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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사회적 공기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투쟁이었다”[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정형택 언론노조 SBS 본부장
이영광 객원기자 | 승인 2021.12.16 08:06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창사 이후 첫 파업을 예고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가 사측과 최종 합의를 이루었다. SBS본부는 경영진 임명동의제 갈등에서 비롯된 무단협 상황에서 6일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파업 돌입 직전, SBS 노사는 임명동의제 대상에서 사장을 제외하는 대신 시사교양국장과 편성국장을 추가하는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사측과의 협상 막전막후가 궁금해 지난 8일 정형택 언론노조 SBS 본부장과 전화를 연결, 소회와 함께 합의안 내용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정 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7일 노사가 합의문에 서명하며 두 달 투쟁에 마침표를 찍었어요. 소회가 궁금합니다.

“일단 조직에서 파업이라는 건 갈등이 가장 극대화됐을 때 나오는 방법이잖아요. 흔히 ‘아름다운 파업은 없다’라는 말씀들을 하는데, 사실 노동자가 일터를 멈춰 세운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결심이거든요. 그럼에도 사측이 훼손한 제도들을 보완 장치 도입을 통해서 최대한 원안에 가깝게 담보할 수 있다면 파국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마지막에 합의라는 결단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제도로서 남게 된 것들을, 우리가 제도로만 남겨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겠지요. 또한 온 힘을 다해 공정방송을 지키고, 우리 SBS가 사회적 공기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조가 앞으로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할 겁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로 두 달 넘게 사라졌던 단체 협약을 복원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거든요. 다시 노동자의 권리, 자주적 조합 활동이 보장된 우리 노사관계 헌법이 복원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훈 SBS 사장과 정형택 언론노조SBS본부장이 7일 '2021 노사 합의문' 서명식을 했다. (사진제공=SBS)

파업 들어가기 전 어느 정도 이야기가 오고 갔나요?

“노조나 사측이나 파국은 피하자라는 공감대는 있었습니다. 파업이라는 게 결국 조직의 갈등 비용을 높이고, 또 어느 측면에서든 조직원과 우리 일터의 희생은 불가피한 만큼 ‘피하자’라는 공감대가 있었고 그 공감대를 토대로 마지막에 양측의 양보와 타협, 수용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파업을 결단했기 때문에 합의가 됐을까요?

“노사가 잠정 합의문에 서명한 게 시간상으로는 6일 0시 7분이니까 ‘7분 파업했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사실 11시 40분부터 잠정 합의 내용이 조율됐어요. 그래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고 조합원께 파업 보류 지침을 전했습니다.”

어쨌든 노조에서 파업이라는 카드를 꺼냈기 때문에 사측도 합의한 거 아닌가요? 

“물론 압박이 됐을 거라 생각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지요. 다만 공정방송 제도 관련, 조합원이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합의가 안 되면 파업을 강행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파업을 피하면서도 기존 제도를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들이 도입되어 우리의 권리를 회복했기 때문에 행동을 멈출 수 있지 않았나 이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번 투쟁의 의미는 뭘까요?

“경영진 임명동의제가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라는 사실을 확실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10년 전 MBC 파업을 거치며 ‘공정방송은 방송 노동자의 핵심적 근로조건’이라는 점이 정립됐습니다. 우리 사업장에서 경영진 임명동의제는 공정방송을 위해 도입된 제도인 만큼, 이 역시도 방송 노동자인 우리의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것이죠. 이런 점이 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을 거치며 분명히 확인됐고, 사측 역시 수용했습니다.

또, 사측은 SBS A&T는 스텝 조직으로 공정방송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폈지만, 이번 투쟁을 통해 SBS A&T 구성원들도 공정방송을 사수할 책임과 의무, 권리를 가진 방송 노동자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형택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장이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사옥 1층 로비에서 열린 SBS노조 파업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전에도 노사가 합의했지만 파기했던 거잖아요. 또 그럴 우려는 없을까요?

“이번 합의에 이르는 동안, 새로 하게 될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그것이 깨질 경우에는 조합원들이 언제든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걸 사측에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사측 역시 논의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최소한 지금의 합의는 반드시 지키겠다’라고 공언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이룬 합의이기 때문에 사측이 가볍게 깰 수 없는 거고요. 그리고 이런 합의가 종잇조각에 그치지 않도록, 노사의 의지에만 기대지 않도록 노사 간의 헌법 같은 단체협약에 이 합의의 정신을 새겨 넣기로 했습니다. 사측이 이를 또 깨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두 달간의 투쟁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제가 파업 결의대회를 할 때 조합원들한테 ‘이 파업 결의대회를 준비하면서 안 어울리는 얘기인데, 돌잔치를 준비하는 것 같다’라고 얘기한 적 있거든요.”

돌잔치요?

“저는 아이가 하나인데요.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 그 아이가 너무 소중하더라고요. 꼭 지키고 싶고 잘 키우고 싶은데, 육아가 처음이라 모르는 것 어려운 것 투성이고 힘든 게 많더라고요.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이 아이를 잘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켜보니 우리가 아이를 키운 게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키웠더라고요. 

노조도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조의 가치, 공정방송과 노동의 가치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지키고 싶어서 위원장 자리를 맡게 됐는데 처음이라 제가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파업까지 오는 동안 조합원들 다독이고 독려하고 투쟁 동력 이끌어서 잘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조합원들의 굳센 의지와 투쟁 열기가 저와 우리 전임자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거더라고요.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지금까지 지지해 주시고 또 격려해 주시고 함께해 주신 우리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고 또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부분이 있나요?

