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감귤을 자신들의 상황과 빗대어 표현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신분제 사회 조선의 궁녀라면 바랄 수밖에 없는, 세손의 후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덕임은 왜 이를 두려워했을까? 크고 작은 고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사랑은 너무 달달해서 씁쓸하게 다가왔다.

산이의 목욕을 돕기 위해 갑작스럽게 들어선 덕임은 탕 속에 빠지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물기에 젖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당연히 키스로 이어져야 하지만 이들에게 그런 로맨틱한 극적 상황은 쉽지 않다.

연애 경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상황은 가슴 뛰는 황홀함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터트리기에는 너무 많은 경계가 존재했다. 이런 상황을 깨트린 것은 서 상궁이었다. 덕임이 혼자 시중을 들고 있다는 사실에 다급하게 달려온 서 상궁으로 인해 허둥지둥하는 이들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물에 젖은 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덕임은 나인의 다른 옷을 찾아 갈아입기 시작했고, 조용한 안이 궁금한 서 상궁은 몰래 엿보고는 놀랐다. 덕임이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뭔가가 있었다고 느낀 서 상궁의 이후 행동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이 일로 인해 산이와 덕임 모두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은 명확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은 뜨거워진 감정을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삭이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산이 흥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덕임과 친구들이 고구마와 밤을 구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던 산은 궁녀들에게 인기가 많은 겸사서 이야기에 시큰둥하다, 덕임이 세자를 사모한다는 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좌익위도 몰래 나선 산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기쁜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내 환호했다. 산이 덕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덕임은 중전도 탐을 냈다. 중전이 자신의 곁에 있으라 했던 것은 덕임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말도 했다. 덕임이 탐나지 않았다면 그를 지킬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전이 덕임을 걱정한 것은 세손 주변에 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없는 중전이라도 내 곁에 있으면 죽음은 피할 수 있다는 말은 실제 그대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만 하다.

세손이 위기에 처하면 당연히 궁녀인 덕임 역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중전이었다. 크고 작은 위기들이 찾아오던 이들에게 넘어서기 힘겨운 거대한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리청정 상황에서 영조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오참을 즐기던 영조를 누구도 깨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겸사서에 의해 잠에서 깬 영조는 호탕함을 유지했다.

이상할 것 없었던 영조에게 의심을 표하게 된 것은 석빙고에서 얼음을 꺼내오라는 지시를 하면서다. 이미 지시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리고 다른 왕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오랜 시간 정정하게 왕위를 이어가는 영조라는 점에서 그의 이 한 마디는 신하들을 당황하게 했다. 감히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영조 자신도 자신의 지시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동덕회'에서 겸사서는 어의를 포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은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단박에 거부했다. 어의를 포섭한다는 의미에는 할아버지인 영조를 시해하겠다는 의미도 내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홍덕로가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영조의 행동 때문이다. 자칫 치매에 걸렸다면 대리청정하는 세손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어받게 되겠지만, 반대파들은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세손의 왕위 등극을 막으려 할 테니 말이다.

동네 언니였던 월혜와 함께 저잣거리로 놀라나간 덕임은 언니가 제조상궁 조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궁녀들의 왕인 제조상궁의 조카라면 특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신분을 숨기고 있던 월혜는 갑작스럽게 혼자 궁으로 돌아가라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월혜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이상한 남자들이 추격하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독살당한 익위사 가족이었다. 홍정여의 지시를 받고 세손을 호랑이 사냥 당시 죽이려 했던 익위사를, 월혜가 제조상궁의 지시로 독살한 것을 이들이 알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덤덤하던 월혜는 사내들을 순식간에 제거해버렸다. 그리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는 월혜는 엄청난 무공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세손과 적대 관계에 있는 제조상궁의 지시를 받는 조카라는 점에서 이후 벌어질 일들이 섬뜩하게 다가올 정도였다.

몰래 추적하던 남자와 달리, 얼굴이 드러났던 선비는 덕임의 오빠였다. 궁으로 들어오기 전 헤어졌던 오라비를 만난 덕임은 반가웠다. 언뜻 얼굴을 몰라볼 정도로 어렸을 때 헤어진 오누이의 만남 역시 흥미롭게 다가온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사도세자의 익위사였다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아버지. 오라비는 조선 최고의 무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덕임은 이제 자신이 돕겠다며 오라버니가 꿈을 이루기 바란다고 했다. 이는 제조상궁 조카인 월혜와 덕임 오라비의 대립 관계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산이 덕임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었던 것은 누구에게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아버지 사도세자 이야기를 직접 해줬기 때문이다. 사도세자가 직접 쓴 강아지 집 이름과 꽃들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덕임을 완전히 받아들였다는 의미였다.

