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개그맨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해야만 한다. 건방진 캐릭터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일상 속에서 웃지 못 할 사소한 봉변을 당하고 산다는 것은 익히 잘 아는 내용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뭐든 실시간으로 이슈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기 연예인이라면 모두가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지난주에 이어진 승승장구 이수근 편을 보면서 언뜻 이창훈의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무속인인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으로 터지기 시작한 눈물은 아내와 아들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멈출 줄을 몰랐다. 그의 직업이 남을 웃겨야만 하는 개그맨이기 때문에 갖는 자괴감도 어렵게 털어놓았다. 그런 무겁고 슬픈 일들 속에서도 이수근은 개그맨의 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수근은 눈물을 흘리는 중간에도 억지로 분위기를 바꾸거나, 웃기려 애써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삐에로의 눈물은 아주 유명한,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개그맨이 한 번의 웃음을 주기 위해서 흘리는 것은 백 번의 땀과 천 번의 눈물이 필요하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프로 정신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한 충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충실함 뒤에는 또 다른 희생도 필요했다.

이수근은 첫 아기를 낳은 뒤에 딱 한 번만 건강검진을 받게 했어도 이렇게까지 아내의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오열했다. 그런 후회는 모든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후회를 천 번 만 번 하더라도 현실을 뒤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프다. 아직도 이수근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마음껏 쉬게 둘 수 없다. 신장이식을 받았다지만 안정되기까지 아직도 일주일에 네 번의 인공투석을 받는 아내가 여전히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는 몰래온 손님으로 스튜디오에 나왔어야 할 이수근의 아내는 출연 대신 몰래온 편지를 보내왔다. 감성 많은 김승우는 머리말만 보고도 눈물이 복받쳐와 결국 김병만이 읽게 된 아내의 편지는 ‘많이 지쳐 있을 당신에게’로 시작됐다. 아내의 편지는 지금까지 감정을 조절하면서 속내를 털어놓던 이수근과는 달랐다. 아내의 편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보다 더 슬펐다.

“제가 평생을 약을 먹고 면역에 약해져 있는 아기의 몸으로 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네요”라는 대목에서는 아무리 강심장이라 할지라도 눈물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으니 나이도 제법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이수근의 아내는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서른이 되려면 몇 해 더 있어야 하니 어린 어른인 셈이다. 사회적으로는 아직 어릴지 몰라도 아내로서, 엄마로서는 이미 충분히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엄마는 강하다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편지에 써진 글들은 이성으로 정화된 내용일 것이다. 그 편지 뒷장에 미처 다 쓰지 못한 많은 고통과 눈물들은 고스란히 부부의 일기장에 적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내의 눈물까지 더해져 이수근의 웃음이 완성된다는 생각에 짠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이수근의 첫 이야기는 재산에 관련된 루머였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많은 고통스러운 사실들, 특히 둘째와 아내에 관한 일들을 알고 나서는 그것이 루머가 아니기를 바라게 된다. 아들로서도 엄마 없이 외롭게 자라 가장이 되어서도 또 많은 고독의 짐을 져야 하는 이수근에게 많은 가장들의 이름을 대신하여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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