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고승우 칼럼]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요인에는 세계 최대의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 넷플릭스가 제작 배포한 것도 포함된다. 이는 21세기 정보화시대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콘텐츠가 무엇이든 그것이 배포 확산되는 유통 부분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이다. 넷플리스는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흥행 속에서 한국 진출 5년 만에 요금을 기습 인상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 또한 정보화시대 거대 기업의 탐욕스런 독과점적 이윤 추구 행태라 하겠다.

'오징어 게임'에 얽힌 사연은 한국 사회의 대중매체와 포털, 플랫폼 등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현상과 닮은꼴이다. 대중매체가 포털 등 온라인 속 유통 부분의 수요자를 확보하려는 경쟁에 휘말려, 그것이 격화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매체를 포함한 수많은 미디어들이 생산하는 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 공간에선 대중적 관심과 호기심을 사로잡을 요건을 갖추도록 정보 가공작업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거칠고 엽기적이며 때로는 섬뜩한 정보가 넘쳐난다.

대중매체도 언론의 사회적 책무에서 벗어난 황색저널리즘에 오염되거나 이미 그렇게 된 것 같은 우려가 크다. 그리고 대중매체가 극성 인터넷 소비자를 주목해 기계적 균형을 맞춘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로 찬반이견을 전달하는 데 그치면서 사회적 권력, 부조리 등을 고발하는 제4부의 역할을 외면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경계하기 위해 몇 가지 각도에서 한국 언론을 접근해 보고자 한다.

제목 장사에 목매는 언론

오늘날 국내 대중매체가 행하는 공통된 행위는 이른바 제목 장사 등의 부정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일한 내용이라 해도 제목에서 뭔가 특이한 점을 제시해 소비자가 그것을 선택하도록 유인하는 기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이하거나 비정상적 선정적인 제목이 많다. 언론들이 시도 때도 없이 그다지 특이하지도 않은 내용에 [단독]이라는 팻말을 붙이는 작업이 관행처럼 되어 있고, 심지어 한 거대 통신사는 기획기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현상으로 비화되었다.

기획기사는 언론매체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의제 설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수단의 하나이다. 기획기사는 가치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외면받는 사안을 새로운 의제로 제시하는 형식인데, 이를 아예 배제한다는 것은 언론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또는 관심이 큰 주제에만 매달리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포털 등에서 조회 수가 많이 나올 사건, 사고 기사에 매달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는 독자의 호기심에 영합하는 내용만을 주로 보도한다는 것으로 대중매체의 정체성까지 의심케 만드는 현상이다.

언론이 섣부른 예단을 앞세우는 독설가들의 SNS 등을 앞다퉈 뒤져 기사화하는 것도 사실 확인이나 검증의 기본 책무를 뒤로 한 채 언론 소비자에게 영합하려는 행태의 하나다. 언론이 최근 언론중재법에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만드는 것에 초강력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인터넷 공간에서의 언론의 비정상적 영업행위에 대한 제재를 염려한 것이란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보도에 대한 법적 규제가 시도되기 전에 언론 스스로 언론인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높이는 등의 자율적 규제에도 소극적인 것은 대단히 실망스런 일이다.

연합뉴스 11월 16일 기사 갈무리

오늘날 한국 대중매체의 비정상적인 현상은 ‘사람이 개를 무는 식의 사건, 사고’에서 주로 이뤄지게 되고 그 대상은 국내외 모든 분야가 해당된다. 예를 들면 지난 16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 관련 연합뉴스 기사 제목 일부는 ["현상변경 반대"·"불장난하면 타죽어"…]였는데 이는 대만 문제로 두 정상이 충돌했다는 의미다. 이 제목대로라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국가의 정상회담에서 극언까지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로이터, AP, CNN, 가디언 등 외국 언론의 해당 기사에 그런 내용은 없었다. 연합뉴스의 이 제목은 불장난하다 몸까지 태우는 격이라는 중국 속담 惹火燒身 [rě huǒ shāo shēn]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두 정상은 대만에 대해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인하고, 중국은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부추기면 화가 될 것이라는 식의 경고를 발했지만, 큰 틀에서 봉합하는 분위기였고 이는 3시간 회담에 거론된 수많은 현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정상회담에서 상대방에게 ‘타죽어’라는 식의 표현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인데도 그런 제목이 나온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러나 뉴스 도매상이며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는 국내 많은 매체에 영향을 미쳤고 이를 본 뉴스 소비자들은 미중 정상회담이 살벌했다는 오해를 하게 되었다. 미중관계는 북미, 남북관계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주목되는 보도의 하나였다.

