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안정상 칼럼] 2019년 2월 드러난 n번방, 박사방 사건이 국민, 특히 아동·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20년 5월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일명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성폭력처벌특례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등)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으며 같은해 12월 시행됐다.

그런데 최근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올해 12월 10일 시행된 n번방 방지법의 기술적·관리적 조치(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제2항)로 정부가 인터넷 대화방 등을 검열하게 될 것이라는 게시글이 퍼졌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대선후보가 이에 가세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는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의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헌법상 통신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거나 정부의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n번방 방지법에 대한 몰이해, 입법취지에 대한 곡해로 대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빨간 목도리를 들고 청년들과 대선 승리 기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는 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이 헌법 18조가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심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모든 기본권을 보장하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디지털 성범죄 방지라는 헌법적 가치 실현을 위해 예외적으로 전기통신사업법, 성폭력처벌특례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등으로 규제·처벌하는 입법적 제한을 두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통신비밀의 보호와 통신의 자유는 ‘통신비밀보호법’을 통해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이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또 이준석 대표는 앞으로 누군가가 우편물로 불법 착취물을 공유하는 범죄가 발생하면 모든 국민의 편지 봉투도 뜯어볼 계획인가라고 반문한다.

오프라인 상 우편물은 전기통신사업법상 디지털 성범죄 유통 방지를 위해 취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 대상이 아니다. 기술적·관리적 조치 대상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정보 중 성범죄 관련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불법 촬영물 등에 국한된다.

따라서 이준석 대표는 오프라인 상 우편물은 기술적·관리적 조치 대상이 아니며 우편물 검열은 통신비밀보호법상 원칙적으로 금지(제3조)되고 위반 시 중하게 처벌(제16조)된다는 점과 예외적으로 허용하더라도 엄중한 요건과 절차(영장주의 등)를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성착취 'n번방' [연합뉴스 포토그래픽]

이준석 대표는 텔레그램 등에는 적용이 어려워 결국 실효성이 떨어지는 조치라 재개정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개정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텔레그램도 원칙적으로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 적용 대상이다. 다만 ‘공개된’ 온라인 채팅방에만 적용되는 규정에 의해 사적 공간의 채팅방인 텔레그램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일 뿐이다.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서버, 주요 증거가 해외에 있는 경우에 국내법 적용을 위해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에 ‘역외규정’과 ‘국내 대리인제도’를 신설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규제기관은 해당 규정에 근거하여 성착취물 등 불법정보 유통 창구인 해외사업자들에 대한 법적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난번 n번방, 박사방처럼 사적 대화방에서 불법 성착취물을 공유, 거래하는 경우에 형사상 처벌을 받게 되며 세계 주요국과 체결된 '국제형사사법공조조약' 등을 토대로 해외 서버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도 추적·검거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준석 대표가 구체적인 재개정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텔레그램 등에 대한 법 집행력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 국내 기업만 역차별 받을 수 있으니 국내 사업자도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 적용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얘기로 매우 우려스럽다.

이준석 대표는 정부가 정한 알고리즘과 구축한 DB에 따라 사업자가 커뮤니티나 SNS에 게시된 내용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검열이라고 주장하고 윤석열 후보는 정부가 국민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 준다고 한다.

디지털 성착취물 등의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용자 신고, 경찰 수사 등을 통해 접수된 정보 중 불법촬영물로 의결한 정보의 DB를 구축해 디지털 특징정보로 코드화하고 인터넷사업자는 이용자가 올리는 동영상 특징정보코드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 촬영물 특징정보코드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다. 체크 시간은 불과 10~20초 내외이며 상호 일치할 경우 불법촬영물로 판단하고 삭제하고 게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법촬영물 등에 대한 ‘식별 및 게재 제한 조치’는 공개된 정보의 재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유통 전 단계에서 심의했던 군사독재시절의 ‘사전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필터링 프로그램에 의한 기계적인 차단을 요구할 뿐 게시물의 내용 자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상 ‘감청’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국민의힘 연세캠퍼스 총회에서 인사말하는 이준석 대표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이준석 대표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검열로 규정하며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근거가 없고 과도한 자의적 해석이다. 우리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천명(제21조 제1항, 제2항)하면서, 동시에 '언론의 자유'의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즉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제21조 제4항)’는 것이다.

인터넷상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같은 경우를 언론의 한 영역으로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불법 성착취물 등을 게시하는 것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반인륜적 범죄로, 이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부합한다.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 추진 당시 심사했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2소위 위원장도 국민의힘 간사였으며 본회의 의결 시 국민의힘 의원 50여 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 시행 1년이 되도록 침묵하고 있다가 특정 커뮤니티의 주장을 발판으로 검열, 감청 등의 터무니없는 논리를 쏟아내는 것은 제1야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나 잠재적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입법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는 게 법 개정의 한 축이었던 제1야당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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