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은 한국 가수들 중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일반대중은 의미를 잘 모르지만 판소리 애호가라면 턱이 빠질 정도로 부러운 판소리 중고제 명창의 핏줄을 이어받았는가 하면, 어린 시절부터 신병이라 여겨질 정도로 이유 없이 많이 아팠다. 그래도 여전히 꿈은 잘 들어맞았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된다고 한다.

또 그런 허약한 몸을 이끌고 소녀 심수봉은 전국 명산대찰을 찾아다녔다. 그 또래 여학생들이 배우나 가수들을 쫓아다닐 나이에 말이다. 본래 심민경이라는 본명 대신에 쓰는 수봉이란 이름이 예명이 아니라 본래 스님이 지어준 법명이라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법명을 예명으로 쓰는 연예인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심수봉을 대한민국 가수 역사상 가장 특별한 비극으로 인도한 것은 10.26 궁정동의 밤이었다. 요즘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우연히 궁정동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혼비백산할 정도로 심수봉에게 궁정동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시간의 고문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후 심수봉은 가수로서는 물론이고 평범한 한 여자로도 살 수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심수봉은 물론 남편까지도 보안사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심지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강제로 약물중독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때가 지나서도 심수봉은 별스럽지도 않은 일로 두 번이나 방송정지에 묶이는 몸이 되어야 했다.

이쯤 되면 심수봉 앞에서 슬픔이니, 고통이니 말하는 것은 공자 앞에서 문자하는 것만큼이나 우스운 일이다. 그러니 그녀의 노래는 번번이 슬프다. 심수봉의 노래는 아주 깊숙이 숨겨놓은 아픔까지 찾아내는 마력을 지녔다. 본인이 그렇게 슬프게 살아서인가 보다. 또 듣기에 따라서는 촌스럽기도 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엔딩을 장식했던 사랑 밖에 난 몰라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촌스러움이 아주 치명적으로 가슴을 파고들고 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지금의 남편에 대한 심정을 옮긴 노래 비나리를 즉석에서 불렀다. 비나리는 천방지축 탁재훈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는 이수근마저 울렸다. 심수봉은 담담하게 말을 했다. “인생이, 인생이 슬퍼요” 헌데 그 말에는 슬픈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잔잔히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다. 보살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옴마니반메홈.

웃기려고 작정한, 또 그래야만 하는 예능 MC 세 사람에게 웃기는 일을 잊고 그만 울게 만든 심수봉의 노래지만 정작 노래하는 본인의 표정에는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돌이나 나무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담담한 표정에서 오히려 어둠처럼 큰 슬픔이 느껴지게 한다. 적어도 심수봉의 노래를 듣는 동안은 마치 방언이 터지듯이 “인생은 슬퍼요”라고 따라 고백할 수밖에는 없다.

그렇게 심수봉의 무궁화, 비나리, 사랑밖에 난 몰라 등의 노래를 듣자면 독한 술 몇 잔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슬픔을 인정하고 나면 뭔가 개운해진다. 심수봉은 토크를 끝낼 즈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마다 건드리면 안에 상처들이 다 있구요. 그래서 저는 노래로써 이런 것을 위로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심수봉 노래가 슬픈데 그 후에 후련해지는 이유를 알게 됐다. 자신이 아파본 만큼 사람들의 아픔도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월드뮤직이나 카톨릭 신자들에게 친숙한 이름이 있다. 남미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메르세데스 소사라는 가수다. 소사가 부른 노래도 역시 슬프거나 장엄하다. 특히 미사곡을 남미 민속풍으로 부른 미사 크리올라는 불후의 명곡이다. 심수봉의 무궁화를 들을 때면 메르세데스 소사가 떠올려지기도 한다. 소사가 키리에로 남미 민중을 위로했다면, 심수봉은 무궁화로 자주 실패한 우리들을 다시 일어서게 해준다. 그녀가 받은 긴 고통의 시간 덕분에 우리는 필요할 때 치유 받을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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