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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페셜 2021] ‘딱밤 한 대’란 날갯짓은 왜 토네이도가 되었을까[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11.20 22:36

[미디어스=이정희] <KBS 드라마 스페셜 2021>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예년과 다른, 야심찬 기획으로 돌아온 <드라마 스페셜 2021>은 온라인 플랫폼 웨이브와 Btv를 통해 선공개되었다. 이번 <드라마 스페셜 2021>은 90분짜리 TV 시네마 4편과 70분짜리 단막극 6편, 총 10편으로 사극, 스릴러 등의 다양한 장르를 담았다. 

TV 시네마 <희수>, <통증의 풍경>, <사이렌>에 이어 11월 19일에는 첫 단막극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을 방영했다. 2020 KBS 단막극 극본 공모 우수작이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편

기발한 제목에서 보여지듯 드라마는 '딱밤' 한 대로 시작된다. 오진(신예은 분)과 차민재(강태오 분)는 연인이다. 함께 TV 속 축구 경기에 빠져들던 두 사람은 서로가 응원하는 팀이 다르다. 민재의 팀이 골을 넣자, 늘 그렇듯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이마에 딱밤을 날린다. '오늘은 봐주지 않는다'는 장담처럼 쎄게 딱밤을 날린 민재. 하지만 민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경기에 열중한다. 그러나 오진은 그 옆에서 한동안 이마를 감싼 채 그대로 있다. 잠시 후 고개를 든 오진의 이마는 벌써 벌겋게 부어올랐다. 오진은 화가 난 듯 가버리고, 그런 오진을 달래려 찾아간 민재에게 개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오진은 '헤어져'라고 말한다.

딱밤 한 대로 소환된 트라우마

이 황당한 상황에는 두 장면이 전제되어 있다. 중학교 보건교사로 일하는 오진은 딱밤을 맞던 날 연인을 만나러 가기 전에 학생 오수연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수연은 오진에게 그 이유를 '소중함'이라 전한다. 왜 그 아이에게 마음이 갔냐는 질문에 수연은 남들과 다르게 자신을 지켜봐 주고, 소중하게 다루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해프닝 같은 '딱밤 한 대'가 오진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오진과 민재 관계의 진실을 일깨운다. 딱밤 한 대가 불러낸 기억, 그 기억 속에서 민재는 늘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 비 오던 날 허겁지겁 카페로 들어선 연인 민재와 오진. 한쪽 어깨가 다 젖어 당황하는 오진과 달리, 우산을 두 개 사자고 그러지 않았냐며 퉁명스레 말하는 민재는 말짱하다. 카페에 들어가서도 자기 마실 것만 말하고 가버리는 민재. 딱밤 한 대는 그렇게 늘 자기가 앞섰던 민재의 행동을 소환한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편

그리고 그렇게 불러낸 기억들은 다시 기억 저편, 오진의 오랜 트라우마를 불러온다. 생일상을 차려놓았는데도 약속이 있다며 나가버린 아버지. 주인공이 없는 상 앞에서 엄마는 왜 그렇게 사느냐며 다그치던 오진은 스무 살 무렵 일찍이 '독립'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노라 선언하듯 분가했는데, 딱밤 한 대로 되돌아보니 그 '미워하던 부모'의 관계를 자신이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기가 없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던 엄마가 이해되지 않던 오진. 그런데 어느덧 그런 엄마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오진에게 '관계'에 대한 용기를 내도록 만든다. 

드라마는 오진과 민재의 관계, 그리고 같은 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오진을 지켜봐주던 구원빈(홍경 분)과의 새로운 만남이라는 로맨틱 멜로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이들이 헤어지고 만나는 과정을 통해 짚어보고자 하는 건 관계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는 진지한 고찰이다. 

나비의 몸짓 하나가 불러일으키는 토네이도처럼, 딱밤 한 대가 불러온 이별은 그저 너무 아파서가 아니라 그 아픔이 깨워낸 관계에 대한 통찰이었다. 오래되어 익숙해진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소중함이 전제돼 있지 않다면, 더는 관계가 유효하지 않다는 엄정한 선언이기도 하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편

그래서 오진은 민재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하지만 민재는 그런 오진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편의적으로 '삐졌다'고 하고, 그다음엔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같은 학교 선생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오해한다. 결국 오진과 원빈이 만나는 자리에 뛰어들어 오진에게 외려 사랑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딱밤을 날린다. 

오진은 헤어지자 하는데, 민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마지막 만남에서도 오진이 그간 민재의 행동을 딱밤에 이르기까지 나열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민재의 일방적인 태도를 더욱 잘 드러내 준다. 일방적인 민재와 사랑이란 이름으로 엄마처럼 그런 민재를 보살펴주려 했던 오진. 이별의 '마이크로'한 원인을 통해, 어른들의 모습을 답습하며 관계의 늪에 빠진 젊은 커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살아가며 가장 필요한 배움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배움이건만, 대부분 부모의 관계란 선험적 경험만을 가지고 세상에 던져지게 된다. 오늘날 서점에 ‘관계’에 대한 갖가지 처방전과 해법서가 난무하는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풀이 과정'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중함이란 주제로 풀어낸 드라마는 관계의 전제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보듬어주지 않는 관계를 과연 지속할 가치가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편

드라마는 관계에 대한 정석을 풀어낸다. 오진은 더는 '엄마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당당하게 이별로 성큼 발을 내디딘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일방적인 관계의 사슬에 자신을 매어 놓지 않겠다 선언한다. 물론 로맨틱 멜로물답게 대안이 눈앞에 제시되어 있다. 오랫동안 서로를 위하는 부모 슬하에서 상대를 지켜봐 주고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배운 원빈은 그래서 사랑에 상처 입은 오진의 새로운 등대가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원빈과 같은 등대는 쉬이 만나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자신의 관계를 점검해 볼 수는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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