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동수는 아내를 위해서 희생 플라이를 쳤다. 오랫동안 박무열을 지켜준 동수라면 그 상황에서 충분히 아내 오수영 대신 죄를 뒤집어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하게도 아니 고맙게도 단순무식한 박무열만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역시 직구의 위력이다. 박무열의 확고부동한 생각은 주변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잡히지 않던 스토커를 갑자기 찾아낼 수는 없다. 그 답답한 상황에 활로를 찾은 것은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 동아였다. 물론 이모는 아니라고 발뺌했지만, 의심을 풀지 않은 동아의 집요한 추적으로 이모는 순식간에 용의선상에 오르게 됐고, 이후로는 서윤의 할머니와 꽃뱀을 통해서 범인으로 확실해졌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포위망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이모는 이제와는 달리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먼저 종희를 납치해 수영장으로 끌고 갔다. 마지막으로 종희를 해치는 것으로 자기식의 사랑을 끝내려는 것이다. 동수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고 괴로워하던 무열을 보며 즐거워하던 빗나간 사랑의 마지막은 역시나 끔찍한 결과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날 밤 무열과 함께 있었던 것이 종희가 아니라 은재인 것을 알게 되고, 때마침 수영장에 나타난 은재마저 기절시켜서 인질로 삼았다.

이모는 박무열의 두 여자 모두를 실내수영장 끄트머리에 복면을 씌운 채 세워두었다. 그리고 박무열이 도착하자 누굴 사랑하냐며 둘 모두를 물에 빠뜨렸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채라 누군가 구해주지 않으면 꼼짝 없이 죽고 말 상황이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과연 박무열이 사랑하는 순서대로 구해낼 것이냐는 문제다. 농담처럼 해보는 말에 불과했던 물에 빠진 사람 구하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풀장의 한 면 길이가 25미터, 수영을 해서 25미터를 가려면 최소 1분은 걸린다. 둘 중 하나를 건져서 밖으로 내놓고 다시 구하러 올 때면 나머지 한 명의 여자는 이미 익사 상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모는 박무열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거라 확신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뭔가 깊이 고민하고 판단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고, 그 상태에서 박무열은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모가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 있다. 비록 박무열과 강종희가 헤어지고 유은재와 사랑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다. 대신 종희와는 8년이라는 긴 시간의 감정과 그리움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호원 은재의 생존 능력을 믿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무열은 지금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몸이 오래 기억하고 있는 종희를 먼저 구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미 눈치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모가 두 여자의 얼굴에 굳이 복면을 씌운 데는 이유가 있다. 누가 누군지 분간치 못하게 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주의) 이모는 두 사람의 옷을 바꿔 입혔다. 그 이유는 사랑한 사람을 구하게 된다면 이모는 얻게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말로는 오랜 시간 감옥에 있으면서 누굴 미워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했지만 이모의 진짜 목적은 박무열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하는 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은재가 수영장에서 이모의 전기 충격기에 맞아 쓰러질 때 화면은 굳이 신발을 크게 잡았다. 은재의 신발은 녹색 라인이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복면을 쓴 은재복장의 신발은 빨간색이다. 이모가 두 사람의 옷을 바꿔 입혔다는 확실한 증거다. 이모가 진정 소름끼치게 무서운 것은 미저리 같은 집착이 아니라 완전범죄도 가능할 치밀함에 있다. 그러나 그런 이모의 무서움은 나중 일이고 당장은 무열이 누구를 먼저 선택하는지가 궁금할 수밖에는 없다. 우린 통속하니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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