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스파이더맨’ 영화는 3가지의 시리즈가 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존 왓츠의 <스파이더맨>. 헷갈리기 때문에 이들을 대체로 샘스파, 어스파, 톰스파로 구분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무의식의 산물인지 모르겠지만 별칭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특징을 나타낸다. 샘스파는 B급 호러영화로 이름을 날린 샘 레이미 감독의 연출, 어스파는 스파이더맨의 어메이징한 능력과 화려한 볼거리, 톰스파는 배우 톰 홀랜드의 매력이 돋보인다.

톰스파의 장점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피터 파커 역의 톰 홀랜드가 주목받았다는 점이다. 톰 홀랜드는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막중한 역할을 부여받고 크리스 에반스, 스칼렛 요한슨, 마크 러팔로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합을 맞추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틴에이저 피터 파커의 영역을 개척해냈다. 특히 토니 스타크 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의 궁합이 찰떡같았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블립이라는 대사건과 맞물려 펼쳐진 두 사람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신뢰는 어벤져스 시리즈의 감성을 담당하는 하나의 축이기도 했다.

반면 톰 홀랜드만 보인다는 지적은 스파이더맨 영화로서 톰스파의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스파이더맨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았던 탓이다. <홈커밍>의 벌쳐는 아이언맨 때문에 사업이 망했고, <파 프롬 홈>의 미스테리오는 토니 스타크에게 조롱을 듣고 복수심에 불탄다. 아이언맨 사후의 수습을 위한 사이드킥처럼 행동하던 게 <노 웨이 홈> 이전의 스파이더맨이었다. 당연히 스파이더맨의 영원한 테마이자 정체성인 ‘책임감’을 작품에 투영할 까닭도 여지도 없었다. 다행히 <노 웨이 홈>은 이전작과 다르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 이미지

두 번째 기회와 운명론VS개척론

미스테리오의 계략으로 본인의 정체가 전 세계에 공개된 시점부터 영화가 시작한다. 스파이더맨은 미스테리오를 죽인 살인자로 지목되고 여론은 친스파이더맨과 반스파이더맨으로 나뉜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이유로 피터는 입시에서 탈락한다. MJ(젠다이아)와 네드(제이콥 배덜런) 역시 피터의 절친이라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 피터는 친구들의 입시실패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아가 소원을 말한다.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비밀로 해달라고. 이 과정에서 주문이 꼬이고 스파이더맨의 숙적들이 평행우주에서 넘어오게 된다. 톰스파 시리즈 최초로 드디어 피터 파커가 책임질 일이 생긴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평행우주에서 넘어온 빌런들을 다시 돌려보내자고 한다. 다시 돌려보내면 본래의 흐름대로 빌런들은 각자의 시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들이 빌런이지만 이 세계에서 자신과 관계를 맺은 이상 죽게 놔둘 수는 없다고, 그들을 치유할 테니 두 번째 기회를 주자고 말한다. 이때 등장하는 ‘두 번째 기회’가 <노 웨이 홈>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피터의 선한 심성을 드러내 주는 장치이며 동시에 스파이더맨 역시 애타게 바라는 소원이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은 빌런과 다르지 않다. 탄생부터 그렇다.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은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다. 한순간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슈퍼파워를 얻게 된다. 예상치 못하게 거미에 물려 슈퍼히어로가 되고, 사적 욕망을 위해 멀티버스를 열어버린 피터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우주를 구했지만 현실은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고, 대중들은 피터가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막대한 비난을 쏟아낸다. 빌런들에게 부여하자는 두 번째 기회는 사실 본인에게 주고 싶은 두 번째 기회이다.

그린고블린, 닥터 옥토퍼스, 일렉트로, 리자드, 샌드맨. 무려 5명의 쟁쟁한 빌런이 등장하지만 <노 웨이 홈>에서 진짜 빌런은 닥터 스트레인지다. 사람은 정해진 운명이 있고 개선될 수 없다는 운명론자 닥터 스트레인지. 운명은 충분히 바꿀 수 있고 사람을 고쳐 쓸 수 있다는 개척론자 스파이더맨. 운명은 바뀌거나 바뀌지 않을 뿐이지 절반만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의 갈등엔 타협점이 없고 누군가의 의견은 철저히 배척되어야만 한다. 스파이더맨은 결투 끝에 닥터 스트레인지를 제압하고 자신의 의지를 이어간다. 하지만 빌런들은 배신을 하고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깊은 절망에 빠진 스파이더맨. 다행히 평행우주를 건너온 건 빌런들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예상했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두 명이 등장한다. 바로 샘스파의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와 어스파의 스파이더맨(앤드류 가필드). 둘을 등장시키는 정공법은 톰스파가 빌런들과의 전투에서 힘에 부칠 때 위기 상황에 극적으로 등장해 힘을 합쳐 빌런들을 소탕하는 방식일 것이다. 허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의 진짜 빌런은 닥터 스트레인지다. 톰스파에게 필요한 건 막강한 슈퍼파워가 아니라 냉정하고 계산적인 운명론에 맞서는 의지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연인을 잃었지만 각자의 세계에서 빌런이 아닌 영웅으로 개척론을 증명해가는 피터 파커들처럼 든든한 동지는 없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 이미지