참고로 중국 환구시보의 16일자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논평기사의 해당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During their video meeting on Tuesday morning Beijing time, Xi stressed China's stance on Taiwan to his US counterpart. He noted the new wave of tensions across the Taiwan Straits, and ascribed the tensions to the repeated attempts by the Taiwan authorities to look for US support for their independence agenda as well as the intention of some Americans to use Taiwan to contain China. Such moves are extremely dangerous, just like playing with fire. Whoever plays with fire will get burnt. ---

포털에 목맨 대중매체

연합뉴스 (사진=미디어스)

한국의 언론시장은 신문, 방송할 것 없이 다수가 경쟁하는 구조이고 그 생산물이 주로 포털을 통해 소비되다 보니 포털 등이 갑이 된 지 오래이다. 연합뉴스가 최근 포털에서 제재를 당하자 말도 되지 않는다며 갖가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정부로부터 매년 300억 원 이상의 국고 지원을 받는 국가기간통신의 모습으로 보기 힘들다.

연합뉴스가 포털로부터 제재를 당한 이유는 연합뉴스 사규에도 저촉되는 기사형 광고를 수년간 인터넷 공간에 송출한 부적절한 행위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연합뉴스가 많은 시민사회단체 등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일 포털을 비판, 비난하는 기사를 그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언론의 기본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자초한다. 사회적 공기의 뉴스 보도 기능이 자사 이기주의에 전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의 언론사와 계약 규정 등은 사실상 거대자본이 대중매체와 정보를 통제하는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정치 권력이 언론을 통제했지만 그 역할을 거대자본이 대행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인터넷매체에 대해 경제 규모에 따른 제재를 가하려다 위헌판정이 난 바 있다. 하지만 그간 연합뉴스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가 제 발등에 불이 붙자 길길이 뛰면서 포털의 문제를 공격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8일 논평에서 “2003년 뉴스통신진흥법 제정 이후 정부 구독료 명분으로 매년 300억 원대에 달하는 공적 지원을 받고 있는 연합뉴스가 기사로 위장한 광고 2000여 건을 포털에 송출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국민 기만행위”라고 전제한 뒤, “이번 사태 본질은 연합뉴스가 금전적 대가를 받고 기업홍보 광고를 기사로 속여 내보냈다는 사실이다. 포털 메인화면에 노출이 안 된다고 독자들이 연합뉴스 기사를 접할 방법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연합뉴스의 공적 가치를 박탈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이어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의 연합뉴스 ‘검색 제휴’ 강등 결정을 두고 ‘이중 제재’, ‘자의적 판단’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지난 8월 결정된 ‘32일 노출중단’ 제재와 재평가에 따른 이번 강등은 뉴스제휴평가위원회 규정에 따른 것으로 벌점 6점 이상 언론사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반박했으며, “(연합뉴스가) 대선 후보들을 포함한 일부 정치권에 기대 계속 반발하는 것은 상황 모면을 위한 흑색선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취재원과의 관계 속에서 살핀 언론보도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20대 대선구도가 확정되면서 후보들에 대한 보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적합한 정치적 큰 머슴을 뽑는 일에 도움이 되어야 할 터인데, 대중매체가 기사라는 상품 생산에 우선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번 대선 후보를 보면 기존 여야 권력구도가 해체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야당의 경우 정치 문외한이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경우이고, 여당 후보 또한 중앙정치 출신이 아니다. 이는 여야 모두 수십 년 동안 굳어진 진영 구도의 변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졌단 의미이고, 이는 유권자들의 선택이기도 했다. 이런 점을 대중매체는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하면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현실은 실망스럽다. 주요 방송사들의 정치관련 대담프로의 경우, 여야 정치인들이 토론자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해 시청자들은 개개 정당에서 가공한 홍보, 선전성 정보를 주로 접하게 되고 확증편향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정당 간 정쟁을 방송 전파로 중계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커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하면서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국면 소개나 평가 시민사회의 정치에 대한 기대치, 그 시시비비 등을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거대정당의 두 대선 후보 모두 의혹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그에 대한 진실 규명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경우 대중매체가 제 4부의 역할을 한다면 사회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대중매체가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노력을 소홀히 한 채 거울로 비추거나 수박 겉핥기식 보도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예를 들어 두 후보의 의혹에 대한 정보 취재가 가능한 취재원이 다수이냐 여부, 또는 취재원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얼마냐에 따라 보도되는 기사의 분량이 불균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당 후보의 경우 관련 기관, 인물이 다수이고 그 가운데 몇몇은 녹취록 공개로 언론의 접근 프레임을 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야당 후보는 관련 기관도 인물도 소수이고 관련인물 대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도 되지 않는다’ 등 구체적 내용이 없는 극소수 발언만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를 담당한 검경은 이른바 피의사실공표에 대항하는 행위를 삼가면서 수사 중간 상황이 거의 외부로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조국 사태 당시 검찰이 거의 매일 관련자의 피의사실을 흘린 것에 대한 제재조치가 구체화되면서, 검경에서 과거와 같이 기자실에 정보를 흘리는 방식의 보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신 관련자들의 일방적 발언이나 그들이 언론에 제공해 진위나 의도가 의심되는 녹취록이 차별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언론 보도의 양과 내용에서 큰 차이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두 후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강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보도 내용도 최초의 것이 중요한데 여당후보의 경우 ‘~누구입니까?’라는 식으로 비리나 의혹의 몸통인 것과 같은 식의 인상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는데, 그 이후 성남시청 인사나 인허가 과정에 대한 언론의 탐사보도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매체 시대, 자율규제 외면하면 타율 규제 못 피해

