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을 고발한 독립 다큐멘터리 트루맛 쇼로 각 방송사의 맛집 프로그램은 철퇴를 맞았다. 그래도 여전히 맛집 프로그램은 방영되고 있지만 좀처럼 맛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침체된 맛집 프로그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사건이 벌어졌다. 미수다 출신 사유리가 맛집 프로그램에 나와서 맛이 없다고 직설을 한 것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천편일률적으로 무조건 맛있다고 감탄만 하던 일차원적 홍보에서 한층 더 세련(?)되게 변화했다.

그 방송을 통해서 사유리는 미수다 사차원 일본녀에서 일약 막말 혹은 정직함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라디오스타까지 진출했다. 정글의 법칙 리키 김, 하이킥 줄리엔 강과 함께지만 그 셋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인 피가 전혀 흐르지 않은 순수한 외국인은 사유리뿐이었다. 김구라는 이들을 로버트 할리, 이다도시의 뒤를 잇는 외국인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들을 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해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역시나 일본인 사유리를 통해서 우리 연예인들에 대한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먼저 사차원에서 사구라로 진화한 사유리의 직설법이다.

사유리의 맛없다는 멘트가 화제가 된 것은 방송이 진실보다는 듣기 좋은 말만 한다는 통념을 깼기 때문이다. 특히나 연예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준비된 말만 하는 것이 보통인 탓이다. 사실 맛없는 음식을 맛없다고 하는 일이 화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사유리의 발언 자체만 화제가 되었을 뿐 방송언어의 부정직함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유리에게서 찾는 또 하나의 치명적 매력은 자유로움이다. 사유리하면 미수다 시절부터 사차원적 언행으로 나름 유명하다. 그녀가 스스로 연출해 찍은 기이한 사진들을 그저 일본 오타쿠의 일탈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자면 나름의 행위예술로 볼 수도 있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물론 사유리 본인은 주제나 메시지 따위 없이 “그냥”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런 사유리의 “그냥”은 어쩌면 진짜 그냥일 수도 있겠지만, 잉여적 논란에 대한 시니컬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유리의 “그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라디오스타들이 어떻게 그런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유리는 “네가 뭔데가 아니라 내가 뭔데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대답을 했다. 지극히 자기 자신을 낮추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유리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소위 연예인병에 걸려 남의 시선에 포박될 수도 있는 자의식을 “내가 뭔데”라는 말로 툴툴 털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유리는 소속사니 매니지먼트니 하는 것들과 끝까지 인연을 맺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내가 뭔데도 작용한 것이지만 그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 위함이다. 물론 찾아주는 곳이 있으니 가능한 자유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인지도가 생기면 대부분 메뚜기도 한 철이라며 매니지먼트를 원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심찮게 터지는 스타와 소속사 간의 분란들이 그 갈등을 설명해주고 있다.

결국 사유리의 막말에 가까운 직설법은 그 자유로움에서 발로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일에 목매지 않는 진정한 자유로움이 있다면 제작진이 요구하는 ‘거짓’을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사유리의 모습조차도 방송에 의해서 부풀려진 부분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유리의 캐릭터가 이목을 끈다는 것 자체가 한국 방송가에 정직이라는 요구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유리가 이렇게 자유롭고 정직한 모습으로 방송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는 현상은 곧바로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거울이다. 거울은 피사체를 뒤집어서 보이게 한다. 다시 말해서 사유리는 한국 연예인들이 걸린 가식과 부정직에 대한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연예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정직이란 아이콘만은 외국인에게 내어주지 말라고.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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