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월이 연우를 되찾는 날이 왔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감격스럽기까지 하지만 그 과정도 대단히 기발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활인소로 쫓겨나가는 월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음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액받이까지 했으니 은월각의 원혼은 못 받겠냐는 투였다. 그러나 그것이 절묘하고도 기발했다. 기억상실은 흔하디흔한 드라마 소재인데, 그 기억이 돌아오는 것까지도 판에 박힌 방법이었다면 많이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흑주술로 인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결국 한은 남긴 채 떠나야 했던 은월각. 하필 그곳의 울음소리를 대왕대비와 중전만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로 인해 월을 다시 그곳에 들어오게 한 것은 나름 작가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장치였다. 비극이 시작된 바로 그곳에서 다시 희망의 전주를 울려퍼지게 한 것이다.

대왕대비와 중전의 귀에만 귀곡성이 들리게 한 것은 월이를 구해내기 위한 도무녀 장씨의 주술일 것이다. 좀 더 신비하게 만들자면 월이를 지켜달라며 죽어간 아리의 혼령이 한 짓으로 할 수 있겠지만, 아리의 무덤을 찾아간 장씨가 봉인이 풀렸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누가 귀곡성을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귀곡성으로 내명부의 두 핵심인물에게 고통을 주면 액받이로 썼던 월이를 원혼받이로 쓸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원혼받이란 강신무들이 여러 혼백을 받아 영험을 발휘하는 것에서 착안한 작가의 상상의 소산으로 봐야 한다. 무녀 본인이 누군가의 원혼을 받아 목숨을 거는 일은 본업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월이가 연우의 기억을 되찾는다고 당장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당할 때보다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만 남았다. 더 이상 월이가 아니라 연우이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는 높디높은 궁궐 담장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기억을 되찾은 연우의 희망은 의금부 홍기태에서 살아나고 있다. 연우가 죽은 후에도 두 시진이나 체온이 그대로였다는 기록에 의심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연우의 기억만이 아니었다. 아역에서 성인으로 교체되면서 한시도 조용한 적 없었던 한가인의 연기력 논란이 적어도 은월각에서 기억을 되찾는 과정만은 그 논란에서 조금은 잠잠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다. 회심의 은월각 프로젝트는 연우와 함께 한가인에게도 살 길이 되어줄 듯싶다.

은월각에 던져진 월이는 꿈에서 어린 연우를 본다.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어린 연우를 보며 깜짝 놀라 꿈에서 깬다. 그리고는 마치 무덤 속에서처럼 본능적으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방을 문 쪽으로 기어간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그 순간 꿈에서 깬 것처럼 연우는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 믿을 수 없는 일들에 고개를 흔들고 가슴을 쥐어짜지만 돌아오는 기억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피를 토할 듯이 오열한다.

고문장면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한가인의 연기라도 이 은월각 오열만은 딱히 흠잡을 수 없다. 아무리 촬영에 짬이 없다고 해도 떠들썩한 논란을 혼자 모를 리도 없고, 고문에 이어 오열까지 폭발하는 감정선은 한가인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잘해냈다. 앞으로 남은 연기마저도 다 잘해낸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주 중요한 전환점에서의 인상적인 연기를 해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해서 연우의 부활은 환영 속에 맞이할 수 있었으며, 한가인도 처음으로 연기 좀 했다고 작은 칭찬이라도 해줄 만했다.

그래서 은월각에서의 신비가 가미된 기억되찾기 프로젝트는 대성공이라 할 수 있다. 흔한 방법으로 연우의 기억이 돌아왔다면 그 자체로 실망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한가인이 계속 짊어졌던 비난을 잠시나마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정좌한 자세로 관상감 나대길을 맞이한 것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연우가 기억을 되찾을 것뿐만 아니라 좋은 연기로 인기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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