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기록으로 골, 득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골로 승부가 결정나는 데다 매 시즌마다 꾸준하게 골을 넣은 선수는 그만큼 가치가 빛나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득점만큼이나 중요한 기록을 꼽는다면 바로 경기 출장 기록입니다. 매 시즌 얼마나 많은 경기에 실제로 출장했느냐에 따라 그 선수의 성실함과 꾸준한 자기 관리 능력을 확인하게 되고, 이는 곧 선수의 가치 상승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한 해 평균 10-15회 정도 치르는 A매치를 100경기 출전한 선수에게 '센추리 클럽 가입자'로 포함시켜 그 공적을 기리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A매치에 1경기 출장하는 것도 선수 한 명에게는 영예로운 일인데, 10년 안팎으로 이 A매치를 100경기 치렀다고 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클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즌마다 꾸준하게 출장해 수백 경기 이상을 뛰었다면 이는 충분히 개인, 팀, 리그 전체적으로도 가치 있는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A매치 센추리클럽 가입에 이어 '축구 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또 하나의 큰 기록을 세운 선수가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이라니 참 뿌듯합니다.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 진출 후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통산 2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박지성은 6일 새벽(한국시각), 영국 런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2011-12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첼시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9분 교체 투입되면서 2005년 7월 맨유 입성 이후 정확히 6년 7개월 만에 통산 200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맨유 한 팀에서 통산 200경기 이상을 뛴 선수는 박지성을 포함해 단 8명에 불과하며, 아시아 선수로는 단연 최초 기록입니다.

비아냥 딛고 우뚝 일어선 '맨유의 심장'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연합뉴스
처음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박지성이 지금의 위치까지 오를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워낙 입단했던 팀 자체가 어마어마했고, 동양인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뛴 사례 역시 많지 않아 팀 전력에 보탬이 되기보다 상업적으로 영입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시즌 첫 해부터 45경기를 뛰면서 이 같은 비아냥을 잠재웠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 존재감을 알리며 당당히 맨유맨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해 나갔습니다.

치열한 주전 경쟁 뿐 아니라 동양인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특유의 성실함과 활력 넘치는 플레이로 꾸준하게 출장 기록을 이어나갔습니다. 몇 차례 큰 부상을 당해 수개월을 뛰지 못했을 때도 박지성은 강한 의지와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 능력으로 복귀 후에도 변함 없는 경기력으로 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모습에 많은 이들은 '맨유의 진정한 심장'이라고 칭했고, 처음에 가졌던 우려 역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6년 넘게 '세계 최고의 팀'에서 헌신하는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고, 마침내 통산 200경기 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의 우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이뤄낸 기록이었기에 그가 기록한 골, 도움 기록보다 훨씬 값진 200경기 출장 기록입니다.

강팀 킬러, 이름 없는 영웅, 기록의 사나이...박지성의 수식어들

한 시즌에 치러지는 경기수가 50-60경기인 것을 감안하면 매 시즌 절반이 넘는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중에서도 2/3 가량이 선발 출장이었으니 이 정도만으로도 박지성의 기록은 빛납니다. 포지션별 로테이션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는 퍼거슨 감독 아래서 이 정도의 경기를 소화한 것은 그만큼 박지성에 대한 감독, 팀의 신뢰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박지성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팀을 살리는 역할을 해냈고, 이는 곧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톡톡 튀지는 않더라도 특유의 성실함 덕에 나타나게 된 박지성만의 색깔은 오랫동안 맨유에서 살아남고 팬들의 사랑을 받는 힘이 됐습니다.

박지성이 뛰면 곧 모든 것이 기록이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비롯해 UEFA 챔피언스리그, 칼링컵, FIFA 클럽월드컵 등 클럽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는 모두 2차례나 밟았고, 리그에서는 첼시, 리버풀, 아스널 등 순위 싸움을 벌였던 강팀을 상대로 잇따라 골을 성공시키며 '강팀 킬러'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경기에서 워낙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다 보니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플레이를 주목하는 시선도 날이 갈수록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박지성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힘이 됐고, 팀내 연봉 가치 3위로 올라서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 타이틀에 맞는 빼어난 기량으로 많은 스카우터들이 다른 한국인 선수를 눈여겨봤고, 이후 이동국, 김두현, 조원희, 이청용, 박주영, 지동원 등 (이영표, 설기현 등은 박지성과 거의 동시대에 진출했기에 제외) 적지 않은 한국인 선수들이 축구 종가 무대에 진출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어쨌든 박지성의 맨유 활약상이 선사한 것은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오래 뛰지 않아도 뭔가 특별했던 200번째 경기

비록 선발 출장은 아니었다 해도 통산 200번째 경기 출장 역시 그의 명성에 걸맞게 이뤄져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0-3으로 끌려다니다 후반 꾸준하게 따라붙어 3-3으로 균형을 이뤘을 때 퍼거슨 맨유 감독은 마지막 교체 카드로 박지성을 활용했습니다. 큰 경기에 강한 선수였던 데다 첼시를 만나면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던 만큼 박지성이 승부의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믿고 투입시킨 것이었습니다.

10여분밖에 뛰지 못해 많은 시간을 뛴 것은 아니었지만 박지성은 변함없는 특유의 활발한 몸놀림과 동료와의 유기적인 플레이로 기회를 만드는 데 힘쓰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과는 그대로 3-3으로 끝났어도 200번째 출장이라는 타이틀에 맞는 투입과 활약상으로 박지성은 또 한 번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살아있는 산소탱크, 300경기까지 멈추지 않기를

2013년 6월까지 맨유와 계약한 박지성은 여력이 된다면 더 활약해서 맨유에서 현역 선수 생활을 명예롭게 은퇴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가 그동안 보인 활약상, 퍼거슨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 등을 생각하면 몸이 허락하는 한 좀 더 맨유에서 오래 선수 생활을 할 공산이 큽니다. 앞으로 나아갈 과정을 생각해봤을 때, 박지성의 맨유 통산 200경기 출장은 매우 뜻 깊은 기록이며,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하는 중요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갖 어려움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버텨온 덕에 이뤄낸 200이라는 숫자, 그리고 그 이후에도 차곡차곡 더 높아질 출장 기록 숫자는 박지성이라는 가치를 더욱 높이는 자산이 될 것입니다. 200경기를 넘어 이제 300경기 출장을 향할 박지성의 행보는 언제나 살아있는 '산소탱크'처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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