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억 원이라는 억 소리 나는 제작비를 자랑하는 MBC 주말사극 무신이 저조한 시청률에 묶여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그런 한편 시작과 함께 폭력성과 선정성 시비까지 일고 있다. 그러나 폭압적인 무신정권 하의 노예의 삶을 조명하는 데 꼭 필요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사실적인 시대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모험이 따르는 파격에 조금은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려나 조선시대에라도 자신이 노비가 아니고, 천민이 아닌 이상 그 시대가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사에도 군부독재의 폭압기가 길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고문이니, 투옥이니 하는 단어들은 신문을 통해서나 접할 뿐인 추상적인 개념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위조절 없이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처럼 하는 것까지는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무신이 그 정도 표현수위를 보인 것은 절대 아니다.

무신의 주인공 김준이라는 인물의 신화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잔혹한 리얼리티는 필수라고 할 것이다. 김준의 출신은 일반노비와 조금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노비들의 반란에 참가했다가 죽었다. 그런 사연을 모르고 자란 김준은 그저 무예승의 길을 걷고는 있지만 딱히 삶의 목표도, 불만도 없는 평범한 승려에 불과했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로 나가 33일간 혹독한 고난을 겪었던 것처럼 무릇 모든 영웅에게는 알을 깨는 혹독한 단계가 찾아온다. 천민출신 김준의 위대한 신분상승의 신화를 쓰기 위해서는 20여 년간 누려왔던 평화부터 깨져야 한다. 그래야만 승려로 자라온 김준에게 살생도 마다않는 무사로서의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준에게 잔혹한 투옥과 고문의 단계 그리고 죽음 한 가운데에 고립된 것 같은 지독한 삶의 갈망이 생기지 않고는 그 변화는 작가의 편의에 의한 전지적 설정이 될 뿐이다.

다소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죽은 이에 대해서 경건함을 갖추기보다는 그 주검에게서 당장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목도리와 신발을 챙겨야 하는 것부터 김준은 생존이라는 화두를 갖게 된다. 무신정권의 지배 아래 있더라도 고려는 승려가 행세하기에 좋았던 시절이다. 풍족하지 않더라도 부족함 없이 살아온 김준은 느닷없이 고통과 모멸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인생을 아주 빠르고, 뼛속까지 사무치는 절실함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김준은 옥에서의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어깨를 기대고 자던 노인의 죽음을 발견한다. 혼비백산하는 김준과 달리 이미 옥에 오래 갇혔던 고참은 덤덤하게 먹을 것부터 챙기라고 한다. 그래도 김준은 꼼짝 할 수가 없었는데, 그 노비는 직접 죽은 노인의 목도리와 신발을 챙겨 김준에게 건네준다. 그렇다고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다. 생색도 뭔가 얻을 것이 있을 때 궁리할 수 있는 감정의 잉여일 뿐이다.

죽음과 노역 둘 중 하나밖에는 선택할 수 없는 노비들에게는 생색을 내야 할 이유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 고참을 보면서 김준은 빠르게 생존의 자세를 갖추게 된다. 그렇게 김준에게 찾아온 고난은 김준 자체를 강철보다 더 강한 사내로 단련시킬 것이며, 동시에 시청자 역시도 그의 역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러나 무신의 초기 문제는 선정성보다는 오히려 4개월의 사전제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발견되는 사소한 옥에 티에 있다. 1회에서는 월아의 머리가 현대식 웨이브여서 지적을 했는데, 2회에서는 투옥된 노비들이 강제 노역장으로 끌려가는 고통스러운 장면에서 맨 앞에 선 보조출연자가 누군가를 보면서 웃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아무리 김준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고 해도 그 보조출연자의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모두 허사가 된 것이다.

해품달도 초기에 어이없는 옥에 티가 줄줄이 발견되더니 무신 역시도 회마다 옥에 티 그것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것들이 걸러지지 않고 노출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 정도라면 촬영현장은 물론이고 편집과정에서 얼마든지 발견되고 수정되었어야 하는데, 거대한 그림의 완성도를 허무하게 무너뜨리는 사소한 실수들이 발견되는 것이 안타깝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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