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2015년 개봉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2017년 <킹스맨: 골든 서클>에 이어 2021년 프리퀼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까지 시리즈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멋들어지게 양복을 차려입고 자신이 착용한 신발이나 만년필, 자동차 등 현실의 생활용품을 첨단 무기로 변모시켜 적들과 싸우는 점에 있어서 킹스맨은 전통의 007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매튜 본 감독은 변두리 지역 청년을 독립 첩보기관 '킹스맨 랜슬롯'으로 거듭나게 하며 기존 007 서사를 비틀어 새로운 히어로를 탄생시킨다. 무엇보다 유명하게 회자되었던 'Manners maketh men'이라는 대사를 통해 기성의 인식과 구조, 기성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며 007 B급무비 버전을 탄생시킨다.

<킹스맨> 시리즈를 구성하는 특징적 요소는 영국의 전통 양복점 안에 숨겨진, 정부로부터 독립된 비밀첩보기관, 그리고 아서왕의 전설에서 따온 등장인물 캐릭터 특히 마법사 멀린과 가장 뛰어난 기사 랜슬롯, 완벽하고 아름다운 갤러해드 등에 걸맞은 등장인물 등이다. 이제 12월 22일 개봉한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프리퀼로 그 기원을 살펴 들어간다.

반전과 반성의 세계관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 이미지

변두리 청년을 007처럼 폼 나는 첩보원으로 거듭나게 한 <킹스맨>이 프리퀼의 세계관으로 선택한 건 '반전(反戰)'이다. 무력을 사용한 첩보원의 유래가 '반전'이라니. 거기에 더해 에그시가 '랜슬롯'이 되는 계기는 영국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옥스포드 백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로부터이다. 하지만,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 그 이상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적십자의 일원으로 영국군 진영을 방문하는 올랜도 백작 부부로 시작된다. 물품을 싣고 도착한 부부의 눈에 먼저 띈 건 잡힌 포로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였다. 부부의 항의에 어떤 조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총격이 시작되었고, 올랜도 백작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 세상에 더는 전쟁이 없게 해달라는 유언과 함께.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물품을 전달하러 가는 과정에서 아들 콘래드에게 들려주는, 그 이후에도 줄곧 전하는 아버지 올랜도의 세계관이다.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귀족으로 태어난 의무 이상, 원죄 의식과 같은 것이다.

그가 태어난 영국은 '대영 제국'이라는 광활한 영토와 영향력을 확보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자비한 침략과 식민이라고 백작은 말한다. 현재의 대영제국만이 아니다. 귀족 가문이라는 영예는 사실 끊임없이 지배 세력의 일원으로 혹은 왕의 개로서 사람들을 수탈하고 다른 나라를 약탈하는 데 앞장선 '죄'의 왕관이라고 올랜도 백작은 단언한다.

그런 세계관을 가진, 더구나 아내마저 희생시킨 백작이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전쟁을 없애달라'던 아내의 유언이 무색하게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광기와 욕망이 만든 전쟁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 이미지

영화는 ‘전쟁을 배후에서 부추기는 빌런과 그의 하수인들’이라는 하나의 세력을 전제하고, 그들이 조종하는 독일, 러시아의 상황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독일, 러시아 국왕과 영국의 관계를 어린 시절 함께 쌈박질하며 자란 형제의 애증으로 설명한다. 한데 어울리던 사촌. 그런데 어린 시절 다른 형제들을 괴롭히며 자기 힘을 과시하던 사촌은 국왕이 된 지금도 다르지 않다. 빌런의 하수인이 충동하자 그는 거침없이 전쟁에 나선다.

이 '유치한' 해석. 하지만 전 세계를 전쟁에 휘말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최종 빌런부터 시작하여 어린 시절 열등감과 욕망을 현재 자기 권력을 통해 풀어내려 한 러시아, 독일의 국왕 캐릭터는 자신이 가진 것을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반전'에 나선 올랜도의 신념과 대비된다.

역사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썼듯이, 인류 역사의 많은 장면들을 만든 건 안타깝게도 반추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다. 첫 번째 시리즈부터 무능한 전 세계 지도자들의 목을 날리는 '피의 카니발'을 벌인 매튜 본 감독의 비판적 세계관은 여전하다.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 이미지

하지만 이것만으로 킹스맨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100만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을 제물로 바친 1차 세계대전, 그 제물에 올랜도 백작의 아들 콘래드도 포함된다. 전쟁에 반대한 올랜도 백작은 당연히 아들의 참전을 반대한다. 하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가문의 아들답게 콘래드는 국가에의 헌신을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국왕의 배려에 따라 후방으로 배치된 콘래드는 편법을 써서 전쟁터에 남는다.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구할 만큼 무술에 뛰어난 청년. 하지만 청년의 용맹도, 용기도 전쟁터에서는 무력하다. 결국 그는 전사자의 일원이 되고 만다.

아버지의 유지를 아들이 이어가는 건 익숙한 클리셰이다. 하지만 <킹스맨>은 그것조차도 비튼다. 스무 살 아들을 전장에 내보낼 정도의 연배, 중후한 랄프 파인즈가 분한 올랜도 백작은 아내도 아들도 잃게 만든 전쟁, 그리고 그 배후에서 조장하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러 나선다. 아서왕의 전설에 대해 아들과 흥미롭게 이야기 나누던 올랜도 백작, 이제 랜슬롯을 좋아하던 콘래드를 잃은 아서왕은 스스로 칼을 든다. 세상을 악의 소용돌이에 빠지도록 방관한 아버지의 결자해지이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부터 시선을 잡아끈 건 <킹스맨> 특유의 액션씬이다. 술집 문을 잠그고 'Manners maketh men'이라며 술집 건달들을 예술적으로 해치운 해리(콜린 퍼스 분)의 액션 씬이라든가, 리치몬드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 분)이 무능력한 전 세계의 지도자들 목을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배경으로 축제처럼 날리는 장면은 <킹스맨>을 잔인하지만 세련된 스파이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다.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 이미지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역시 그런 전통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러시아 황제를 쥐고 흔든 라스푸틴(리스 이판 분)의 러시아 전통 춤사위를 살린 액션 씬이나 고소공포증을 자아내는 모직 산지(?)에서 벌이는 대치 장면은 여전한 <킹스맨>만의 매력을 되살려낸다. 일상적이었기에 '안가'가 되었던 양복점은 킹스맨의 탄생처로서 절묘하다.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은 자유롭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한에 있어서 공동의 생활과 공동의 이익을 고려하려 한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안다는 건 곧 실천하는 것이다. (『철학하는 삶』, 이정수) '비판적 지식인' 올랜도 백작의 실천은 그래서 '킹스맨'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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