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한 로맨스 후속 작품으로 보통 심야에나 편성되던 4부작 단막극이 편성됐다. ‘혜화, 동’의 유다인과 ‘오작교 형제들’의 연우진이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아주 낯선 이름들은 아니지만 전작의 최수종과 황수정에 비교한다면 무게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 그렇지만 연출을 맡은 김진원 PD가 “단막극은 드라마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적어도 작품성만은 경쟁작에 앞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KBS가 이렇듯 시청률 전쟁이 치열한 주중 드라마 시간대에 과감(?)히 단막극을 편성한 것을 곱게 볼 수만은 없다. 난폭한 로맨스는 동시간대 경쟁작인 해품달에는 차마 비교할 수도 없는 저조한 시청률에 머물렀다. 그러나 아직도 해품달은 4회가 더 남았고, 현재로서는 어떤 드라마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해품달의 위세에 싹을 틔울 기회조차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비워둘 수도 없으니 마침 4부작인 KBS 드라마 스페셜 작품을 끼워넣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난폭한 로맨스도 16부작 드라마 스페셜이라고 해도 좋다. 낮은 시청률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캐릭터, 배우들의 차진 연기, 짜임새 있는 각본과 연출 등 흠 잡을 데가 별로 없다. 물론 초반에 잠시 휘청거린 점은 있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실패한 원인은 인색한 로맨스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연애에 미쳐 있는 드라마 시장에서 연애 빼고 뭘 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고 봐야 할지 모른다.

난폭한 로맨스는 매회 야구 용어로 소제목이 붙는다. 야구식으로 설명하면 난폭한 로맨스는 안타성 타구이나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 아웃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난폭한 로맨스 후속작인 보통의 연애는 야구 용어로 패전처리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헌데 간혹 패전처리로 등판한 투수가 호투를 하고 드물게 역전승까지 거두는 일도 전혀 없지 않다. 패전처리의 의심을 받는 보통의 연애가 제목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고 연애로 똘똘 뭉쳐 있다면 의외의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니 그 성공을 간절히 기대한다는 편이 더 맞다. 보통의 연애는 아무리 연애에 올인한다고 해도 좀 다른 연애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연애는 ‘형을 죽이고 7년째 도주 중인 살인자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남자가 그 딸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뭔가 실존적 화두를 뒷짐에 숨기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가족중심의 가치관을 가진 동양에서의 살인은 당사자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작년에 방영됐던 일본 드라마 <그래도 살아간다>는 사건 후 살인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이 모두 피폐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처절하게 보여준 바 있다. 말이 그렇지 피해자의 동생과 가해자의 딸이 만나 연애를 하는 일은 절대 보통일 수가 없다. 그러나 사건이 갈라놓은 가해와 피해의 상흔 뒤 깊은 곳에는 모두 보통의 삶, 보통의 연애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들이 감시하는 일상에서 도망칠 수 없기에 묶여 사는 것뿐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패전처리용이라도 좋으니 이런 드라마가 밤 10시 드라마에 자주 편성되었으면 좋겠다. 요즘 일요일 심야(사실은 월요일 꼭두새벽)에 방영하는 소녀탐정 박해솔만 해도 제 때에 보자면 허벅지를 꼬집어서라도 잠을 쫓아야 한다. 보통의 연애도 어차피 보게 될 드라마가 분명한데, 의식이 쌩쌩한 시간대에 방영해준다니 이리 반가울 수가 없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셈이다.

보통의 연애를 연출한 김진원 PD는 해품달과 우아하게 완주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아하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한 우아함이 재벌가의 파티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통의 연애는 밤 10시대에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소박하고 우아한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