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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페셜 2021] ‘셋’ 성폭행범 응징했지만 치유되지 않는 고통, 왜?[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12.12 23:27

[미디어스=이정희] 그날로부터 12년이 지났다. 시간은 흘렀지만 종희(소주연 분)도, 형주(정이서 분)도, 보리(조인 분)도 12년 전 종장리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형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12년 전 그날 하기로 했던 거...기억해?”

세 사람은 12년 전 약속했던 것처럼 종장리 형주네 집으로 모였다. 그런데 보리는 가방에 작은 단도를 하나 숨겨간다. 과연 보리가 숨긴 그 단도는 누굴 저격한 것일까?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셋’ 편

12월 10일 방영한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셋’은 성폭행 피해자들에 주목한다. 종장리라는 작은 마을의 단짝 중학생 세 명, 그들의 꿈은 예쁜 펜션을 사서 함께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벌써 미래의 '러브하우스'를 위해 돈도 모은다. 

졸업 사진만 찍으면 이제 중학생 시절도 끝나갈 시점, 하지만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던 세 명에게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시작은 형주의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다. 여경이던 어머니는 동료 경찰과 재혼했다. 그런데 늘 밝기만 하던 형주가 그 이후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형주가 걱정돼서 형주네 집을 찾은 종희와 보리. 하지만 친구들의 우정에 응한 건 형주에 이어 종희와 보리를 희생자로 삼은 형주 새아빠의 성폭행이었다. 심지어 그는 동영상까지 찍고 자신의 직업을 들먹이며 아이들을 위협했다. 

세 사람은 그런 형주 새아빠를 죽이려고 했다. 그를 죽이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나고 형주가 다시 '그날의 미션'을 위해 친구들을 소환했고 종희와 보리가 응했다. 

그놈을 응징하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셋’ 편

성폭행범 응징, 드라마의 예고편은 그 지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막상 그 '응징'은 쉽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토록 손쉽게 그렸던, 누군가의 목숨을 거둔다는 일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형주 아버지가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자살'처럼 위장하여 그를 죽일 방법을 의논하던 세 사람. 하지만 음모는 그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늘 술에 취해 있다던 새아버지는 말짱한 정신으로 돌아왔고, 그런 그로 인해 혼란스럽던 세 사람을 먼저 '그놈'이 발견한 것이다. 

3:1 숫자로만 보면 승산 있는 비율이지만, 전직 경찰이던 남자와 생전 칼 한번 손에 쥐어본 적이 없던 지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들의 대결은 숫자 놀이가 무색하게 새아빠에 의한 강압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12년이 지나도 여전히 끔찍한 '그놈'을 죽이고 싶지만, 누군가를 죽이기엔 인간적인, 그래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세 사람의 대결을 통해 외려 드라마는 그녀들의 절박함을 설득해 낸다. 

시작은 그녀들의 보복적 의도였지만, 결과는 그놈의 일방적인 폭력에 대응한 '방어'로써 그놈을 죽이게 된 세 사람. 그런데 자살로 보이게끔 완전 범죄를 만들고 싶었던 의도와 다르게 집은 난장판이 되었고, 심지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어린 의붓동생이 있었다. 

12년 사건의 진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셋’ 편

여기서 세 사람은 혼란스러워진다. 그 의붓동생마저 없애야 한다 어쩐다 의견 충돌을 벌이던 세 사람은 거기서 비로소 12년 전에 봉인했던 진실에 다가선다. 그놈만 죽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놈에게 사과만 받으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놈의 성의 없는 사과와, 그놈을 죽였는데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혼돈 속에서 보리는 절규한다. 자신이 들고 온 칼의 용도가 그놈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형주'를 향한 것이었음을. 

그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세 사람은 비로소 12년 전의 진실, 12년 동안 한번도 걸어 나오지 못한 과거를 들여다본다. 함께 형주 새아버지를 죽이자 했던 12년 전의 그날, 왜 세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 

보리가 형주를 죽이고 싶었던 건 바로 자신들을 성폭행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데 형주가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의심이었다. 형주는 피해자였지만 조력자였다. 하지만 그 조력에는 자신의 목에 칼을 댄 협박과, 혹시나 그 사실을 어머니가 알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어머니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던 마음이 형주를 본의 아닌 조력자로 만들었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셋’ 편

여전히 어머니 때문에 참고 있던 형주. 하지만 종희는 그런 형주의 마지막 보루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폭로한다. 그리고 12년 전 차마 서로에게 알리지 못한 채 홀로 삭혀야 했던 진실, '그놈'을 죽이고도 여전히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사건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다는 '진실'이었다. 

'결자해지', 형주는 12년이 흘러서야 눈물로 읍소한다. 12년 전 그날 희생양이 된 세 소녀. 하지만 그 사건을 눈감은 보호자로 인해 소녀들은 12년이 흐르도록 여전히 그날로부터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다고, 그곳에서 도망친다고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음을 드라마는 혹독하게 보여준다. 아픔은 덮는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외려 그 덮은 상처는 덧나고, 심지어 괴사되어간다. 12년이 흘러도 여전히 고통받는 그녀들처럼. 

드라마 <셋>은 긴장감 넘치는 심리 스릴러적 구조를 통해 '성폭행' 사건 이면의 복잡한 속사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12년이 지나도 여전한 고통, 그놈을 죽이고서도 풀어낼 수 없는 아픔, 그리고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드라마는 섬세하게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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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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