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수장학회는 나와 무관하다"고 주장해 왔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문제가 총선, 대선 쟁점으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자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자진사퇴를 유도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그러나 정수장학회 측이 23일 발표한 공식 입장을 보면 '자진사퇴'에 대한 언급은 없어, 최필립 이사장이 일단 '버티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 4일자 한겨레는 3면에서 최필립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최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임금님'이라고 표현하며, "(부산일보 사태가) 박근혜 위원장에게 (부정적) 영향이 있을 텐데, 그것만 생각하면 밤에 잠이 안 온다"고 밝혔다.

정수장학회는 23일 각 언론사 측에 배포한 '정수장학회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일부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정수장학회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단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과거 정권에서 정수장학회의 정당성을 수없이 조사했지만 어떤 장학회보다 모범적으로 운영돼 왔기에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정수장학회는 "일부에선 마치 부산일보가 장학회 때문에 공정한 보도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부산일보는 현재 편집국장을 기자들이 직접 선출하기 때문에 어느 언론사보다 완벽히 편집권이 독립돼 있다"며 "그런데도 부산일보 노조는 이제 사장까지 자기들이 뽑겠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는 경영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밝혔다. 최필립 이사장의 자진사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3일 "두 차례의 민관합동 조사위원회에서 권력에 의한 강제헌납이라고 판명난 사건을 아직도 정치공세로 몰아붙이는 것은 군색하다"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언론노조는 "이사장에게 과도한 연봉을 지급하고 있는 사실이 2005년 지적된 바 있으며, (당시) 3% 삭감했다고 보고해놓고는 다시 36%나 인상시켜 급여와 상여금으로만 1억7429만원을 지급하고 있다"며 "실태조사와 감사가 불가피할 정도인 정수장학회가 어떻게 모범 장학재단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2008년과 2010년 최필립 이사장과 그 가족, 재단 사무처장, 상청회장 명의로 박근혜 의원에게 건네진 정치후원금 4500만원의 출처 조사도 불가피하다"며 "재단의 공금이 합법적인 후원금을 가장해 박 위원장의 정치자금으로 건네진 것은 아닌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일보는 편집권이 완벽히 독립돼 있다'는 주장에도 "부산일보의 편집권이 상대적으로 독립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수장학회를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는 이유로 2011년 11월 30일자 신문을 인쇄거부했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보다 더한 편집권 유린은 없다"며 "최필립 이사장이 '부산일보 매각 불사'를 밝힌 것도 장학회와 박 위원장에 비판적인 논조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현"이라고 반박했다.

'부산일보 노조가 이제는 사장까지 자기들이 뽑겠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부산일보 노조는 사장 선출권을 요구한 바 없다"고 맞받았다.

"부산일보 노조는 정수장학회의 임명권을 존중해주되 부산일보 사람들의 면면과 장단점을 잘 모르는 장학회의 입장을 감안해 사원들의 의사를 반영한 후보를 압축해 주겠다는 것 뿐이었다"며 "장학사업을 하는 공익법인임에도 자신들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이토록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부산일보의 보도방향에 계속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언론노조는 "정부와 공기업이 지분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언론사가 경영진추천위원회나 공모추천제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공적 재원이 아니라 몇 개 교단이 지분을 분점하고 있는 CBS조차 사장추천위원회에 사원들의 참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정수장학회가 이러한 제도를 끝내 외면하는 것은 결국 언론장악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는 "정수장학회 이사진의 보도자료는 왜 정수장학회의 환골탈태가 절실한지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역사정의와 언론공공성을 위해 이사진들이 하루 빨리 물러나고, 사회적 공론을 모아 장학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이사진들로 구성돼야 할 것"이라며 "부산일보에 대한 영향력 차단을 위해 민주적인 경영진 선임제도 도입도 필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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