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 “MBC 시청자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물어봤더니 시청자위원회에서 말할 게 아니라고 하더라”(정수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 “대전MBC 아나운서 성차별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나 아예 논의되지 않았다”(이기동 대전MBC 시청자위원)

# “시청자위원회 운영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더니 '위원님은 모니터링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 황당한 사건이어서 아직도 기억한다”(손주화 KBS전주총국 시청자위원)

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시청자 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방송사 시청자위원회의 모호한 위상과 역할을 지적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시청자위원회는 1990년 방송법에 처음 등장했으며 ‘각계 시청자 대표 10~15인 이내로 구성된다’는 설치규정이 전부였다. 현재의 권한과 직무는 2000년 통합 방송법에서 만들어졌다. 방송법에 명시된 시청자위원회의 권한과 직무(제88조)는 ▲방송편성에 관한 의견제시 또는 시정요구 ▲방송사업자의 자체심의규정 및 방송프로그램 내용에 관한 의견제시 또는 시정요구 ▲시청자평가원의 선임 ▲기타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침해 구제에 관한 업무 등이다.

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민언련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시청자 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사진출처=민언련 유튜브)

정수경 민언련 정책위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시청자위원회 직무와 권한이 방송법에 명시된 부분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활동은 프로그램 모니터링에 집중됐고, 편성이나 심의규정에 대한 의견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정수경 정책위원은 “과거 MBC 시청자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발언했는데 시청자위원 권한을 넘어서는 부분이라 말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며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형태의 질문에는 답변을 충실히 하지만 방송사 내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대한 입장을 물으면 답변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방송법 제3조는 방송사업자는 시청자가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2015년 26기 KBS 시청자위원회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시청자위원인 정미정 정책위원은 KBS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익이 나오자 시청자위원회 안건으로 올려 이유를 듣고자 했으나 경영진으로부터 거절당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방통위는 방송법상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침해 구제에 관한 업무’에 해당된다며 시청자위원회에서 결정하라고 답변했다. 정 위원은 “애초 사측으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다른 위원들은 ‘이사회 권한이다’, ‘월권이다’라고 하더니 유권해석을 받은 뒤에는 투표로 안건 상정 여부를 결정하자고 해서 결국 부결됐다”고 말했다.

2년 전부터 지역민이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문제 제기

또 하나의 사례는 2015년 3개월 넘게 방송이 지연됐던 KBS <훈장> 2부작과 관련 있다. 정미정 위원은 시청자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하고자 했으나 당시 경영진은 “편성되지 않은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위원회가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정 위원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인 동시에 기가 막힌 일”이라며 “시청자위원회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주체와 시청자위원회 구성, 위원들 각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9년부터 SBS 시청자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최은경 한신대 교수는 “시청자위원회의 역할이 모니터링에 그치거나 모욕적인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며 “모니터링을 열심히 했는데 ‘시정하겠다’라는 의례적인 답변을 듣고 시정되지 않거나, ‘제작진 권한’이라고 선을 그을 때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SBS 시청자위원회는 23일 SBS 무단협 상태와 노사 갈등이 지속될 경우 시청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임명동의제는 SBS가 시청자와 한 약속으로 적어도 편성, 시사교양, 보도본부장 임명동의제는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이다.(▶관련기사 : SBS 시청자위원회, 보도본부장 임명동의제 유지 권고)

최 교수는 “시청자를 대표해 앉아있는 시청자위원으로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며 “2017년 도입된 임명동의제는 공정한 보도를 하기 위한 제도였고 이는 시청자권익에 부합했다. 이를 사측이 일방적으로 파괴했는데 시청자위원회가 어디까지 목소리를 내도 되는지 유사한 사례가 없어 고민됐다”고 전했다.

손주화 KBS전주총국 시청자위원은 “KBS 파업 이후 처음으로 민언련이 시청자 위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당시 시청자위원회 운영과 관련해 문제제기를 하자 ‘모니터링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반박하지 못한 게 몇 년 동안 한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손 위원은 시청자위원회 위상이 모호하다고 느꼈던 사례를 들었다. KBS 라디오 어플 ‘콩’에 실시간 지역방송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점을 2년 전부터 지적했으며 KBS 홈페이지가 본사 중심으로 돌아가 지역민이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상과 역할 강화될 수 있게 협업해야”

정미정 위원은 “지금 시청자위원회에서 하는 논의는 심의에도 못 미칠 정도에 작은 부분에 해당된다”며 “시청자 의견이 최소한 심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치 지향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미정 위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시청자 미디어재단 등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과 협업을 통해 전반적인 방송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심도깊은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손주화 KBS전주총국 시청자위원 “차기 총국장이 누가 올지 너무 걱정된다. 내부에서는 누가 총국장으로 오든 흔들리지 않는 시청자위원회 구성 모델을 만들자고 논의하고 있다”며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협업해 시청자위원 인력 풀을 공유했으면 좋겠고, 시청자위원으로 선임된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방송사에서 통합 워크샵을 통해 시청자위원회의 역할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줬으면 좋겠고, 시민사회와의 협업으로 모니터링 방법 등을 고안해나가면서 시청자위원회 위상을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탁종열 MBN 시청자위원은 “방송사 노동조합이 단협으로 확보하고 있는 노사 동수 공정방송위원회와 시청자위원회 간 유기적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MBN은 재허가 추진 과정에서 노사동수로 시청자위원을 추천해 시청자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를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공유하고 공방위 안건 협의 과정에서 논의된다. 이같은 구조를 제안하고 싶다”고 밝혔다.

탁종열 MBN 시청자위원은 “공영방송에서 노동이슈가 주요하게 다뤄지기 위해서는 시청자위원회 구성이 중요하다”며 “노동자를 대표하는 시청자위원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이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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