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은 한 팀, 한 단체, 한 조직을 상징하는 아이콘입니다. 축구 유니폼만 봐도 그렇습니다. 적색-청색 세로줄무늬가 혼합된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는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적색 상의로 대표되는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노란색 상의의 브라질 축구대표팀 모두 유니폼이 상징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그 유니폼 안에는 한 팀의 역사, 이야기,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해 준우승에 머문 한을 풀기 위해 채택된 브라질의 노란색 유니폼, 카탈루냐 민족의 애환이 담긴 바르사 유니폼 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기 있는 유니폼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고, 흘러온 역사가 담겨 있고, 문화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알고서 구매하고 착용하고 소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 인천 유나이티드 새 유니폼 발표 현장에서 말한 허정무 인천 감독의 발언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기존 청색-검정색 세로줄무늬가 아닌 파란색 바탕의 붉은 선이 들어간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파란색이 우리의 전통이라고 하는데 누가 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해서 가는 팀은 없다. 세계적인 팀도 유니폼이 많이 바뀐다"고 말해 현장에 있던 일부 팬들로부터 야유를 듣기까지 했습니다. 유니폼 디자인 변경에 대한 감독의 발언에서 팀 정신, 전통까지 건드린 것은 매우 경솔했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 인천 유나이티드 새 유니폼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잦은 유니폼 디자인 변경, K리그-대표팀 따로 없었다

이번 인천 유니폼 논란은 사실 한국 축구, K리그에 있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K리그 팀들의 유니폼 변경은 팬들 사이에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디테일한 디자인 보수 뿐 아니라 유니폼 스폰서의 입맛에 따라 어떤 팀은 매년마다 유니폼 디자인의 근본 자체까지 바꾸다보니 아쉽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나마 붉은색-검정색 혼합 형태의 전통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 역시 한때 이 유니폼을 착용하지 않던 때가 있었고, K리그 통산 최다승을 자랑하는 울산 현대 역시 현재의 연한 청색 계통으로 바뀐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유니폼 논란은 축구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 2년에 한 번 짝수해마다 바뀌는 대표팀 유니폼은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옷인 만큼 매번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집중되는 화제만큼이나 논란도 참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유니폼 스폰서를 바꾸자는 말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지난 2004년 나온 이른바 '로또, 당구공 유니폼'이었습니다. 대표팀 유니폼 스폰서 업체인 나이키는 당시 유니폼 상의 앞면에 동그라미 속 등번호를 삽입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새 유니폼을 선보였습니다. 기본 바탕은 이전과 같았지만 한국 축구 이미지와는 크게 동떨어진 단순한 디자인으로 "역대 가장 충격적인 유니폼"이라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으면서 80%가 넘는 팬들이 유니폼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급기야 대한축구협회가 뒤늦게 부랴부랴 나이키 측에 디자인 변경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나타났습니다. 논란 이후 나이키는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에 '투혼'이라는 글자를 삽입해 조금이나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긴 했습니다만 지나치게 스폰서의 특징만 부각시키고 한국 축구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이 '로또 유니폼'은 역대 최악의 유니폼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유니폼에 대한 팬-구단 간의 괴리감, 그리고 허정무 감독의 위험했던 발언

근본을 유지하고 팀 자체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유니폼을 오랫동안 지키고 가꿔 상징적인 아이콘을 만들어보자는 팬들의 생각과 해마다 아예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새 의지를 다지려 하는 구단, 스폰서의 생각은 그렇게 오랫동안 평행선을 이어왔습니다. 이번 인천 유니폼 논란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고, 허정무 감독의 발언은 그 논란에 기름을 더 부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큰 문제는 허정무 감독이 말한 "파란색이 우리의 전통이라고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다"는 공개 발언은 유니폼 뿐 아니라 인천 창단 때부터 고수해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색, 그리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소지가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팀의 상징과 같은 유니폼, 색깔을 몇몇 개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식의 발상은 다수의 팬들이 갖고 있는 순수한 마음, 애정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다수의 사람들이 만들어오고 지켜온 것을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부정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의 축구 유니폼 문화, 인식이 다른 나라와 차이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현실적으로도 허 감독 뿐 아니라 다수의 K리그 구단 고위 관계자, 유니폼 스폰서 관계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진 탓에 자주 유니폼 디자인이 바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보니 팬들에게 사랑받는 유니폼, 기억에 남을 만 한 유니폼이 지금껏 거의 남아있지 않고,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조금만 지나면 '퇴물' 취급을 하기까지 합니다. 전통을 간직하며 옛 유니폼도 과감하게 입고 애정을 갖는 다른 나라 축구 팬 문화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유니폼도 하나의 전통이자 아이콘이다

유니폼 문제는 비유하자면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이 바뀐다는 걸 경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팬들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하나의 큰 논란거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이 선보여질 때마다 진통을 겪는다고는 하지만 이번 인천 유니폼 논란은 원래 겪어야 할 진통보다 몇 배 더 크게 만든 요인이 있었던 점에서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유니폼도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오랜 역사, 전통의 중심 역할을 하며, 대표적인 아이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각 팀 고위 관계자나 많은 사람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의 입맛에만 맞춰 디자인 하나 크게 바꾼다고 대수냐고 생각하는 것은 30년 그 이상의 긴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K리그, 각 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