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종부세를 없애겠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재산세와 통합시키거나 1가구 1주택의 경우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거다. 윤석열 후보와 가까운 사람들은 경선에선 우클릭, 본선에선 중도 공략을 주장해온 바 있다. 그러나 종부세를 사실상 없애겠다는 주장은 방향이 없는 중도 공략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종부세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부 경우에 있어서는 윤석열 후보가 지적하듯 어떤 개인에게 올해 종부세 고지서는 악몽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 종부세는 인별 과세로 국세로 걷어 전액 지자체에 다시 교부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더라도 고가주택이 몰려있는 특정 지자체에만 세수가 몰리는 걸 일부 방지한다. 재산세는 지방세이고 물건에 따라 과세한다. 종부세와 단순 통합은 쉽지 않을 뿐더러 기준을 놓고 추가 논란이 벌어질 수 있고 지자체간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윤석열 후보는 종부세를 애초부터 문제가 많은 세금이라고 평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소득세, 소비세(부가가치세), 재산세 외의 모든 세금은 다 문제다. 어떤 조세체계가 복잡한 것은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일 것인데, 그중에서도 종부세는 부동산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고 그렇게 인식돼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만은 손보겠다고 공언했던 이명박 정부도 종부세를 완전히 무력화하진 못했다. 윤석열 후보의 주장은 그 점에서 애초 종부세 도입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는 어떤 대안도 없이 종부세 이전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점은 징후적이다.

윤석열 후보가 이런 주장을 꺼낼 수 있는 배경에는 부동산 폭등으로 세금이 인상돼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었다는 중산층의 불안감이 존재한다. 가계에 실제 부담이 될 정도의 종부세를 부담해야 할 대상이 극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론이 팽배한 것은 집값은 앞으로도 오를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당장은 종부세 과세 대상이 아니거나 큰 부담이 안 될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앞으로도 그럴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윤석열 후보의 주장은 ‘종부세’라는 ‘불만의 원인’을 규정하고 이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는 걸로 이러한 불안감을 정당화하고 이들과 정치적으로 일체화하려는 계산이 반영된 걸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후보가 내놓은 대북정책의 큰 그림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느낌이 든다. 윤석열 후보는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전제된다면 얼마든지 남북협력 등을 모색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의 세계에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았을 경우, 또는 ‘비핵화’가 불가역적인 게 아닌 경우 북한과 어떤 협력을 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런 주장은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이 대북 저자세로 일관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정당화해주는 들러리 역할을 했다는 보수세력의 비판에 근거한다.

비핵화 없이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논리는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3000’을 떠올리게 한다. ‘비핵개방3000’의 결과는 어떤 개입도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거였다. 박근혜 정권은 비핵화와 별개로도 교류협력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문제를 보완하려고 했지만, 여기서도 남북 간 신뢰제고를 위한 구체적 행동계획을 마련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통일대박론과 북한붕괴론이라는, 두 갈래의 기이한 낙관이 대북정책 전반을 지배한 가운데 나온 결과는 북한의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였다.

과거 정권의 잘못으로 현 정권의 무능을 덮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어도 과거 정권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답이 아님은 분명하다. 윤석열 후보가 자신만의 비전에 근거한 정책 노선을 제기했더라면 이런 비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권의 모든 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면서 과거 정권의 해법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상 회복’이라고 규정하면서 그걸 매우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재를 불만족스럽게 여겨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국민들을 상대로 과거의 해법을 다시 동원하면 불만이 해소된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 사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기가 가능한 것은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차라리 과거로 돌아가게라도 해달라는 유권자의 요구를 정치가 그대로 자신의 주장으로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는 대안이 아니었던 과거로 일단 돌아가자는 미봉적 답변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내놓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 있어선 여야의 대선후보가 모두 실패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가령 세금 부담을 덜어주자고 하는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마찬가지다. 가상화폐 과세 유예에 동조하고 연소득 5천만 원 이하 계층의 20대에 대한 소득세 면제를 언급하는 것으로 청년층 공략을 하겠다는 게 그렇다. 이재명 후보의 주장대로 하면 가상화폐 투자자나 특정 계층에는 단기적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전체 경제 구조나 이와 연관된 법 제도의 현실을 보면 그렇게 할 이유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이런 접근이 이재명 후보에게 더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은, 적어도 윤석열 후보는 밀턴 프리드먼 타령을 하는 극단적 자유지상주의자의 모양새를 갖추기는 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철학적 일관성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후보의 주장은 그 기반이 된 철학의 한계와 비현실성을 논하는 것으로 논파 가능하다. 하지만 증세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조세 저항을 줄여야 하고, 그것의 구체적 수단으로서 보편적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재명 후보의 ‘감세’ 주장은 반박이 어렵다. 사람들이 요구하니 수용한다는 차원 이상의 실질적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로 무조건 돌아가자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도, 수요가 있는 정책이라면 뭐든 추진해야 한다는 것도 통치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중도 공략이란 중도층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말로 옮기는 게 아니라, 불충분하더라도 실제적인 대안을 갖고 이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젊은 세대든 중도층이든 ‘타겟’에 양대 후보가 접근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상황은 각자 다른 차원에서 국정 운영에 대한 ‘철학 없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라면 피상적인 접근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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