“사실 처음부터 우리가 뭘 더 얻어내려는 싸움이 아니었잖아요. 기존에 존재했던 공정방송 제도를 사측이 없애겠다고 해서 거기에 맞서 지키려는 싸움이었기 때문에, 노조가 얻은 게 있다고 해도 사실은 승리가 아닌 거죠. 완벽하게 오롯이 온전한 형태로 기존 제도를 다 지켜내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입니다.

그럼에도 기존의 제도에 가장 가깝게,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기존 제도 강화를 통해서 훼손됐던 공정방송 제도들을 대체하고 보완했다는 것. 그래서 최소한의 장치로 남겨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2일 SBS 본사 1층 로비에서 열린 파업결의대회 (사진제공=언론노조SBS본부)

이번 합의의 큰 골자는 임명동의제 대상에서 사장을 제외하는 대신 시사교양국장과 편성국장을 추가하는 것이잖아요. 노조가 그 안을 수용한 배경은 뭔가요?

“그게 회사의 안과 이번 최종 합의안과는 차이가 상당합니다. 우리가 지키고자 한 건 사장과 공정방송 최고 책임자라고 하는 ‘보도‧시사교양‧편성’ 등 세 본부장에 대한 임명동의제입니다. 그런데 사장은 주주의 권한 침해라는 사측의 반대 벽을 현실적으로 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사장을 제외하더라도 보도의 공정성, 제작의 자율성, 편성의 독립성 이 세 가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3人 본부장에 대한 임명동의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노조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측 주장은 보도에 대해서는 본부장, 시사교양‧편성은 국장급만 하자는 거였잖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그걸로는 부족했습니다. 왜냐하면 최고 책임자가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측의 안을 받을 수 없었던 건데, 대신 최종 합의에서 시사교양본부장, 편성본부장에 대해 ‘긴급 평가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시사교양과 편성 쪽 최고 책임자에 대한 종사자의 평가가 즉시 발효될 수 있는 실효적 제도가 도입됐죠. 또 하나, 노사 합의를 통해 국장에게 그 권한을 위임한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넣어 시사교양국장과 편성국장에 대해 임명동의제를 하겠다고 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제도를 최대한 가깝게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사장 임명동의제가 사라지면서 A&T 조합원들이 사장에 대한 임명동의 권리를 잃게 되는 건데, A&T 조합원들 역시 핵심적인 근로조건인 공정방송을 지킬 필요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A&T에도 기존에 없었던 보도 영상본부장에 대한 중간평가제도와 긴급평가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런 점이 사측이 제시한 안보다 훨씬 더 진일보하고, 사측이 없애려 했던 제도를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진전된 안으로 합의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긴급 평가제는 어떻게 하나요?

“공정성 훼손을 확인해 재적의 50%가 발의하면 긴급 평가제 투표가 이뤄지고요. 그래서 재적의 3분의 2가 부적합 판정을 내리면 해당 직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인사 조치를 해야 합니다.”

그럼 재신임 묻는 걸로 이해해도 될까요?

“네 맞습니다. 재신임을 묻는 거예요.”

긴급 평가제에 대한 구속력은 있나요?

“네 있어요. 반드시 인사에 반영해야 합니다. 3분의 2가 반대하면 그 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 SBS 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에 합의한 내용 중에 노조 추천 사외이사 복원도 있던데?

“노조 추천 사외이사 제도는 2008년부터 도입됐고요. 13년 넘게 유지돼왔던 제도로, 특히 2017년 10.13 합의를 통해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제도가 더 강화된 형태로 실시됐었어요. 경영진과 경영활동에 대한 종사자 최소한의 견제와 감시 장치로 역할을 해왔었는데 사측이 10.13 합의 파기를 이유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제도를 아예 없앴던 거죠. 

이는 2017년 10.13 합의를 깬 것만이 아니라 기존 2008년 합의까지 무효화시켰던 잘못인 거고, 이번 합의를 통해서 2017년 합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2008년 합의 수준까지 복원시켰습니다. 저희는 이 제도의 복원을 통해서 경영진과 회사의 경영활동에 대한 종사자 최소한의 감시와 견제 수단이 복원됐다고 평가하고 있고요, 향후 지속적으로 그 권한을 늘려가는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뭘까요?

“일단 공정방송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들이 마련됐으니, 이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남은 거죠. 조합원들이 이러한 제도를 활용하는 건 이제 책임과 의무가 됐습니다. 평가가 이뤄질 때 반드시 참여해서 종사자들의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 제도로 미흡한 부분들 그건 당연히 사람의 의지일 텐데 경영진, 특히 공정방송 최고 책임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방송 공정성을 지킬 수 있도록 노조가 끊임없이 견제와 감시를 해나갈 겁니다. 

무엇보다 사회가 진일보하면서 공정방송 제도들 역시 더 정교해지고 촘촘해져야 하는 만큼, 제도적 미흡함이 보인다면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지상파 SBS에서 무단협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점 대해서 구성원들도 상처를 받았고, 또 시민분들도 많이 우려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방송 공정성을 지켜 SBS가 사회적 공기로서 최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최대한 원안에 가깝도록 대체 제도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기존 제도가 강화된 만큼, 이제는 SBS가 시청자 권익과 사회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계속 SBS를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지금까지 SBS 구성원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시민사회와 시청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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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객원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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