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사극의 홍수 속에 정통사극을 표방한 MBC 사극 무신이 찾아왔다. 고려 무신정권기를 배경으로 하는 무신은 남자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매우 거칠고 때로 잔혹하다. 그러나 도전과 응전에 의해 수레바퀴가 움직이는 역사라는 것이 본래 그런 것이다. 천년의 신비로 전해지는 팔만대장경은 대몽항쟁의 염원이 종교로 승화된 위대한 역사이다. 그래서 무신은 사실이면서도 퓨전사극보다 더욱 신비할 수도 있다.

무신은 사극본가를 자청하는 MBC가 계백의 실패를 딛고 재도약하고자 하는 의욕을 읽을 수 있다. 허나 이번에도 또 노예야? 하는 반응도 없지 않지만 작가가 김준이라는 인물을 찾게 된 동기에서 유행에 따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을 사극을 집필해온 이환경 작가는 본래 삼별초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 반, 필연 반으로 김준을 만나게 됐다고 한다.

그대로 삼별초였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보통 연애 드라마의 신데렐라 구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신화적 삶을 산 김준의 성공 스토리는 시대에 억눌린 남자들에게 행복한 꿈을 꾸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드라마 성공의 키를 쥐고 있는 연애 이야기도 빠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 드라마가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미리부터 각오해야 할 부분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캐스팅도 무신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한다. 김준 역에 김주혁, 최고 권력자의 딸 송이 역에 김규리, 무신정권 2대 막부 최우 역에 정보석 그리고 또 다른 노예 출신으로 김준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는 무사 최양백 역에 박상민이 자리했다. 그 외에도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명품조연들의 이름들도 주연의 유명세에 결코 뒤지지 않을 화려함을 자랑한다. 주현, 정성모, 강신일, 정호빈 등 멋진 연기를 펼친 이름들이 이 드라마의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12일 방영된 첫 회는 250억 원이라는 제작비다운 실감나는 전투신과 큰 규모의 장면들이 눈길을 끌었다. 사극이 대체로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예산 부족으로 용두사미를 보이는 것이 미리부터 걱정도 되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이고 일단 첫 회의 인상은 강하고 굵은 남자 사극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일부 전투신과 고문신에서 다소 잔혹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무신정권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퓨전사극의 대세 속에 다소 무모해 보일 정도로 팩트에 방점을 찍고 있는 무신의 출범에는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헛돈 썼다는 한마디 평으로 모두 설명이 되는 계백의 실패가 있기 때문이다. 꽃미남과 미소년이 등장해 여심을 흔들어대고 있는 해품달의 열풍 속에 무겁고 딱딱한 주제가 과연 안방에 먹힐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갖게 된다.

그러나 퓨전사극의 홍수 속에서 의외로 역사라는 굵은 심지를 내세운 무신의 정공법이 먹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조선사에 비해 사료가 현저히 부족한 고려를 다룬 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500년 고려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요소다. 이환경 작가가 10년이라는 세월을 쏟아 부은 고집의 사실 추구는 퓨전사극의 범람으로 생긴 역사의 목마름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첫 회에 김주혁을 사랑하는 월아가 웨이브 넘실대는 뒷머리채를 보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했다. 퓨전사극과 달리 팩트의 논란은 전통사극이라면 꽤나 시달릴 수밖에 없는 요소라는 점에서 제작진의 세심함이 더 요구된다.

50부작 대하사극인 무신은 무신정권에 의해 잡혀간 김주혁이 생존을 위해 글레디에이터를 연상시키는 격구에 참여하는 등 액션사극의 진면모를 보일 예정이다. 추노의 노비들은 더위를 핑계를 옷을 벗어 젖혔지만 무신의 노예들은 생존라는 처절한 이유로 옷을 벗어 여심 끌어들이기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그리고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간간히 등장하는 해인사 전경이 주는 천년의 신비다. 무신이 김준이라는 인물과 함께 천년의 신비 대장경을 조명한다. 그래서 해인사에 특별한 허락을 받아 대장경을 드라마 안으로 모셔올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다. 그런 과정에서 보너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유명한 해인사 예불소리로 첫 회에도 잠깐씩 맛볼 수 있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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