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부터 무기한 제작거부에 돌입한 KBS기자협회(회장 황동진)가 "(국민들이) 정권이나 자본 등에 휘둘리지 말라고 주신 막중한 책무를 잠시 잊고 있었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 황동진 KBS기자협회장이 2일 오전 집회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곽상아

KBS기자협회는 2일 오전 발표한 '대국민사과문'에서 "이제서야 감히, 국민들께 머리숙여 '부끄러웠습니다. 반성합니다'라고 고백한다"며 "KBS뉴스를 꼭 바로잡겠다"라고 밝혔다.

KBS기자협회는 "국민들의 외면을 받기 전에 우리가 싸웠어야 했다. 정권이나 KBS 사측을 탓하기 전에 독기 품은 카메라와 마이크로 사회 곳곳의 썩은 곳들을 도려내고 후벼 팠어야 했다"며 "하지만 정권에 예민한 뉴스를 회피하고, 기계적 중립을 앞세워 진실 앞에 자주 고개 숙였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 무기한 제작거부에 동참한 KBS본사 보도본부 기자 200여명이 2일 오전 집회에서 "부끄럽고, 반성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곽상아

KBS기자협회가 무기한 제작거부에 돌입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KBS 새 노조 집행부에 대한 징계'와 '이화섭 보도본부장 임명'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지난 4년간 행해진 불공정 보도에 대한 자성이 깔려있다.

황동진 KBS기자협회장 역시 2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KBS신관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단순히 '부당징계 철회' '이화섭 본부장 임명 철회' 때문만이 아니다"라며 "지난 4년간 수치심과 반성을 끌어안고 살다가 두 가지 계기를 통해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KBS홍보실이 "불법행동인 제작거부를 철회하라"고 입장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황 회장은 "회사측에서는 제작거부가 불법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적 절차, 기자협회 규약에 따라 이 자리까지 뚜벅뚜벅 오게 됐다"며 "우리의 싸움은 제대로 공정방송을 하라는 국민 요구를 반영한 의로운 싸움"이라고 반박했다.

▲ 무기한 제작거부에 동참한 KBS 기자들이 2일 오전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곽상아

집회 사회를 맡은 정윤섭 KBS 탐사제작부 기자는 "우리의 요구는 단 한 가지다. 더 이상 쪽팔리지 않고 싶다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최근에 기자협회 총회가 끝나고 나서, 한 고위 간부가 저를 불러서 말하더라. 왜 후배들은 KBS뉴스를 쪽팔리다고 말하는지 잘 이해가 안간다고, 자신은 주변 이들로부터 'KBS뉴스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만 듣고 있다고 말이다.

취재현장을 떠난 지 10년 넘은 간부들이 만나는 이들은 현장의 시민들이 아니다. 지금 당장의 삶이 힘들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내보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아니다. 그래서 간부들과 기자들 사이에 생각의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안이하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무기한 제작거부와 새 노조 총파업 돌입의 직접적 계기가 된 중징계 당사자들도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새 노조 1기 집행부였던 이들은 "이번 싸움은 정치파업이 아니라 언론의 기본을 지키려는 상식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직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은 엄경철 전 KBS 새 노조 위원장은 "엊그저께 우리 뉴스가 제주해군기지를 2꼭지에 걸쳐서 다룬 것을 보았다. 정부 입장, 해군기지의 전략적 가치 등이 주로 다뤄졌고 반대 입장은 인터뷰로 10초밖에 나가지 않았다"며 "공익,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환경 등 여러 가치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묵살되도 되는 것인가? 그것이 진실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내가 사측에게 '저널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간부들은 '정치투쟁하는 거냐'고 '정치'문제로 되받는다"며 "KBS 시사정신의 핵심인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유행어를 따르자면 '오해하지 마라, 내가 마음만은 보수우익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나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새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보도부문 간사를 맡았던 성재호 기자 역시 "회사에서는 우리를 보고 자꾸 정치적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싸움은 '언론의 기본'이라는 상식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 기자는 "이번 싸움은 단순히 하수인인 김인규씨와의 싸움이 아니라, (진짜 배후인) MB정부와의 싸움이다.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많은 선배, 동료, 후배 여러분들은 더 이상 겁내지 말고 빨리 나오시라"며 "지난 4년의 잘못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용서를 빌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촉구했다.

성 기자는 "몇 명 안되는 KBS 내의 하수인들은, 배가 난파하기 전에 빨리 떠나실 것을 충고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집회에는 KBS본사 보도본부 평기자 300여명 가운데 200여명이 참석했다. 평기자들이 대거 제작거부 돌입에 동참함에 따라 향후 뉴스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번주 일요일인 4일 저녁 방송되는 <취재파일4321>의 경우, 제작거부로 인해 당초 예정됐던 아이템이 다른 아이템으로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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