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애 윤혜(유다인)과 재광(연우진)의 인연은 7년 전으로 돌아간다. 뭔가 석연찮은 살인사건이 일어난 날 밤, 경찰서에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이었다. 그때 경찰서를 뛰쳐나가는 윤혜를 따라갔던 재광은 그러나 물에 곧바로 뛰어든 윤혜를 구하려 들지는 못했다. 살인용의자의 딸과 살인 피해자의 동생 두 사람은 그렇게 처음 만났었다.

그리고 7년을 지나면서 재광은 문득 문득 윤혜가 살았을까 죽었을까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들려준 점쟁이 얘기에 솔깃해져서 전주로 내려왔다. 그러니까 재광이 전주를 방문한 공식적인 이유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살인용의자 김주평이 잘 먹고 사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고, 안공식적인 일은 윤혜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전자는 건성이었고 후자가 재광을 움직인 진짜 이유였다.

그리고 7년이 지나 두 사람은 새로 찾은 단서로 인해 경찰서에 처음 다시 오게 됐다. 사건에 대한 희망 때문일까 데면데면하던 두 사람은 제법 웃을 줄도 알게 될 정도로 가벼운 마음을 느낀다. 그런 모습이 하필이면 재광 모의 눈에 잡히고 만다. 윤혜를 면전에 두고 엄마는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들을 쏟아낸다. “이 거, 아빠가 개, 기지배, 개가 키운 애”

윤혜는 겨우 고개를 살짝 숙이고 경찰서를 벗어난다. 그리고 처음 경찰서에 온 때처럼 호숫가로 간다. 그때는 다짜고짜 물에 뛰어들었지만 이제는 그저 말없이 앉아있을 뿐이다. 재광 역시 거기로 찾아온다. 옛날에는 멀리서 물에 뛰어든 윤혜를 보고도 돌아섰지만 이번에는 다가가 말을 건넨다. 그리고 묻는다. 물에 빠졌을 때 어땠느냐고.

“무거웠어요. 코트가 젖어서” 간결하게 대답하는 게 윤혜의 특기라지만 사춘기 소녀가 물에 뛰어든 소감치고는 지나치게 간결하다. 건조할 정도로 간결한 수밖에 없는 윤혜를 다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단 한 사람 재광만은 그런 윤혜가 반갑다.

그러나 가족이 죽은 일은, 그 일에 자기 아빠가 관련된 일은 결코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껏 백 원짜리 동전 99개, 꽉 눌러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아도 되는 햄버거 등으로 둘 사이가 이상할 것 없는 보통의 연애로 가고 있다고 느낄 즈음에 일어난 일 때문에 재광은 처음으로 형 일에 대해서 분노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윤혜 아버지 김주평은 피해 다니면서도 늙은 모친과는 연락을 하고 지냈다. 할머니는 윤혜에게 꼭 다섯 시 버스를 타라고 한다. 윤혜는 할머니가 싸준 성묘 음식을 손에 들고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오른다. 그러나 집에 가겠다던 윤혜가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재광이 뒤를 따른다.

윤혜가 버스에서 내리고 잘 도착했다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는데 버스가 한 대 곁을 지나친다. 그때 창문에 비친 모습. 아빠였다. 7년을 보지 못한 아빠. 윤혜는 본능적으로 버스를 쫓아가지만 얼마가지 못해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만다. 이상한 모습에 차에서 내려 따라온 재광이 부축하지만 윤혜는 넋이 나가있다. 그 때 입에서 신음처럼, 울음처럼 튀어나온 소리가 있다.

“아빠”

재광은 순간 화가 치민다. 아무것도 모른다던 윤혜가 자기를 속이고 외딴 곳에 와서는 웬 남자를 보고는 아빠라고 하는 모습이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주로 돌아오는 차 안. 싸운 사람들처럼 둘은 말이 없다. 남문 깨에 당도해서 재광은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경찰서로 간다고 하며 윤혜에게 내리라고 한다. 윤혜는 말없이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차는 화난 뒷모습을 보이고 떠나버리고, 윤혜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보며 코트 자락을 움켜쥔다. 마음에서 뭔가 요동칠 때 하는 버릇이다.

그러나 재광은 정작 경찰서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남문 쪽으로 차를 돌린다. 윤혜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윤혜는 등을 돌린다. “이렇게 멀어요. 그쪽하고 나”

윤혜와 재광은 둘 다 남들 다 하는 보통 연애가 꿈이지만 누구와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형 몫까지 살아야 하는 재광, 남이 뭐라 하건 꿋꿋하게 살아야 하는 윤혜 모두에게 평범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가해자 동생, 피해자 딸의 관계에서 이들은 그 꿈을 꾸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로의 소망처럼 다른 살인자가 있었으면 하는 것부터가 이들의 보통 연애를 가로막는 장애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연애 2부는 다른 이의 몫까지 짊어진 삶에 대한 노트이다. 인생이란 개개인 모두에게 무겁고 힘든 짐이다. 그러나 가족 누군가의 부재는 그 몫까지라는 부담을 더 짊어지게 한다. 그들은 힘들고 아프지만 차마 아무 말 하지 못한다. 그것은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의 가족이라고 다르지 않다.

윤혜와 재광은 그 아픔을 말하기에는 가장 어색한 서로에게 마음을 흘려보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수영의 시 <휴식>이 떠오른다.

남의 집 마당에 와서 마음을 쉬다
매일같이 마시는 술이며 모욕이며
보기 싫은 나의 얼굴이며
다 잊어버리고
돈 없는 나는 남의 집 마당에 와서
비로소 마음을 쉬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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