뉴스타파 2019년 10월 17일 보도에 소개된 기사형 광고

21세기 정보화시대는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는 정치로부터 독립한, 자율적 존재로 인식되며 한 이탈리아 학자는 이를 정치 communication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즉 과거 모든 것은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인 반면, 오늘날 모든 것은 언론을 중심으로 또는 언론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Mazzoleni, G., 1995, Towards a Videocracy? Italian Political Communication at a Turning Point, European Journal of Communication 10, 308.).

정치가 언론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는 사례를 보면, 정치인들은 정치 관련 정보를 확산하기 위해 자신이 출연하는 TV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같으면 언론은 당연히 권력에 종속되어 그 하부기구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처럼 정치가 언론의 영역 속으로 포섭되는 것은 야구, 농구, 축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가 방송 중계에 편리한 시간대에 맞게 경기 일정이 짜이는 것과 유사하다. 민주화가 진전되어 미디어 정치의 비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다음으로 각종 뉴미디어가 등장하며 정치관련 뉴스에 대한 다양한 형식의 보도를 촉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정치의 미디어화는 저널리즘이 시민사회의 대변자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정치의 권위와 그 힘에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TV 등 방송매체와 인터넷 매체 등을 중심으로 정치 뉴스는 시청자들에게 쉽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형식으로 제작되면서 궁극적으로 시청자에게 부담 없이, 흥밋거리로 제공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information과 entertainment의 합성어인 infotainment가 등장할 정도로 정치 정보가 연성화하거나 희화화하면서 부작용이 큰 경우가 적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매체 파수견 역할(watchdog role)은 정부에 대한 감시, 견제이다. 대중매체는 시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사회에서 형성된 여론을 보도함으로써, 정부를 감시하게 되고 유권자들에게 정당과 정치인을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대중매체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정부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질적인 권력기구의 성격을 지녔지만, 정부만큼 법률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중매체가 보도와 논평 과정에서 범하는 과오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용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는 여전히 우세하다.

언론의 오보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개인의 명예 손상 등의 문제가 야기되지만 그 같은 오보가 악의적인 것이 아니면 중대한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형 비리 등을 추적할 경우 많은 어려움이 있으며, 정치 권력이 언론 취재에 비협조적이고 그로 인해 오보가 발행했다면 언론만의 책임으로 몰기에는 논리상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대중매체가 공익적 차원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공정한 자세로 보도한다는 윤리적인 면과 전문적인 면이 생략될 수는 없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다매체 시대에는 대중매체의 자율규제적 관리, 자기 통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언론이 이런 책무를 방기하고 상궤를 벗어난 보도 행태로 인한 책임을 무겁게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율적 규제와 타율적 규제는 제로섬 원칙이 작용하는 법이다. 국회에서 언론중재법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인 것과 함께 언론의 자율적 규제에 대한 논의 또한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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