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여진 칼럼] 언론에 대한 징벌적 피해보상제도를 도입하자는 취지의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가 있었을 때 언론 및 관련 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언론자유 억압을 주장하며 언론중재법 개정을 반대했다. 그리고 ‘통합적 자율규제기구’를 출범시켰다. 미디어 종사자들 스스로 ‘미디어 구하기’를 하자고 나선 것이다.

디스패치는 지난주 조재범 성폭력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피해자인 심석희 선수 측이 재판부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피고인 조재범 측으로부터 전달받아 대중에 공개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 주 디스패치는 배우 김선호의 전 여자친구 실명을 공개하고 김선호와의 관계에서 왜곡된 12가지 진실을 찾아냈다고 주장하며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사인(私人)과 사인(私人) 간의 대화가 대중에 공개된 것이다. 디스패치가 공개한 내용은 곧바로 다른 언론매체를 통해 확산되었다. 관련 기사들이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면서 비슷한 내용의 언론 보도는 더 반복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최초로 개인 사이의 메시지를 대중에 공개한 디스패치의 기사는 포털 뉴스 창의 메인뉴스 상단에 걸렸다.

10월 8일자 디스패치 보도 화면 (사진=디스패치)

디스패치는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상당히 불법적이고, 위험한 도발을 감행했다. 심석희 선수의 경우 재판의 증거자료 중 피고 측이 원고에 약점이 될 만한 메시지를 인용해 의견서를 만들고 변론한 자료를 그대로 공개했고, 김선호 배우의 경우 한 배우의 헤어진 연인의 실명, 직업과 내밀한 사적 대화까지 모두 공개했다. 디스패치는 스스로 연예전문매체라고 하면서 그동안 몰래 숨어서 유명인의 사생활을 캐고 공개하고 거래하는 수법으로 생존해 온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불법적인 행위임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대중에 공개하는 이유는 그로 인한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디스패치가 공개한 불법적인 내용을 언론사가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디스패치는 스스로 불법정보를 유포한 혐의에서 오히려 가벼워질 수 있었다. 또한 불법적인 내용이 포함되더라도 대중의 관심을 유도할만한 내용을 공개하면 포털사와 콘텐츠 제휴관계에 있는 디스패치는 그 내용이 언론보도로 둔갑하여 포털 메인뉴스에 오르게 되고, 조회수와 클릭수를 통한 막대한 금전적 이익도 따라오는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 유통과 소비 메커니즘에서는 보도의 당사자가 받는 고통의 크기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당사자는 수백수천 개의 보도로 숨쉬기조차 어려운 고통이 몰려오고 온 국민이 다 알게 된 무서운 평판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폐해이고, 정말로 부끄럽고 씁쓸한 풍경이다. 지금의 포털 뉴스 중심의 미디어 구조와 사법적 시스템에서는 피해 회복이 가능하지 않다.

언론의 의도적이고 고의성이 충분하다고 확인된 행위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높았고,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지난 9월 30일 국회에서는 여야협의에 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당시 전국 10개 언론사는 하루 60건이 넘는 언론중재법 보도를 하면서,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이 무산된 지금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또다시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다.

8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개악은 언론개혁이 아니다’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지금 우리의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인과 매체, 그리고 “알고 싶은 권리”를 앞세워 사생활을 캐고 있는 매체가 뒤섞여 있다. 문제는 후자가 돈이 되니 “알권리‘를 취재하는 영역에서도 돈 되는 방법을 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10월 26일 연합뉴스는 전 충남도지사였던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비방 댓글을 달았던 안희정 전 지사의 측근에게 배상하도록 강제조정한 판결내용을 보도하면서 피해자의 얼굴을 메인화면에 내걸었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보도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얼굴을 내거는 것이 더 많은 관심을 유도할 것이라는 암묵적이고 관성적인 방법으로 아무 생각 없이 제작했을 것이다. 그것을 가려내고 분별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와 이용자의 몫이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시대, 미디어콘텐츠와 소비, 저널리즘의 공간을 대부분 ‘볼거리’로만 가득 채워지게 해 놓고, 개개인이 뉴스와 정보와 나쁜 정보 등 미디어를 분별해야 하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사실 저널리즘 복원과 미디어 리터러시를 포함한 미디어정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정도로 한계에 봉착해 있다. 기성의 언론 시스템이 유지될 수 없으며 새로운 모델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 민주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 미디어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디어가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말한 줄리아 카제의 글이 희망이 되어 미디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시민들은 그 용기를 격려하고, 그 용기의 진정성이 보이는 순간 ‘미디어 구하기’ 프로젝트에 동참할 것이다.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27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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