기꺼이 장렬히 실패하는 슈퍼히어로

힘을 합친 세 명의 스파이더맨은 두 번째 기회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에서 다섯 빌런과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그웬을 지키지 못했던 어스파는 추락하던 MJ를 구해내고, 샘스파는 분노한 톰스파가 글라이더로 찔러 죽이려던 노먼 오스본을 지킨다. 빌런뿐 아니라 스파이더맨 역시 두 번째 기회를 받아 이렇게 각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장면은 20년을 함께해온 팬들을 위한 최고의 연출이었다. 그러나 한번 열린 평행우주는 점점 확장되어 스파이더맨을 아는 무한대의 빌런들이 이 세계로 넘어오려고 한다.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다시 한번 부탁한다.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본인을 지워달라고.

본격적으로 멀티버스가 열리기 전에 닥터 스트레인지는 피터 파커에게 말한다. 네가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의 두 가지 삶을 살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톰스파도 피터 파커가 아닌 스파이더맨의 길을 택한다. 이때 비는 소원은 친구들의 입시를 걱정하는 철부지 고등학생 피터 파커가 아니라 세계의 파멸을 막아내려는 영웅 스파이더맨의 소원이다. 덤덤하게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시리즈 최고작이자 슈퍼히어로 장르의 걸작으로 꼽히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2>가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스파이더맨2>에서 피터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슈퍼파워를 상실한다. MJ와 삐걱대는 사랑, 오해에서 비롯된 절친 해리와의 갈등, 무겁게 다가오는 생활고와 지지부진한 학업까지. 스파이더맨을 위해 살기에는 피터 파커가 포기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시민들이 위기에 빠지자 피터는 다시 복면을 쓴다. 폭주하는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순간이 지금까지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이유도 피터 파커의 삶을 포기하고 시민들의 영웅 스파이더맨으로 남겠다는 숭고한 의지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진정한 삶을 사유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사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지만 ‘왜 사는가’가 요즘 인기 있는 질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의미가 아니라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효율을 위한 노하우(know-how)이지 의미에 관여하는 노와이(know-why)가 아닌 탓인데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대목에서 장렬히 실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피터는 <노 웨이 홈>에 이르러서야 오랜 시간 고민해온 삶의 의미를 스파이더맨에서 찾았다.

따지고 보면 <노 웨이 홈>은 결과만 놓고 본다면 완벽한 실패극이다. 함께 우주를 지켜낸 든든한 동료들과 포근한 환경에서 모두에게 사랑받던 우등생 톰스파는 연인, 친구, 가족, 재산을 모두 잃고 누추한 단칸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난한 천애고아가 된다. MCU를 통틀어 주인공이 이렇게 처절하게 실패하는 영화는 없다. 그러니 <노 웨이 홈>을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 서사가 아니라 기꺼이 장렬히 실패를 택하는 진취적인 인문학에 가깝다. 피터가 스파이더맨으로서 선택한 개척론의 경로도 인문학의 추구하는 길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 이미지

나는 빛나는 승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실패를 좋아한다

스파이더맨의 아버지인 만화가 스탠 리는 캐릭터를 이렇게 구축하라고 조언했다. 한번 행복하게 하고 두 번 넘어뜨려라. 장대하지만 숭고한 실패극이 끝난 후 피터에게 남는 건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쫄쫄이 하나만 입고 뉴욕을 지켜내는 영웅이지만 데일리 뷰글의 J.J 편집장에게 구박을 받고 스파이더맨 사진을 팔아서 푼돈을 받으며 월세를 걱정하는 고학생. 극복할 수 없는 소시민적 찌질함은 팬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스파이더맨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허나 스파이더맨이 단순히 가난하고 찌질한 영웅이라 사랑받는 게 아니다. <노 웨이 홈>에는 스파이더맨이 사랑받는 본질적인 이유가 나온다. 전투를 마친 닥터 옥토퍼스가 샘스파와 인사하며 반갑게 묻는다. ‘잘 지내니?’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샘스파가 대답한다. “애쓰는 중이죠(Trying to do better)”. 억만장자나 신에 버금가는 슈퍼히어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애쓰는 마음’이 우리가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을 계속 소환하는 이유다.

나는 빛나는 승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실패를 좋아한다

나는 소소한 일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거대한 악과 싸워간다

나는 용기 있게 나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떨림과 삼가함을 좋아한다

마치 스파이더맨에게 바치는 것 같은 이 시의 제목은 박노해 시인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노 웨이 홈>을 본 나는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MCU의 스파이더맨을 좋아한다. <노 웨이 홈>을 본 여러분도 아마 나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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