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적 이슈가 되고 있는 프로야구의 승부 조작 논란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과연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에서는 ‘승부 조작’ 대신 ‘경기 조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가 야구에서는 한두 명의 선수가 승패 전체를 조작할 수 없으며 단지 브로커와 짜고 경기 상황을 조작하는 것이기에 ‘승부 조작’이 아닌 ‘경기 조작’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의 개념 규정 이전에 일부 언론사에서는 사태가 불거진 초기 단계부터 ‘승부 조작’ 대신 ‘경기 조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승부 조작’이라는 익숙한 용어보다 ‘경기 조작’이라는 용어는 참신합니다.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의미인 ‘경기 조작’은 ‘승부 조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부정적이어서 부드러운 느낌마저 부여합니다.

▲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실에서 리모델링 작업 중인 인부가 KBO 로고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와 배구에서는 ‘승부 조작’이라는 용어를 적용했으나 야구에서만큼은 ‘경기 조작’이라는 용어를 적용한 것에 대해 축구는 수비수나 골키퍼, 배구는 세터나 리베로가 승패 전체를 쥐락펴락할 수 있지만 야구는 한 명의 선수가 승패 자체를 좌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는 야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투수의 투구, 타자의 스윙 여부, 야수의 포구와 송구에서의 실책과 같은 단 1개의 공, 단 하나의 플레이가 승부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승부를 좌우하는 단 1개의 공은 9회말 2아웃 동점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는 실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투수가 1회초 선두 타자에 던진 초구가 그날의 승부를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선두 타자 홈런이나 안타가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결승점과 직결될 수 있으며 초구가 볼로 시작되어 제구가 흔들린 끝에 사사구를 남발하며 자멸할 수도 있는 것이 야구의 속성입니다. 1회에 내준 볼넷 하나로 인해 팀이 0:1으로 패배할 수도 있는 것이 야구입니다.

즉 ‘경기 조작’이라 규정하는 1회의 고의 볼넷 하나가 승패에 얼마든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경기 조작’이라는 부드러운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승부 조작’이라는 용어가 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정당당한 승부가 생명인 스포츠에서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요인 하나라도 사전 모의를 통해 조작되었다면 그것은 ‘승부 조작’에 다름 아닙니다.

프로야구 승부 조작 논란은 검찰 수사보다 오히려 언론이 적극적으로 나서 사태를 키웠습니다. 축구나 배구에서는 검찰 소환을 거쳐 승부 조작 여부가 사실로 드러날 때까지 선수들이 이니셜로 처리되었지만 프로야구만큼은 유독 검찰 소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 시점에도 특정 구단과 선수들의 이름이 언론에 마구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인기에 편승해 자신들의 신문 판매 부수와 인터넷 뉴스 조회수를 벌기 위해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 조작’을 ‘경기 조작’으로 축소 보도하려는 언론의 최근 움직임은 지나친 선정주의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자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태도로 보입니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해 승부 조작이 사실로 밝혀져 선수들이 영구 제명되고 구단이 해체되기라도 하면 프로야구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쳐 스포츠 신문을 비롯한 언론사에도 부수 감소와 인터넷 뉴스 조회수 감소로 생명줄인 광고 수주에 여파가 미칠 것을 뒤늦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펙트’도 없고 소스도 불분명한 가운데 선정적인 보도를 바탕으로 사태를 키워온 언론이 이제와 사태를 축소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승부 조작’을 ‘경기 조작’이라는 단어로 바꿔치기해 사안의 심각성을 희석하려 하는 것은 영악한 꼼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뇌물’을 ‘떡값’, ‘촌지’, ‘관행’ 등의 단어로 포장하는 부패한 정치권과 다를 바 없는 태도입니다. ‘경기 조작’은 ‘승부 조작’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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