늦게 입궁해 서 상궁이 대신 세손의 당번으로 나가 고뿔 이야기를 했고, 여전히 아픈지 확인한다며 덕임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만지며 체온을 점검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상궁마저 덕임에게 세손의 후궁이 돼라 요구했다.

생각시 시절부터 제조상궁은 덕임을 세손의 후궁으로 점찍었다. 동궁 생각시로 만든 것도 제조상궁의 선택이었다. 영특하고 용감한 덕임이라면 수많은 궁녀를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보호할 궁녀 출신 후궁을 바라는 제조상궁의 욕망은 사도세자 시절의 악몽 때문이기도 하다.

왕이 세손을 위해 내린 감귤은 흥미롭게 풀어냈다. 궁궐에서 어렵게 키운 감귤 하나가 이렇게 흥미롭게 풀어질지 알지 못했다. 서 상궁에게 궁녀들끼리 한쪽씩이라도 나눠 먹으라고 세손이 명하자, 젊은 나인들은 환장을 할 거라 했다.

세손이 덕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서 상궁은 의도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다. 공부를 돕는 덕임에게 감귤을 건네는 세자를 보고 덕임은 확신했다. 눈앞의 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확신하게 되자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덕임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왔다며 거절했다. 귀하고 과분한 것이라며 원치 않았던 것이라 거부한다는 말에 산은 "우리가 지금 감귤 이야기 하는 게 맞느냐"며 화를 냈다. 단순히 감귤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거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 덕임이 자신을 사모한다는 사실을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에 좌익위에게 묻자 그 역시 분명하게 들었다고 하니 기분이 풀렸다. 하지만 세손이 떠난 후 남은 이야기를 듣고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동궁 사람들은 모두 세손의 사람이니 사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원론적 이야기로 친구들을 놀렸던 것이니 말이다.

영조가 치매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제조상궁은 직접 잠자리 전 책을 읽어주기 위해 찾았다. 해당 상궁이 고뿔이 났다는 이유를 들어 영조와 마주한 제조상궁은 능숙한 방식으로 그의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려 했고, 영조 역시 임기응변으로 질문을 피해 가기 여념이 없었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책에 문제가 있다며 제조상궁에게 알아서 처리하라는 지시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미처 몰랐다. 덕임과 친구들이 옹주들과 함께 필사한 모든 책들이 불태워지는 상황은 의도하지 않은 위기를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도 겸사서의 행동은 덕임을 불쾌하게 할 뿐이었다.

친구인 영희가 자신이 직접 필사한 책을 지키려 했고, 이를 도운 겸사서의 행동이 자신에게 빚을 지게 만들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악한 겸사서의 행동에 그는 향낭을 주며 동생에게 전해달라 했다. 궁에 대한 추억을 가지라는 덕임의 말에 겸사서는 도발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영조는 손주를 위해 겸사서라는 존재 말고 여인을 곁에 두라 했다. 하지만 산은 영조와 다른 생각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할머니의 죽음마저 홀대했다 생각하는 산이는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였다.

산은 덕임이 낯선 남자와 만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강력한 질투심을 느꼈다. 팔토시를 선물하고 이를 행복하게 받는 덕임의 모습에 화까지 난 산은 서고에서 그를 기다렸다. 동궁에서 세손이 사라져 난리가 난 상황에서 서고에서 덕임과 마주한 산은 "너는 내 사람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왕의 여인을 뜻하는 붉은 끝동을 오라비가 선물한 토시로 가린 덕임은 저하의 사람이 맞다 했다. 더 나아가 마음까지 내 것이냐는 산의 질문에 궁녀에게도 마음과 의지는 있다는 말로 저항했다. 저하의 사람이지만 모든 것이 저하의 것은 아니라는 덕임의 도발은 이 드라마의 가치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렇게 기본 사극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깊이를 주고 있다. 궁녀들의 삶과,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궁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기만 하다. 그동안 사극에서 놓쳤던 많은 부분들이 흥미롭게 이어지는 이 사극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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