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13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대기업의 절반이 투자 계획을 짜지 못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자 모든 언론이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물론 한경연의 설문 조사를 정리한 보도자료를 검증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은 없었습니다.

한경연 설문 조사는 전화면접과 팩스, 이메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8.71%입니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정도의 표본오차가 있는 설문 결과는 의미가 없어 보도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표본오차를 언급한 언론은 없었습니다.

한경연의 설문조사는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왜곡하고 위기감을 고조시켜 '규제 완화'라는 자본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또한 언론의 묻지마식 받아쓰기 보도는 알게 모르게 자본의 의도 대로 놀아나기 마련입니다. 한경연의 의도는 다음 두 신문의 사설과 기사를 보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 14일자 사설 <500대 기업 절반 투자계획 못 짰다…더 캄캄한 내년 경제>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한국 기업의 경영 환경은 글로벌 경쟁자들보다 열악하다. 달성 불가능한 탄소중립 목표 강제, 친(親)노조 정책 심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온통 지뢰밭"이라면서 대선 후보들에게 기업들의 애로를 경청하기 위해 귀를 열라고 주문했습니다.

조선일보도 <대기업 투자 얼어붙었다> 기사에서 한경연의 보도자료를 인용하고 "원자재 가격 인상, 해운 운임 상승, 미국의 반덤핑 관세 등 가뜩이나 어려운 외부 상황에서 임금협상을 둘러싸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한국타이어 노조의 대전・금산 공장 총파업이 20일째 계속되고 있다"고 썼습니다.

또 조선일보는 같은 기사에서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의 1번 타자가 건설회사 CEO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투자와 사업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국내 건설사 사장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14일자 기사 <“내년? 어떻게 될지 예측도 못해” 대기업 투자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들 언론 보도는 최근 한국 경제 상황과 다른 허구입니다.

국내 500대 기업의 경우 올해에 2018년 이후 영업이익 200조 시대를 다시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는 11월 16일 국내 500대 기업 중 올해 3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259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올해까지 연도별 분기 실적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해당 기업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67조 7352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71.5% 증가했습니다. 반영되지 않은 4분기 실적까지 더해지면 200조 원을 상회할 것이라고 합니다.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2017년의 223조 3603억 원도 넘어 올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올해 수출은 사상 최대인 64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전년도에 비해 26% 증가한 것입니다. 한국경제는 그간 한국 기업의 기초 체력이 튼튼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 IMF는 세계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1%에서 올해 5.9%로 급등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정부는 내년에도 글로벌 교역 및 수요 확대 등으로 실물경제 회복세가 계속돼 수출 증가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업의 양극화 심화입니다. 8월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말 기준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1244개 중소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취약기업’은 50.9%로 절반의 기업이 경영 위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한경연의 이번 설문조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이 대상이며 실제로 조사에 응한 기업은 101개 기업에 불과합니다. 또 '내년 투자 계획 없다'는 기업은 8.9%로 조사 대상 500개 기업 중 9개 기업에 불과합니다. 이번 조사의 첫 번째 문항은 우리나라의 투자 환경을 점수로 평가하는 항목입니다. 평균 65.7점으로 언론의 평가와는 다르게 매우 우호적인 환경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론이 주로 인용하는 ‘국내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로 35.3%가 ‘고용 및 노동 규제’라고 답했는데 이는 인식 조사일 뿐, 내년도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전망과는 무관합니다.

한경연은 전경련 산하기관으로 자본과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구기관입니다. 따라서 언론은 한경연의 보도자료를 인용 보도할 때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언론이 한경연의 보도자료를 아무 검증도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식 보도하는 것은 현실을 호도해 여론을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며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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