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헌법재판소가 사법농단 연루자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각하하자 조선·중앙일보 등 보수언론이 사법농단 지우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조선일보는 임 전 판사를 옹호하기 위해 언론자유 침해를 못본 체 했으며 '법조계 하나회'라는 낙인을 찍었다.

헌재는 임 전 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28일 각하했다. 임 전 판사가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탄핵 심판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탄핵심판 청구의 핵심은 임 전 판사의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9명의 재판관 중 6명(각하 :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 심판절차종료 : 문형배)은 위헌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진=연합뉴스)

반면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임 전 판사의)행위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탄핵심판에서까지 면죄부를 주게 된다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추락시킨 행위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용인하게 된다"며 "헌재가 재판 독립의 의의나 법관의 헌법적 책임 등을 규명하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침해 문제를 사전에 경고해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전 판사는 2015년 법원행정처의 요청을 받아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관련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를 받았다. 임 전 판사는 재판에 관여한 사실이 있으나 직무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1·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그의 행위를 "법관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라 했으며 2심 재판부는 "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라고 했다.

29일 조선일보는 기사 <여권이 밀어붙인 초유의 법관 탄핵, 헌재 각하>에서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 3명, 이번 탄핵소추를 주도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력을 문제삼았다. 진보성향 법관 모임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유남석 헌재 소장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며 김기영 재판관과 이탄희 의원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판사 겁주기용 ‘억지 탄핵’ 却下, 與와 대법원장 사과 한마디 없다>에서 "이 판사 탄핵에 김명수 대법원장과 법원 내 '하나회'라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이탄희 의원이 앞장섰다"고 썼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며, 이들 연구회가 법원 내 '하나회'라고 보도해왔다. 김명수 대법원장, 소수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 3명, 이탄희 의원 등을 전두환 신군부를 탄생시킨 '하나회' 조직원에 빗댄 것이다.

중앙일보는 사설 <법관 탄핵 억지로 밀어붙인 민주당 사과해야>에서 임 전 판사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실을 강조하며 "그런데도 1심 판결문에 '재판 관여는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여당에서 탄핵을 강행했다. 여당은 사법부 독립을 위해 설계한 제도를 '판사 망신주기용'으로 전락시켰다"고 썼다. 이어 중앙일보는 "이번사태를 방조한 장본인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정치권은 힘으로 사법부를 찍어 누르고, 법원은 국회 눈치나 살피는 삼권분립의 훼손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일보는 사설 <헌재, 임성근 탄핵 ‘각하’… 與는 사법부 길들이기 사죄해야>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여당이 법관탄핵을 무기로 ‘사법부 길들이기’에 나섰지만 그 결과는 국민적 공분뿐"이라며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10월 29일 <여권이 밀어붙인 초유의 법관 탄핵, 헌재 각하>

그러나 재판에서 드러난 임 전 판사의 '위헌적 재판관여 행위'는 사법농단의 문제 뿐만 아니라 조선·중앙 등 보수언론이 강조하는 헌법가치인 '언론자유' 침해와 뗄 수 없다. 2015년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곽병훈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엄중한 질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후 임 차장은 임 전 판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임 전 판사는 가토 사건 담당 재판장을 사무실로 불러 판결 선고 구술본을 직접 수정했다. '대통령에게 명예훼손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의 요지가 '개인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하나 비방의 목적이 없어 무죄'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은 법원행정처로 보고됐다.

다수 언론과 시민사회는 임 전 판사 행위에 대한 위헌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헌재가 책임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사법농단 사건을 처음 보도한 경향신문은 29일 사설 <임성근 판사 탄핵 무산, 사법농단 면죄부 아니다>에서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할 헌재가 본연의 책무를 외면하고 위헌성 판단을 회피한 데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임 전 판사는 파면을 면했을 뿐 면죄부를 받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임 전 부장판사가 법망을 빠져나가게 된 것은 비단 헌재만의 책임이 아니다. 법원의 시간 끌기와 국회의 직무 태만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임 전 판사는 2월 말 재임용심사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법원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사설 <'위헌적 사법농단' 눈감은 헌재 각하 결정, 유감스럽다>에서 "재판관 다수가 사법농단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각하 의견을 낸 것은 헌법 수호 기관으로서의 소임을 외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며 "법원 수뇌부가 재판을 정치권력과의 거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재판 개입을 일삼은 사법농단은 헌법을 유린하고 법원의 신뢰를 통째로 허문 중대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4.16연대,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법농단 관련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한국일보는 사설 <첫 판사 탄핵 각하, 아쉬운 헌재 결정>에서 "아예 재판 개입의 위헌 여부는 판단하지 않은 것"이라며 "법관에 대한 첫 탄핵심판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재판 개입 행위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판단 자체를 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했다. 이어 한국일보는 "사법부는 향후 재판 개입을 포함한 사법농단 재판에서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할 것"이라며 대법원이 임 전 판사 재판개입 행위를 '위헌적 행위'와 '부적절 행위'로 각각 판단한 1심과 2심의 혼선부터 바로잡고, 재판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이번 청구의 핵심 쟁점은 임 전 부장판사의 행동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느냐’ 여부였는데도 이런 쟁점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은 헌재 결정은 대단히 아쉽다"며 "그렇다고 임 전 판사의 '사법농단' 의혹에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라고 했다.

28일 참여연대, 4·16연대, 민변, 민주노총, 진보연대 등 시민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여전히 사법농단, 재판거래의 피해자들은 피눈물 흘리고 있다. 그런데도 헌재는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염원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며 "사법농단의 진정한 피해자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들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도 사법농단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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