피해사실 전달과 여권에 대한 공세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공수처를 겨냥해 "미친사람들"이라고 말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국정감사에서 "통신조회는 가입자 조회를 말하는 것으로 확인하다보면 몇백 개가 나온다. 문제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윤 후보는 ▲국정농단 특검 통신조회 220만 건 ▲총장 재직 시절 검찰 통신조회 282만 건 등과 연관돼 있다.

최 국장은 통신조회 논란을 통해 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되지 않는 이유로 '정쟁'을 꼽았다. 최 국장은 "대단히 의아한 점은 국회에서 기본권 영역 문제를 다룰 때 통상 강력한 규제법안을 내는데 이 문제와 관련한 법안들은 규제수준이 굉장히 낮다"며 "아마도 굉장히 유효한 정쟁·정치 수단이라서 그런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최 국장은 "여당은 권력의 상징자본처럼 이를 전유하고 있는 것 같다. 야당 입장에서는 늘 사찰의 수단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데 얼마나 좋은가"라면서 "유력 대선후보들에게 이 문제를 직접 물어야 한다. 후보들이 제도개선 의지가 있다면 약속하고, 당선 즉시 국회와 협의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내용이 이통3사가 통신조회 당사자에게 조회 사실을 통지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총 7건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모두 '당사자 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왜 시민사회에서 대안을 내야 하나. 이걸 해야 하는 국가기관은 국회 아닌가"라며 "이를 위해 보좌관, 입법조사처까지 있는 데도 왜 여러 문제가 있는 통지제도 말고 응답이 없는 것인지 기자들이 대표발의 의원을 찾아가 물어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동의했는데 왜 통과가 안 되는 상황일까"라며 "국회의원들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한다는 생각보다 자기들 법안 건수를 채우기 위한 알리바이용으로 만든 건 아닌지, 법안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데 입법표절은 아닌지, 임기 내 법을 통과시킬 의지가 있는 것인지를 기자들이 따져 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10년부터 통신조회 관련 소송을 이어 온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는 "2015년 이통3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2심 판결에서 승소하면서 비로소 조회 사실을 알려주기 시작한 게 열람제도의 원형"이라며 "조회해보면 제공일자, 제공기관, 공문서 번호 정도를 알려준다. 제공사유나 연관성 등을 알려준다고 해도 '수사·재판 목적', '수사상 필요' 등으로 간단하게 적었을 것인데 통지 개선 논의가 과연 실효적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정치권은 또 통지제도 개선만으로 어물쩍 넘기려 해 대단히 우려스럽다. 이는 통신조회 논란을 잠재우고 가겠다는 것"이라며 "시민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화가 필요하고,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법원의 허가제도다. 법원허가를 받지 않는다면 다른 방식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언론인과 정치인이 수사기관의 통신조회 대상이 돼서야 사회적으로 논란이 불거진 현실을 개탄했다. 오 교수는 "언론인과 정치인, 이른바 우리사회 유력자들이 당사자가 되어야 논란이 되는 현실이 우리사회 인권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며 "그렇지 않은 보통 사람들, 권력기관에 의해 이뤄진 통신조회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권조차 권력자들의 문제에서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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